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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복원만이 능사인가 [끝]

기자명 이수정

관광자원 아닌 종교적 의미와 가치 복원부터 고려

불교세계관 깃든 깨우침 공간
철저한 고증이나 타당성 없이
단순하게 형상만을 살리려는
탐진치 마음으로 복원 결정땐
가짜 만들어내는 우 범할 것


복원후 사찰이 갖게될 가치와 
본래 터 가치 비교분석후 결정

 

 

▲현재 복원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경주 황룡사지 전경.

 

 

 

금강산에 신계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은 신라 법흥왕 5년(519)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는 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중창불사를 벌이면서 법맥을 이어왔지만 한국전쟁 중에 거의 모든 건물들이 소실되어 절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던 곳이 종교적 교류를 통한 남북화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복원되었다.

이곳 신계사처럼 사라진 사찰을 옛 모습으로 살려내겠다는 염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복원’이라고 부른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의미가 큰 사찰에 새 생명을 주려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복원이 절터에 가장 바람직한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이 있어야 하고, 복원을 결정한다면 그에 대한 논리적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절터를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이 복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복원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절터를 지키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세대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바로 답이 된다. 그러한 선택은 선택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가장 많이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왜 하는가’이다. 선택의 이유를 많은 이들이 동감할 수 있도록 합당한 근거를 들어 설명할 수 있어야 그 선택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몇몇 복원 계획이나 사례를 보면서 복원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대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절터는 아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불국사 복원공사이다. 조선시대에 억불숭유정책과 전란으로 경내의 전각을 하나 둘씩 잃으면서 사세가 기울고 쇠락한 불국사는 일제강점기에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조선총독부가 일본인의 조선방문과 이주를 장려하고자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차원에서 급하게 보수·정비되었다.

또 해방 후 이곳의 복원공사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국민들이 반만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와 민족성의 회복을 원하고 있었고, 정부는 이를 가시적인 성과로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는 ‘민족의 슬기를 다시 찾고, 민족문화의 정수를 가꾸며, 호국정신을 길이 이어나가기 위해’ 복원되었다고 명시한 ‘불국사 복원공사보고서’(1976년 발간)의 서문에도 명백히 나와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찬란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시대적 요구이자 정당한 명분을 지니기에 충분했다.

복원 과정에서는 강당, 비로전 등 사라졌던 전각들이 불국사 역사의 어느 시점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발굴로 초석이 드러난 건물지만으로는 건물의 원형을 알 수 없었기에 전국 각지에 남아있는 조선 초기, 중기, 후기의 다른 건물들을 참조하여 복원해야 할 전각의 모습을 추정하여 세웠다. 그래서 지금의 불국사는 어느 건축사학자가 말하듯, 시대별 양식을 지닌 전각들이 전시된 ‘건축 박물관’이 되어버렸다. 복원 후 불국사는 종교적 공간으로서, 역사교육과 배움의 장소로서, 관광객에게 의미 있는 여가시간을 선사하는 장소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다목적 장소가 되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인 종교적 기능은 완전히 살려내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수행처라기 보다 관광명소로서의 역할이 더 커져버렸다.

또한 관광객의 동선을 생각하다 보니 발굴과정에서 발견했던 불교적 의미가 담긴 연화교·칠보교 앞쪽의 연지는 복원하지 않았고, 결국 종교적 의미와 기능에서나, 전각의 모습이나 건물의 배치 등 전체적인 관점에서 원형복원은 이루지 못했다. 원형을 복원하지 못하는 복원은 절터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고, 이는 본래 지닌 가치를 왜곡하는 행위이다. 베니스 헌장과 같은 국제적 헌장이나 많은 국가의 문화재 보존·관리 지침에서 추정에 의한 복원을 금지하는 것도 복원이 문화재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총체적으로 보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베니스 헌장은 ‘추정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은 멈추어야 하며, 철저한 고증자료나 증거 없이 복원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한참 지난 지금의 잣대는 당시의 복원을 평가하는 객관적 잣대가 될 수 없으며, 과거의 행위를 현재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오만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과거의 선택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에 정당했던 명분이 시대가 지나면 다른 관점에서 평가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복원에 대한 결정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우리시대의 전유물이 아니고, 다음 세대의 것이기도 하므로, 우리 시대에 정당화 될 수 있는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미래의 세대도 그 명분이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고민해야 한다.

몇 년 전 발표된 충청남도 서산의 보원사지나 부여의 정림사지에 대한 복원 계획은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 기여하거나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렇게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절터를 복원하려는 계획은 이곳 말고도 경주의 황룡사를 비롯한 많은 절터에서 오래전부터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절터의 복원이 관광을 촉진시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뒷받침해줄 만한 통계나 근거자료는 아직 없다. 또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재를 재현하고 활용하는 이 시대에, 추정에 의해서 실제의 크기로 그 장소에 복원해 놓은 것을 보고 감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원에 들어갈 큰 비용을 감안할 때 복원의 효과와 가치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솔하게 복원을 추진한다면 이는 국가적 낭비이다. 혹자는 교육적 목적을 위해 복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복원이 아니더라도 모형제작이나 3D 복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본래의 모습을 추정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특히 보원사지, 정림사지, 황룡사지 모두 지금으로부터 이미 오래 전에 사찰의 고유기능을 잃어버리고, 절터로 오랜 기간 동안 있었기 때문에 원래 있었던 건물의 모습을 추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복원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원형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연구, 그리고 조사를 통해 원형복원이 가능한지 충분히 검토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복원에 대한 의의와 복원 후에 그 사찰이 가지게 될 가치를 본래의 절터가 지닌 가치들과 철저히 비교분석하여 따져 본 후에 복원을 결정해야 한다.

 

 

▲국립 경주박물관의 황룡사 복원모형도. 복원은 절터에 실제 복원하지 않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복원에 대한 생각을 점검하는 데에 좋은 사례로 독일의 성모교회와 영국의 코벤트리 성당을 들 수 있다. 먼저 독일의 드레스덴에 있는 프라우엔 커르케라는 성모교회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로 오랜 기간 동안 있다가 통독 이후 그에 대한 복원이 추진되어 2005년에 다시 교회로서 문을 열었다. 폭격 직후 산산조각이 난 교회건물의 석조부재들은 시내 한곳에 모두 모아져 동독이 공산화 된 45년 동안 그대로 보관되어오다가 복원이 추진되면서 이전의 사진자료와 도면, 컴퓨터의 첨단 복원기법을 통해 이들 부재 하나하나에 대한 위치를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재사용 여부를 결정하여, 복원에 원래의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또한 복원에 필요한 비용은 철저히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충당하였다.

영국의 코벤트리 성당 역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의 폭격으로 페허가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전쟁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복원하지 않고 공터로 두고, 그 옆에 1962년에 현대식 디자인으로 성당을 새로 지어 활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성당의 현재적 의미, 즉 역사적 변천과정의 제일 마지막 단계인 폭격으로 소실된 상태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리한 복원보다는 찾는 이들이 전쟁을 생각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드레스덴 성모교회. 2차 세계대전 중 폐허가 됐던 것을 2005년 복원했다.

 

 

절터를 복원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절터가 종교적 수행과 깨우침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복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관광자원이나 교육적 목적보다 절터의 고유 기능이었던 종교적 의미와 가치를 과연 복원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절터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을 복원해 놓고, 이를 단순히 관광목적으로만 활용한다면 절터가 지닌 가장 중요한 가치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절터는 오랜 기간 동안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수많은 사연과 정보, 그리고 조상의 삶과 종교적 세계관, 그리고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깨우침의 공간이다. 하지만 철저한 고증이나 복원에 대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 없이 단순히 형상만을 살리려는 탐진치의 마음으로 복원을 결정한다면 오히려 그 의미를 없애고, 가짜를 만들어내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수정 박사
 
지금은 5천개가 넘는 절터 전체의 보존을 위한 종합적 계획을 세우고, 이들의 가치를 잘 간직하여 후대에 물려줄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절터에 눈으로 보이는 물질적 형체를 만들어내는데 급급하지 말고, 마음으로 읽어내는 정신적 공간으로 절터를 먼저 복원한 후에 복원은 천천히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끝> 
 

이수정 slee70@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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