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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문화해설사의 역할

1970~80년대 수학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방문지가 경주였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대능원을 관람했다. 3박4일, 산과 문화유적과 공업지구 몇 곳을 돌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학교로 복귀했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 그때의 수학여행이 삶에 큰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선생님으로부터 견문을 넓히고 문화유산과 국토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을 수학여행의 목적이라고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수학여행이 끝나도 자부심이 생겼던 것 같지는 않다. 가봤다는 경험, 별것 없더라는 기억만이 오랫동안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 때문인지 석굴암을 비롯해 수학여행 때 봤던 문화유산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방송이나 기사를 접하면 속으로 웃곤 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의 현장은 분주하고 다급했다.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학생들이 일렬로 줄서 빠르게 관람해야 했다. 경주도 마찬가지였다. 쫓기듯이 둘러본 불국사는 수학여행이 끝날 즈음엔 기억마저 가물거렸고, 유리창을 통해 곁눈질한 석굴암부처님은 그냥 그만그만했다. 그 이후로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누가 여행계획을 말하며 어떤 문화유적을 말하면 “전에 봤는데 별거 없더라. 아니면 봐봤자 별거 있겠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사찰문화유산해설사로 인해
문화유산은 새 생명력 가져
이교도 해설사로 왜곡 우려
불교계 해설사 양성 나서야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이런 오래된 편견이 깨진 것은 문화재 담당기자를 하면서였다. 석굴암 취재차 스님들의 새벽예불에 참석한 적이 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뚫고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 바라본 석굴암부처님은 경외와 감동 그 차체였다. 부처님을 빙 둘러 서있는 제자들과 불보살의 아름다움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후로 석굴암과 불국사에 대한 전설과 설화, 역사적인 기록까지 접하면서 석굴암과 불국사가 시나브로 위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졌다. 생각해보면 수학여행 당시 선생님 누구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감동스러워하지도 않았다. 힘겨운 시대를 견디느라 문화적인 감성이나 지식을 갖출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읽을거리들이 많다. 문화유산 현장에는 어김없이 문체부와 지자체에서 파견한 문화유산해설사가 있다. 그들의 설명과 이야기를 듣다보면 현장의 돌 하나, 풀 한포기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앞서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문화유산을 통해 느끼는 삶의 풍요로움일 것이다. 사찰도 예외는 아니어서 문화재가 있는 사찰은 어디나 사찰문화해설사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사찰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이해하고, 그곳에 머물다간 세월의 무게를 더욱 세밀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요즘 불미스런 이야기들이 조금씩 들린다. 종교적 신념을 들어 일요일 해설을 거부하거나, 불교를 폄하하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다. 사찰문화해설사의 임무는 사찰에 깃든 역사와 문화, 감동과 자부심을 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방문객들에게 불쾌하거나 잘못된 기억을 심어주고 있다면 큰일이다.

▲ 김형규 부장
학창시절 우리문화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잘못된 교육으로 문화유산을 통해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 하물며 문화유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나 기억이 심어졌을 경우 개인의 삶에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남길지 걱정스럽다. 최근 유교계는 문체부와 협의해 향교·서원해설사 양성교육을 위탁받기로 했다. 불교계도 속앓이만 할 것이 아니고 문체부와 협의를 거쳐 위탁교육 방안을 적극 모색했으면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29호 / 2014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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