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기차와 우리의 시선
멈춰진 기차와 우리의 시선
  • 이진경 교수
  • 승인 2013.12.23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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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때였던 것 같다. 저녁을 준비하던 어머니께서 쌀을 씻다 흘려나간 쌀을 한 톨 한 톨 줍고 계신 걸 본 기억이 있다. 아까워서였을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실 쌀 몇 톨이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 거고, 밥으로 치면 얼마나 될 것인가. 더구나 느긋한 성격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어머니가 한 톨 한 톨 줍는 모습은, 어린 눈에도 그저 ‘아깝다’는 말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소중함,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소중함’이란 감응을 강하게 주는 행동이었다. 쌀 알 하나를 주울 때마다 어머니는 소중함을 줍고 계셨던 것이다.


아주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일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해야 했던 고된 노동을 거기서 보셨을 것이다. 그것만일까. 모를 꽂던 무논의 진흙을, 거기에 쏟아지던 여름날의 비를, 그것을 익혀갔을 가을날의 햇빛을 보셨을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살던 분이니, 쌀 한 톨마다 그것들의 자취가 배어들어 있음을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것이 그 작은 쌀 한 톨조차 그냥 버릴 수 없게 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쌀 한 톨에서, 거기 스며든 하나의 세계를 보셨던 것일 게다. 물론 명확히 의식하지도,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걸 알기엔 너무 어렸기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감응만은 그대로 내 몸에 남았던 모양이다. 덕분에 그 이후 나는 밥알 하나 남길 수 없었고, 국수 국물 한 방울도 남길 수 없게 되었다.


하나의 사물에서 그저 ‘사물’을 보거나 그것의 용도, 혹은 경제적 ‘가치’(‘얼마짜리’)를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볼 때, 그 사물은 아주 다른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우리는 그 사물과 아주 다른 관계를 맺게 된다. ‘소중함’이란 그런 관계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농사를 짓거나 손으로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그런 것에만 해당되진 않는다. 쿠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이키루’의 주인공은 어느 구청인가의 공무원인데, 어느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는 방황한다. 그 방황의 와중에 어느 한 여공을 만난다. 그 여공은 죽음 앞에서 침울한 자신과 반대로 너무 즐겁고 기쁜 얼굴로 활기 있게 살고 있기에, 그는 묻는다. 무엇을 하고 사느냐고. 공장에서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한다. 다시 묻는다. 뭐가 좋아서 그리 기쁜 얼굴로 사느냐고. 여공의 대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든 이 인형을 받아들고 즐거워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주 기쁘다는 것이다.


이 여공은 자신이 만드는 인형에서 인형이 아니라 그것을 갖고 놀 아이들의 기쁨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인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작은 하나의 세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기계적인 반복이었을 노동을 지루한 고통이 아니라 즐겁고 기쁜 것으로 하게 했던 것이다. 옆에 스쳐가는 사물 하나에서도, 흩어져 날리는 작은 먼지 속에서도 하나의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삶이란 항상 이처럼 즐겁고 기쁠 것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담은 소중한 어떤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


습관적으로 핸드폰 화면을 밀어올리며 검색을 하고 시간을 쏟지만 2년이면 어느새 버리고 다른 것을 장만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전해주는 문자와 전언으로 기뻐하는 연인을 생각하고 그렇게 이어지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를 느끼며 기계에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환자의 병든 신체에서 그저 돈을 보고 병원을 오직 최대치의 이윤이란 관점에서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환자의 불편한 몸에서 고통을 통해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보고, 병원에서 치유하는 기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이진경 교수

파업으로 멈추어선 기차에서 그로 인해 야기될 불편함만을 보고 그런 식으로 저항하는 이들의 적의만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거기서 ‘민영화’라는 그럴듯한 말에 숨겨진 미래의 고통을 보고 도래할 고통을 멈추게 하려는 의지를 읽으며, 그런 불편함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세계를 보는 이들도 있다. 여러분은 거기서 무엇을 보시는지?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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