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성덕대왕신종 조성 [끝]
40. 성덕대왕신종 조성 [끝]
  • 법보신문
  • 승인 2013.12.2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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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뛰어난 예술성 고스란히 담겨

771년 12월14일 완공
조성과정 숱한 전설 구전
“에밀레 전설은 정치 상황
빗댄 신라인들 가공설화”

 

 

 


771년 12월14일 마침내 성덕대왕신종이 완성됐다.


‘성덕대왕신종명문’에 따르면 이 종은 혜공왕의 선친인 경덕왕 때부터 추진됐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부친마저 죽자 큰 시름에 빠졌던 경덕왕은 성덕대왕을 추모하고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청동 12만근을 희사해 범종 조성 불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거대한 범종 조성 불사는 쉽지 않았고, 경덕왕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혜공왕은 선친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범종 불사를 다시 추진했다. 그리곤 즉위한 지 7년 만에 그 결실을 보게 됐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인들의 뛰어난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겨 오대산 상원사 동종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종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3m33cm에 구경(口徑) 2m27cm 규모의 이 종은 화려한 조각양식이 특징이다. 종신에 2구씩 마주보는 4구의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상으로 주위의 보상화를 구름과 같이 피어오르게 하고, 천상으로 천의(天衣)와 영락 등이 휘날리도록 표현한 조각 기법은 다른 동종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뛰어난 기술로 한국비천상의 대표격으로 불리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종은 1962년 12월 국보 제29호로 지정됐다.


오랜 세월 역경 끝에 조성된 성덕대왕신종은 그런 만큼 조성과정을 둘러싼 숱한 전설들이 구전돼 오고 있다. 그 가운데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불리게 했던 ‘에밀레’ 전설이 대표적이다. 즉 성덕대왕신종의 주조 과정에서 한 여인이 자신의 아들을 주물을 녹이는 도가니에 넣어 죽게 해 종을 칠 때마다 아이의 원혼이 ‘에밀레’라고 울부짖는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이 전설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고대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고 오직 구전으로만 전승돼,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다. 다만 구한말인 1895년 서양선교사 앨런이 이 전설을 자신이 발간한 잡지에 수록하면서 처음으로 문자화 됐다.


이런 가운데 2006년 불교미술사학자 성낙주 씨는 ‘에밀레 전설’을 분석한 논문(‘에밀레종 전설 연구사 비판’)을 발표하고 “에밀레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해 학계로부터 관심을 끌어 모았다. 성 씨에 따르면 에밀레 전설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 특히 신라 지증왕은 502년 귀족이 죽으면 하인들을 함께 매장했던 순장(殉葬)제도를 폐지하는 등 무고한 인명살상에 대해 엄격히 금지시킨 상황에서 어린 아이를 주종 과정에 집어넣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불살생을 으뜸 계율로 여기는 스님들이 아이를 시주물로 받아 뜨거운 불구덩이에 넣었다는 것도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게 성 씨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성 씨는 이듬해 새로운 논문(‘에밀레종 전설의 정치학적 독해’)을 통해 “에밀레종 전설은 신라 혜공왕대 왕실의 권력 암투 과정을 재가공한 정치고발성 설화”라고 주장했다.


성 씨에 따르면 8살에 즉위한 혜공왕을 대신해 모후 만월부인이 섭정을 했는데, 그녀는 오라비인 김옹과 함께 국정을 농단했고 자신의 친정 왕조를 개창하려다 김양상 등의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이를 지켜본 신라인들은 혜공왕에게는 연민을, 만월부인에게는 분노를 품게 됐는데 이런 정서적 흐름이 에밀레 전설로 이어졌다는 게 성 씨의 설명이다.


성 씨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에밀레 전설 가운데 보시형으로 분류되는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당시 혜공왕을 둘러싼 정치 인물들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보시형 전설은 범종을 만들던 종장(鐘匠)이 종을 주조하는 과정에서 거듭 실패하자 이를 지켜본 그의 누이동생이 자신의 아이를 바쳐 종을 완성시켰다는 것으로 여기서 어린 아이는 혜공왕이었으며, 종장은 외삼촌인 김옹, 누이동생은 만월부인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성 씨는 “신라인들은 중대왕실이 단절된 책임을 만월부인에게 묻고 어미에게 소외되고 핍박 받은 혜공왕에 대한 동정어린 마음을 우회적으로 빗대 에밀레 설화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범종으로 꼽히는 성덕대왕신종. 그 이면에는 자식마저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가슴 아픈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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