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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스님들이 국내에서 사원 건립해 직접 지도

기자명 강향숙
  • 새해특집
  • 입력 2014.01.02 13:34
  • 수정 2014.01.15 13:53
  • 댓글 0

[티베트 불교, 한국불교를 물들이다]3. 국내 티베트불교 수행현황과 전망

▲ 부산 한국티베트불교사원 광성사를 찾은 한국 불자들이 티베트 경전과 수행을 배우고 있다

국내 티베트불교 수행현황을 살펴보고 미래 예측 가능한 부분을 고찰하기 위해 현재 우리나라에 소재한 ‘한국티베트불교사원 광성사’(부산 아미동)와 ‘서울티베트불교문화센터’(서울 미아동) 두 곳을 방문했다.

티베트불교에는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를 비롯하여 닝마파, 사카파, 카규파 등의 종파가 있다. 이 중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은 공부하는 스님들을 비롯하여 대략 15명 정도로 추정된다. 겔룩파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를 제외하고 인도 남부에 3대사원인 덴붕, 세라, 간덴 사원이 있다. 현재 한국에 전법을 위해 와 있는 분들은 겔룩파 스님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티베트스님들은 인명학, 반야학, 중관학, 율, 구사론 등 5대경을 17~18년간 수학하고, 6년간의 시험을 거쳐 ‘게시 하람파’ 학위를 취득하고 나서는 밀교사원인 규또사원, 규메사원에 들어가서 밀교공부를 한다. 소남 스님과 중네 스님은 세라총림에서 이 모든 수행의 과정을 거친 후, 티베트불교의 교학과 수행을 한국에 알리고 싶어 입국한 분들이다. 티베트불교사원과 센터에서는 주로 티베트불교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인 및 대중들에게 티베트어와 경전을 강의하고, 문답시간을 갖고, 람림(비밀도차제론)을 중심으로 한 수행을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티베트불교 수행은 인도의 티베트사원에서 현교와 밀교를 철저히 학습하고 수행한 스님들이 지역과 문화, 언어가 다른 한국에서 다시 전법되고 있다.

티베트스님들은 이미 티베트의 수행전통에 따라서 현교의 교리를 학습한 후, 밀교(소작, 행, 요가, 무상요가)의 이론 및 의식을 공부하는 단계를 거쳤다. 그렇기에 스님들의 개인적 수행은 이 두 가지가 함께 병행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티베트불교 수행은 티베트교육방식 그대로 경전을 함께 공부하고, 람림의 수행차제에 따라 기초수행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람림은 8만4천 대장경의 핵심이며,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순서로써 하사도·중사도·상사도로 나뉜다. 하사도 수행의 목적은 3악도(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 않고 3선도(아수라·인간·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들은 3악도에 떨어지는 원인인 몸·말·생각으로 나타나는 악업을 쌓지 않고 소멸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선업이라도 그냥두지 말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사도 수행에서는 3악도뿐만 아니라 3선도, 즉 육도윤회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 우리는 3선도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지만, 또다시 3악도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계율을 바탕으로 선정과 지혜의 수행을 통하여 해탈하는 선업을 쌓아야 한다. 즉 하사도와 중사도의 단계는 ‘나를 위주로 하는 수행’이다. 그러나 이 단계의 수행은 아무리 큰 결과를 얻더라도 아라한의 경지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인 상사도의 수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심’을 ‘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타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상사도 수행의 핵심은 나만 중요하게 여기는 작은 마음을 바꾸어 일체중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공부를 위해서 자비, 보리심, 육바라밀 수행을 닦는다. 이것은 마음을 커지게 하는 대승불교 수행이다. 이는 모든 중생을 구하기 위해 깨달음을 얻겠다는 보살의 마음이다.

소남 스님은 람림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바꾸는 ‘마음동기’라고 말한다. 하사도·중사도는 3악도를 벗어나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작은 해탈이며, ‘공통적인 수행’이다. 이 두 단계의 수행이 필요한 이유는 마음을 바로 바꾸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상사도를 곧바로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보살은 일체중생을 목적에 두고, 육도윤회의 모든 중생을 해탈시키고 성불하겠다는 큰마음을 갖는 그런 ‘마음동기’로 인해 큰 선업을 쌓고, 공덕을 크게 쌓아 성불한다. 그렇기 때문에 티베트불교에서 자비심, 보리심은 아주 중요하며, 달라이라마 역시 자비의 마음인 관세음보살님을 항상 생각하신다고 한다. 람림의 가르침은 결국 모든 수행자들이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는 해탈뿐만 아니라 큰 보리심, 대자비심, 육바라밀의 수행을 통해 성불에 이르기 위한 수행이다.

부산 광성사 소남 스님
서울문화센터 중네 스님
국내활동 15명 중 대표적

티베트 교육방식 적용해
경전공부·람림 수행 지도
대중법회·초청강연 늘어

중네 스님은 람림 수행에서 먼저 인과법의 진리, 유루인과법과 무루인과법의 진리를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깨칠 수 있는 문(聞)수행을 기초수행자들에게 강조한다. 윤회자체가 왜 고제(苦諦)인지에 대한 유루인과법의 진리를 깨친 사람이라면, 그 진리를 깨친 상태이기 때문에 확신이 생기고,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윤회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구나 내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내 자신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어디서 생긴 것인가. 일단 내 자신을 무상한 것으로 느끼지 않고 항상하는 것으로 느낀다. 또한 나는 어떤 것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자력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보는 것이다. 누구나 내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가 죽으러 가고 있다’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자력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아집(人我執)이다. 인아집이 있기에 내 자신이 너무 소중한 것이고, 내가 부자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오래 살아야 하니까 먹고살기 힘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집착하는 번뇌의 마음이 생긴다. 번뇌는 업을 낳고, 업은 윤회의 결과를 낳는다.

문수행의 반복을 통해 이러한 진리를 확실히 이해한 후, 이를 깨치기 위해서 ‘분석관상명상’을 한다. 몸과 관련된 네 가지 고통(태어남의 고통·늙음의 고통·질병의 고통·죽음의 고통)에 대한 관상은 지금 이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이다. ‘분석관상명상’은 자신이 아기 모습으로 어머니 자궁으로 들어가서 태어남의 고통을 관상하는 것이다. 수행자는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면 안 되겠다는 마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 원인을 찾게 된다. 그 원인은 번뇌에 있고, 번뇌는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판단 자체를 바꾸어 올바르게 판단한다면, 태어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분석관상명상’은 고통의 관상을 통하여, 고통을 직접 스스로가 느껴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분석관상명상’은 람림의 하사도와 중사도의 목표인 육도의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행인 것이다.

모든 고통은 관상할 수 있다. 지하철이나 거리를 지나면서 고통스러운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몸이 아픈 사람, 늙은 사람, 굶주린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때 그냥 불쌍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바로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는지 관상할 때, 그 원인이 나한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고통은 관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고통을 느낀다면, 벗어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쳐 깨치려는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고통은 누구나 받고 싶지 않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돈이나 명예, 오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곧 집착과 번뇌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한 사람이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에서 불자만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에 대해 중네 스님은 집착하는 마음과 바라는 마음은 다르다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고 싶은 마음은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살아야 하고, 무언가 필요로 한다. 이때 내가 얻을 수 있으면 좋고, 내가 얻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보살수행은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는 것이다. 있으면 나도 편할 수 있고, 남에게 베풀 수 있으며,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왜냐하면 욕심낼 필요도 없고, 욕심을 내지 않으면 업도 없고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집착하고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서 똑같이 하기 때문에 바라는 만큼 얻지도 못하고, 얻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안 좋은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남 스님이 말한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바꾸는 자비의 마음과 동일한 맥락이다. 두 분의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이것은 람림의 상사도 수행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티베트불교는 람림의 가르침을 스승으로부터 보고 들으며(聞), 생각하고(思), 실천수행(修)하는 것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탄생했고, 그 정법은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티베트, 서구에까지 전파되었다. 지역과 문화 그리고 언어가 달라 표현방식과 수행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 가지 맛(一味)’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티베트불교 사원과 센터는 현재 관심 있는 소수의 학인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수행하고 있으며, 대중들을 위한 법회도 진행하고 있다. 티베트불교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상사도의 차제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불이라는 궁극적 목표가 모든 수행자에게 일시에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공통된 수행’인 하사도·중사도 차제의 가르침이 기초 불교수행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클 것으로 생각된다.

거리에 줄지어 서있는 벌거벗은 나뭇가지는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이 되면 풍성한 나뭇잎이 우리들에게 잠시 휴식의 그늘을 드리울 것이며, 가을이 오면 그 잎은 하나둘씩 떨어져 다시 올 겨울의 나무처럼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았다면 이제는 실천해야 할 시간인 것이다.

▲ 강향숙
동국대 강사. 동국대 대학원에서 ‘헤와즈라 딴뜨라만다라의 관상수행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논문으로 ‘헤바즈라 딴뜨라의 관정에 관한 고찰’등이 있다.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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