47. 불씨(芥子火)
47. 불씨(芥子火)
  • 이필원
  • 승인 2013.12.1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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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만한 불이라도
모든 번뇌 태울 위력
생활 속 보시는 수행
작은 공덕도 열반씨앗


겨울철이 되면 날씨가 건조해지는 만큼 화재 발생이 많다. 수십 년 가꾼 산림이 한 순간에 재가 되어 버리기도 하고, 재산과 인명 피해까지도 발생한다. 2005년도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이 낙산사로 번져 소중한 문화재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이런 화재는 방화도 있지만, 많은 경우 무심히 버린 담뱃불이나 논이나 밭두렁을 태우기 위해 불을 놓았다가 불씨가 날아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철이 다가오면 ‘작은 불씨도 다시 한 번’, ‘꺼진 불도 다시 한 번’과 같은 표어를 여기 저기 붙여 경각심을 일깨운다.


한편 이러한 불은 인류에겐 없어선 안 될 것 가운데 하나인데, 그래서 고대로부터 불은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중에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도 있다. 대표적으로 배화교(조로아스터교)가 그것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는 의미에서 거대한 힘을 상징하기도 하고, 나쁜 것을 태운다는 재액소멸(災厄消滅)의 의미도 있다.


불교에서도 불은 경전속에서 빈번하게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불교에서는 주로 ‘번뇌를 태우는 것’으로 불을 언급한다. ‘화염경’ 52권에서도 이러한 비유를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마치 마른 풀을 수미산과 같이 높이 쌓아 놓더라도, 겨자씨 만한 불(芥子火)을 던지면 모두 타버리듯이, 모든 부처님들께 올리는 공양의 작은 공덕은 반드시 모든 번뇌를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한다.”


수미산이라 하면, 불교에서 전하는 대표적인 전설적인 산이다. 세상의 중심이 되는 거대한 산이다. 마른 풀이 수미산과 같이 쌓여 있다 해도, 그 풀은 아주 작은 겨자씨 만한 불씨로 모두 순식간에 타버린다. 이러한 불의 위력 때문에 초기경전에서는 세상에서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몇 가지를 언급할 때 불씨를 언급한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그것은 세상을 모두 태울 수 있는 ‘거대한 불’의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께 올리는 사소한 공양이 지닌 공덕이 비록 작더라도, 그것은 모든 번뇌를 태워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화엄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우리가 예불을 올릴 때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양족존이란 지혜와 공덕을 두루 갖추신 존귀한 분이란 의미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지혜만으로는 2%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드시 공덕을 쌓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공덕을 쌓는 행을 공덕행(功德行)이라고 한다. 공덕행이란 요즘 말로 표현하면 ‘베풂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말연시가 되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불우이웃돕기를 한다고 모금활동을 편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연례행사가 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만은 않다. 부처님은 일상생활 속에서 보시를 실천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것은 수행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공양이 수행인 이유는 그로 인해 열반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필원 박사

‘화엄경’에서 말하는 ‘모든 부처님(諸佛)께 올리는 공양’은 ‘모든 생명체에게 올리는 공양/베풂’과 같은 의미이다.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 어려운 이웃에게 작지만 정성을 다한 공양은 반드시 나에게 열반의 과(果)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화엄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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