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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자미상, ‘태평성시도’

기자명 조정육

불행을 깊이 들여다보면 행복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숫타니파타 제1장 사품(蛇品)-

몇 달 전이었다. 라디오를 켰는데 트로트 가수 출신 진행자가 숨도 쉬지 않고 다음과 같이 직업을 읊었다.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해외동포여러분, 근로자여러분, 국군장병여러분, 경찰관여러분, 학생여러분, 병원이나 농업인, 어업인, 중장비기사님, 택시기사님, 버스기사님, 화물차기사님, 119구조대원여러분, 부업전선에서 애쓰시는 주부님, 경비원과 시장상인여러분, 음식업, 의류업, 세탁업, 유통업, 제조업, 제과업, 건설업, 축산업, 부동산중개업, 주유소, 옷 수선하는 집, 그리고 이미용업에 종사하시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듣고 보니 음악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청취자들에게 인사하는 내용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저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모르는군.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데 인기 없는 진행을 하고 있는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 그 음악프로그램을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말에 대한 진행자의 얘기가 실려 있었다. 진행자는 ‘첫방송부터 항상 하는 인사말이지만 혹 청취자 자신의 직업이 소개되지 않을 때는 곧바로 항의’가 들어온단다.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 사람들은 몇 초도 안되는 순간에 훅 지나가고 마는 멘트 하나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했다. 놀라웠다. 보통 때는 스스로가 이름 없는 무명씨처럼 묻혀 살던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본인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존엄한 자로써의 위엄이다. 존엄성에 대한 열망은 생명 가진 자로써의 거역할 수 없는 본능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피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태평성시도’는 그렇게 해서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조선후기 작품 ‘태평성시도’
가지각색 삶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 일깨워
‘열반경’ 공덕천·흑암녀 비유
행복·불행 결코 다르지 않아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조선 후기 도시의 태평한 모습을 그린 풍속화이자 기록화다. 여덟 폭으로 된 큰 병풍에 한양으로 추정된 가상의 도시를 설계한 다음 중국풍 건물과 다양한 인물, 갖가지 동물과 보기 드문 기물을 그린 시대의 반영이다. 전체 구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사산(四山: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골격 삼아 창덕궁· 창경궁 등의 궁궐과, 명륜당 · 모화관· 영은문 등의 건물을 배치한 다음 수로와 다리를 매개체로 번화가와 주택가와 외곽을 연결했다.

▲ 작가 미상,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비단에 색, 각 113.6×49.1cm, 국립중앙박물관.

‘태평성시도’는 그 도시 안에 살던 사람들의 가지각색 삶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은 작품이다. 장사꾼, 상인, 관리, 연예인, 군인, 하인, 대장장이를 비롯해 술 마시는 사람, 사탕 파는 사람, 담배 피는 사람, 집짓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절구질하는 사람, 칼을 가는 사람, 저울을 들고 있는 사람 등등 그들의 직업과 모양새도 다양하다. 이 정도면 가히 인간생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그림 속에는 총 2170여 명의 인물과 300여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2170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얼마나 더 복잡하고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발생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원칙을 세워야 한다. 너도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원칙 말이다. 행복을 줄 수 없다면 적어도 불행이나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원칙이라도 정해야 한다. 우리가 성인들 말씀을 새겨듣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삶의 원칙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평생 동안 실천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논어‘의 ‘위령공‘에 나오는 내용이다. 남에게 행복은 주지 못할망정 불행은 안겨 주지 말라는 뜻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받고 골머리를 앓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자의 가르침에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오죽하면 일가친척들이 귀찮게만 안해도 도와주는 것이란 푸념이 나왔을까.

그러나 불교는 공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남을 배려하는 ‘서(恕)’의 차원을 넘어 그의 행복까지 기원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자애심이다. 자애심(慈愛心)에 대해 명상수행가 파멜라 블룸은 ‘자비의 힘’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다른 이들이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의 근원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갈구하지만 그것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데 그들이 가능한 한 많은 행복을 얻고 행복의 근원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자애심이다. 자애심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문장이 바로 ‘숫타니파타’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스님의 책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진 문장이다.

중생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부처님이 45년 동안 한결같이 설법하신 법문의 요체다. 부처님이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한 이유도 생로병사라는 근본적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성도 후 열반 하실 때까지 중생에게 전하고자 한 가르침도 ‘행복하라’였다. 그래서 올 한 해는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불법(佛法)에는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이 가득 담겨 있다. 가만히 눈 감고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를 읊조리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 가득 자애심이 차오른다. 조금 일찍 출발해 한걸음 먼저 행복의 문 안에 들어왔으니 내가 발견한 행복론을 1년 동안 열심히 퍼다 나르겠다. 그런데 그 행복의 외형이 결코 매끄럽지만은 않다. ‘열반경’에는 나의 변명을 대신할 만한 적절한 비유가 이렇게 적혀 있다.

한 재벌 회장 집에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회장이 그녀에게“누구냐?”고 물었다.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공덕천입니다.” 회장이 물었다. “뭐 하는 사람이요?”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가는 곳마다 행복과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줍니다.” ‘공덕천(功德天)’이란 이름처럼 복과 덕을 주는 여신인 듯했다. 회장은 뛸 듯이 기뻤다. 회장은 그녀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를 위해 헌신했다. 집안 내부 장식을 바꾸고 곳곳에 꽃을 심어 은은한 향기가 흐르게 했다. 잔잔한 음악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회장은 더없이 행복했다. 역시 그녀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신이었다.

그런 어느 날 또 한 명의 여인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허름한 옷에 지저분한 냄새가 풍겼고 험악한 표정이 어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회장이 그녀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흑암녀입니다.” 회장이 물었다. “뭐 하는 사람이요?”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재물을 잃게 하거나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죽게 하는 등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흑암녀(黑暗女)’란 이름처럼 어둠과 불행을 주는 귀신인 듯했다. 회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빨리 가지 않으면 당신 목숨을 끊어버리겠소.” 그러자 흑암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은 참 어리석군요. 방금 전 찾아 온 공덕천 언니와 나는 늘 붙어 다니는 자매로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대가 나를 쫓아내려면, 나의 언니도 함께 쫓아내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공덕천의 앞모습만 본 사람은 흑암녀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다. 아니, 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덕천의 뒷모습이 흑암녀이고 흑암녀의 뒷모습이 공덕천의 앞모습이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아리따운 공덕천은 흉측한 흑암녀가 되고 혐오스런 흑암녀는 기품 있는 공덕천이 된다. 흉측함도 아리따움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 꽃이다. 다만 우리가 흑암녀의 뒷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이다. 아니면 보기 싫어 일부러 외면했거나. 그래서 고은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자애심을 품고 한 해를 살다보면 마침내 우리도 고은 시인과 똑같은 시를 읊게 될 것이다. 정신없이 사느라 헉헉거리는 동안 골고루 쳐다보지 못했던 그 꽃을 올 한 해 동안 찬찬히 둘러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당신을 포함해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하시기를! 중장비기사님도 국군장병아저씨도 부업전선에서 애쓰시는 주부님도 이미용에 종사하시는 여러분도 모두 모두 행복하시기를!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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