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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 다르지만 뽀통령 좋아하는 한국 아이랍니다

  • 새해특집
  • 입력 2014.01.05 01:46
  • 수정 2014.01.05 03:06
  • 댓글 0

[함께가는 삶 '동행'] 3. 로터스월드 줌머인 2세 한글학교

방글라데시 소수족 줌머인은
치타공 산악지대서 사는 불자
이슬람교의 방화·폭행 피해
해외로 탈출 난민 생활 시작


한국서 70여 명 난민 지위 얻어
로터스월드서 2011년부터 지원
한글 가르치며 사회 적응 도와

▲ 피부색이 까맣다. 그러나 다르지 않았다. 여느 한국가정 아이들처럼 방글라데시 불자 소수민족 줌머인 2세들에게도 ‘뽀통령’이 있었다. 대통령이 뽀로로였고, 로봇 장난감도 좋아했다. 그네들도 한글을 배우고 한국아이들처럼 말했다. 차가운 시선으로 너와 나를 가를 필요가 없었다. ‘나란히 앞으로’ 걸어가는 우리 곁의 ‘한국인’이었다.
 

“엄마, 오늘은 선생님이 와? 응?”

다비찬 차크마(5)가 부쩍 엄마를 졸랐다. 위로는 누나 보텀 차크마(7)가 있지만 다비찬에게 선생님은 친구이자 형이었다. 로봇 장난감도 보여주고 총 놀이도 하는 사이였다. 열심히 한글수업을 받지만 다비찬의 관심은 한글보단 놀이였다. 그러나 최근 몇 주째 선생님을 보지 못했다. 대학생인 선생님에게 12월은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친구 고은새 차크마(5)도 선생님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형제나 자매가 없는 고은새에게 선생님은 오빠처럼 다정했다. 며칠 아파 한글수업을 못하다보니 통 선생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12월21일 오전 10시면 선생님이 온다. 고은새 목이 더 길어진다. 귀는 집으로 들어오는 계단 발자국 소리에 쫑긋거렸다. 고은새 마음은 방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안절부절이다.

천안 호서대 행정학과 2학년 장진수(23)씨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글을 가르친 시간이 3개월에 불과하지만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렸다. 인천서 김포시 양촌읍까지 오는 시간을 맞추려면 1시간 전엔 집을 나서야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다비찬 집에 이르자 문을 두드렸다. 겨울옷으로 무장한 다비찬이 뛰쳐나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달려가 품에 와락 안겼다. 그는 두 팔 벌려 다비찬을 안았다. 다비찬 손을 잡고 얼어붙은 길을 지나 고은새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한글수업 장소는 고은새 집이었다.

작은 방에 앉은뱅이 밥상이 펴졌다. 책상이었다. 선생님은 ‘뽀로로 신나는 한글놀이’ 교재를 꺼냈고 다비찬과 고은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ㄱ, ㄴ, ㄷ, ㄹ’을 집어 들었다. 뒤에 붙은 종이를 떼고 집어든 자음과 닮은 그림에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책꽂이 그림엔 ‘ㅊ’이, 사다리에는 ‘ㅅ’을 나무에는 ‘ㄴ’을 붙이는 한글놀이였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꼬마 펭귄 뽀로로, 사고뭉치 아기공룡 크롱, 영리한 발명왕 꼬마 여우 에디 등 만화 캐릭터 이름을 만들기도 했다.

선생님은 다비찬과 고은새가 붙인 자음과 모음을 읽었고, 아이들은 따라했다. 한국말은 곧잘 했지만 한글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고은새 엄마가 커피를 타오자 뜬금없이 다비찬이 “선생님은 코피 난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이건 코피가 아니라 커피야. 따라 해봐 커피!” 잘 따라하고 잘 갖다 붙이면 다비찬과 선생님은 손바닥을 마주쳤다. 고은새는 “뽀로로에 붙일 거에요”라며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만 찾았다. 다비찬은 선생님이 자음과 모음을 이어 ‘다비찬’을 만들자 자기 이름이라며 한껏 들뜨기도 했다. 다비찬과 고은새 수업을 마친 선생님은 즐거운 비명으로 맞이하는 위옌(5)과 쇼엔(4) 집에 들러 위옌에게도 한글교실을 열었다.

▲ 다비찬은 자기 이름을 보자 기뻐했다.
 

그 시각, 다비찬 집에선 누나 보텀도 한글교육을 받았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온 직장인 봉사자 최은순(34)씨가 선생님이다. 보텀은 큰 언니처럼 선생님을 따랐다. 그래서 선생님은 버스를 타고 전철을 2번 갈아타면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에도 3개월 동안 수업을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14년 3월이면 양곡초등학교에 진학하는 보텀에게 한글은 필수였다. 받아쓰기와 동화읽기 수업이 주였다. 선생님은 행여 보텀이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거나 삐뚤어진 한글을 쓸까 마음이 쓰였다. 피부색도 다른 데 학교에서 놀림 당할까 걱정이 됐다.

▲ 다비찬의 누나 보텀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글쓰기를 연습하고 있다.

장진수씨와 최은순씨는 로터스월드에서 2011년부터 줌머인 2세 한글교육을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교통비와 교재비를 지원받으며 봉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됐지만 줌머인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줌머인 2세들은 낯설지 않았다. 이미 한국에서 살 비벼가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는 두 개의 변이 기대서 만들어진 글자다. 사람과 사람 마음이 비스듬히 기대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과 마음이 닿은 장진수, 최은순씨와 줌머인 2세 아이들에게는 국적도, 다른 피부색과 언어도 장벽이 되진 않았다. 그는 “처음엔 봉사활동을 하려고 지원했는데, 아이들이 점차 좋아져서 즐겁게 하고 있다”며 “줌머인이라는 소수민족도 봉사하면서 알게 됐지만, 아이들은 그냥 옆집 애들 같다”고 웃었다. 최은순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지난해 조계사불교대학서 교리강좌를 듣다 로터스월드를 알게 됐고, 줌머인 2세 한글교육을 시작했다”며 “처음엔 부담됐지만 지금은 친근해져 보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줌머인은 한국으로 망명한 난민들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불교를 믿고 불교적 생활을 하는 소수민족이다.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 대부분은 벵갈인으로 줌머인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이자 벵갈인이 다수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줌머인을 인종, 종교, 문화가 다르다며 정치적 핍박을 가하고 있다.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함께 노력했고 자치권 보장을 약속받았지만, 1971년 독립이 되자 방글라데시의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정부는 줌머인 터전인 치타공 산악지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벵갈인들을 이주시켰다. 1977년부터 2년간 치타공 산악지대로 이주한 40만 벵갈인과 10만 군인들은 방화와 학살, 폭행, 약탈을 일삼았다. 1997년 정부는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협정도 문서 쪼가리에 불과했다.

견디기 힘든 삶이었다. 줌머인들은 고국을 등졌고 망명이 잇따랐다. 위옌 엄마 수라잉(36)씨는 “고향에 친정부모, 시부모가 계신다”며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없는 곳에 아직도 밤이면 대포를 쏜다. 해 뜰 때까지 한 집에 숨어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주어진 삶은 살아가야 했다. 한국사회로 망명한 줌머인 10여명이 모여 2002년 재한줌머인연대를 만들었다. 재한줌머인연대 자문위원장 로넬씨에 따르면 10년 사이 줌머인이 70여명으로 늘었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희미해졌다. 2013년 현재 재한줌머인연대 대다수가 난민지위를 인정받았고, 3명은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이들이 10쌍이 훌쩍 넘었다. 바디찬, 보텀, 고은새, 위옌, 쇼옌 등은 이들의 2세였다.

그러나 아직 줌머인들의 삶은 한국사회에서도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바디찬과 보텀의 엄마 산기타 차크마(34)씨와 고은새의 엄마 몰라카 차크마(33)씨는 “음식물을 규격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도 그냥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부터 나무란다”며 “외국서 와서 아기 낳고 왜 여기서 사느냐는 말도 한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엄마들은 그보다 아이들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한국 친구들에게 “왜 피부가 까매?” 등의 말을 듣고 올 땐 가슴이 아프다고. 그럴 때마다 엄마들은 이렇게 얘기한단다. “공부 열심히 해서 똑똑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런 말 듣지 않는다”고. 그래도 한국을 좋아했다. 그네들도 아이를 가진 한국주부들과 다를 게 없었다. 교육비와 집세, 아이들 걱정뿐이었다. 그네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어요.”

피부색이 까맣다. 그러나 다르진 않았다. 여느 한국가정 아이들처럼 줌머인 2세들에게도 ‘뽀통령’이 있었다. 대통령이 뽀로로였고, 로봇 장감감도 좋아했다. 한글을 배우고 한국아이들과 똑같이 말했다.

소방관이 돼 사람들 아프게 하는 불을 끄고 싶다는 바디찬 차크마. 우리 곁에서 줌머인 2세들의 꿈이 여물고 있다.

 김포=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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