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삶의 가치
47. 삶의 가치
  • 법보신문
  • 승인 2013.12.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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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장식일 뿐

허영 숨어있는 경제적 풍요
자신 깎아내리는 습관 조장
경제력 크기 높이기보다는
먼저 인품 다듬는 노력 필요

 

백화점에서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을 보면, 값이 비싼 것은 아래층에 진열하고 위층으로 갈수록 값이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자주 하는 사람 가운데, 위층을 이용하는 사람은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가기를 바란다. 내려갈수록 더 좋고 더 만족감이 높은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대는 자본주의가 주류를 이루니, 경제력의 크기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매우 일반적인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인품과 지견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력은 생활의 질을 결정하고 인품과 지견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높은 삶의 질을 갖추고, 거기에 생활의 질을 더한다면, 더 말할 수 없이 좋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정행품 경문을 보자.


“상의(七條衣)를 입을 때면, 중생들이 수승한 선근을 얻어 법왕의 언덕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한다.”


‘상의(七條衣)를 입는다’에서 상의를 울다라승(七條衣)이라고도 한다. 세 가지 ‘가사’ 가운데 하나다. 일곱 조각의 천을 붙여서 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칠조(七條)라고 한다. 일종의 편의 복 즉 격식을 갖추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때 입는 옷이다. 가사는 염색을 한다. 가사의 염색을 ‘괴색(壞色)한다’고 한다. 괴색이란 색을 망가뜨리는 염색법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색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색을 망가뜨려, 관심을 갖지 않을 만한 색으로 만드는 것이다. 옷의 기능은 남겨두고 색감의 가치는 망가뜨리는 것이다. 지금의 가사 색이 바로 그런 색이다. ‘가사’라는 말은 ‘화합’ 또는 ‘혼합’이라는 의미다. 여러 조각의 천을 따로따로 모아 붙여서 만들고,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하여 채도가 낮은 탁한 색으로 염색하는 것이다. 경전에 ‘가사의 맛’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 당시에 탁발을 할 때, 일곱 집을 돌며 음식을 구한다. 일곱 집의 음식 가운데 어느 것은 짜고 어느 것은 시고 어느 것은 매울 것이다. 이런 것을 한데 섞어 놓으면 혼합된 맛이 난다. 그래서 혼합된 맛이란 의미로 ‘가사의 맛’이라고 한 것이다.
옷은 외부의 열이나 한기를 막기 위해서다. 또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단정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출가자에게는 단순하고 단정하며 깨끗하고 유행을 안타야 좋게 보이고, 재가자에게는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장식을 한 것이 좋아 보인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아름다운 장식 그리고 좋은 브랜드의 이면에는 허영이 숨어있다. 허영이 자신의 경제력을 넘어서면 경제적 허기를 면할 수 없다. 허기가 심하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싸게 파는 습관이 생길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친다.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위해서는 자신의 지견과 인품을 다듬어야 한다. 그 위에 아름다운 장식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덤이 된다.


‘중생들이 수승한 선근을 얻는다’에서 ‘수승한 선근’이란 출세간의 선근이다. 세간의 선근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는 3선근이다. 세간의 선근을 완성도 있게 닦아 삼계를 벗어나도 그 다음의 수행의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의 수행을 해나가는 선근이 ‘정진(精進)’이라는 선근이다.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러서도 다시 더 높은 경지로, 흔들림 없이 순일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정진이다. 자신의 상태를 정밀하게 알아차리고, 정밀하게 내려놓으며, 한 단계 한 단계 높여가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선근을 모든 중생들이 얻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일체중생이 모두 최고의 선근을 얻는다는 것은 당연히 세간의 3선근도 모두 얻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세간 선근의 단계를 거쳐서 출세간의 선근을 얻고, 그래야 최고의 선근이 최고의 효용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법왕의 언덕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법왕은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통달하고, 모두 벗어났으며, 모두 자유자재로 궁극의 경지에서 쓴다. 그래서 법왕이라고 부른다. ‘법왕의 언덕’은 부처님의 궁극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즉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어, 일체를 통달하고 벗어나서 자유자재한 상태를 언덕으로 비유한 것이다.


일체중생이 모두 법왕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이 되게 하려면, 단지 그렇게 되기를 발원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발원을 하는 우리가 먼저 실천하여 3선근을 성취하고 모범을 보여서, 3선근을 성취한 삶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 한다.

 

▲도암 스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3선근 성취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따라 배우고 싶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 정진이라는 출세간의 선근으로 수행을 성취하면서 중생을 인도하는 것이다. 삶에서 꾸준하게 노력하여, 조금씩 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힘을 기르고, 궁극에는 완전하게 자신의 주인이 되기를 발원한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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