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 잠베이라캉

히말라야 도깨비 제압하려 송첸캄포가 하룻밤에 세운 사원

▲ 붐탕에 자리하고 있는 잠베이라캉은 송첸캄포가 하룻밤 사이 히말라야 전역에 세웠다는 108개의 사원 가운데 하나다. 히말라야를 장악하고 악행을 벌이던 도깨비를 제압하기 위해 세워진 이 사원의 위치는 도깨비의 왼쪽 무릎에 해당 한다.

부탄의 역사는 사실상 붐탕에서 시작한다. 네 개의 크고 작은 계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붐탕지역에서는 고대인의 생활 흔적이 발견돼 부탄의 역사를 선사시대로까지 끌어올리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동시에 부탄 역사의 실질적 시조로 여겨지는 파드마삼바바가 최초로 부탄에 불교를 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부탄 불교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페마링파의 고향이자 그가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성지 또한 이곳 붐탕이다. 그러니 붐탕의 역사는 곧 부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붐탕지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파드마삼바바와 페마링파에 대한 상식 정도는 갖춰야 한다. 페마링파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뤄두더라도 오늘은 파드마삼바바와 관련된 중요한 사원 쿠르제라캉을 방문할 예정이니 이 역사적인 인물에 관한 상식을 반드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쿠르제라캉으로 향하기 전 먼저 들른 잠베이라캉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원은 아니다. 이곳은 7세기 초 티베트의 토번왕국을 통일한 불세출의 영웅 송첸캄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찰이다. 정확히 말하면 깊은 인연 정도가 아니다. 이 사원을 송첸캄포가 창건했다니 말이다.

7세기 토번왕국 통일한
불세출의 티베트 영웅

당나라 문성공주 시집 오며
모셔온 불상 움직이지 않자
히말라야 도깨비 제압 위해
하룻밤에 108개 사원 세워
붐탕은 왼쪽 무릎에 해당

송첸캄포 창건 전설 속에서
티베트와 오랜 인연 느껴져

다수의 여행 안내서에 따르면 잠베이라캉은 659년 송첸캄포가 창건했다고 한다. 송첸캄포는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결혼했는데 문성공주는 토번으로 시집오며 혼수로 작은 불상을 하나 모셔왔다. 그런데 라싸로 향하던 중 갑자기 불상이 땅에 박힌 듯 꼼짝 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알아보니 히말라야 설산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여자 도깨비가 티베트로 불상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벌인 짓이었다. 이 도깨비를 제압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상을 옮길 수 없다고 판단한 송첸캄포는 히말라야 전역을 돌며 하룻밤 사이에 108개의 사찰을 세웠다. 사찰은 히말라야에 길게 누워있는 도깨비를 제압하기 위한 것으로 각각 도깨비의 손과 발, 무릎, 팔꿈치, 어깨, 옆구리, 그리고 배꼽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이로써 사지가 눌린 도깨비는 더 이상 사람을 해치는 등의 악행을 범하지 못했고 불상은 무사히 라싸로 입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히말라야산맥에 걸쳐 누워있다는 여자 도깨비의 모습과 도깨비를 제압하기 위해 세워진 사원을 그린 티베트의 민속화. 이 도깨비의 배꼽에 세워진 사원이 티베트 라싸의 조캉사원이며 왼쪽 다리가 부탄지역에 해당한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자 도깨비의 왼쪽 다리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지금의 부탄이다. 그 중에서도 붐탕은 도깨비의 왼쪽 무릎, 그리고 파로는 왼쪽 발에 해당한다. 그래서 부탄에는 송첸캄포왕이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는 사찰이 두 군데 남아있다. 바로 이곳 잠베이라캉과 파로에 있는 키추라캉이다. 송첸캄포는 모두 108개의 사원을 히말라야 전역에 세웠다고 하니 부탄에도 더 많은 사원을 세웠겠지만 현재 남아있는 곳 가운데는  이 두 사원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송첸캄포의 출생연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분분하지만 사망한 시기는 서기 650년으로 역사학자들 사이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는 점이다. 송첸캄포가 당나라 문성공주와 결혼한 시기 또한 641년으로 정리가 돼 있으니 잠베이라캉이 세워졌다는 659년과는 차이가 크다. 어떤 이유로 잠베이라캉과 키추라캉의 창건 시기가 659년으로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썩 믿을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사실 믿을 만하지 못한 것이 연대뿐이겠는가. 히말라야를 장악하고 있다는 거대한 여자 도깨비나 하룻밤 사이에 108개의 사찰을 세웠다는 이야기 모두 무협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부탄의 역사서에도 등장할 만큼 부탄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것은 아마도 송첸캄포라는 티베트역사의 거목, 그리고 티베트불교와 부탄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부탄 사람들의 지극한 신심도 적당히 녹아들었을 것이다. 창건 연대야 어찌되었든 간에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두 사원 가운데 하나이니 이곳을 빼놓고는 붐탕을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없음이다.

이른 아침 방문한 잠베이라캉은 벌써부터 참배객들로 북적인다. 입구에서부터 오체투지로 몸을 낮추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기도바퀴를 힘껏 돌리며 하루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하면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이 그동안 궁금했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도 바로 사원이다.

▲ 이른 아침 잠베이라캉을 찾은 부탄 불자들이 사원 마당에서 법당을 향해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다.

다소 허름해 보이는 입구의 정문을 지나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이 나온다. 정면의 법당 안에는 삼존불이 봉안돼 있고 각각의 법당에도 부처님과 불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 잠베이라캉 입구에서 만난 이웃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잠베이라캉의 규모는 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오래된 사원인 만큼 사원의 규모나 모양새는 오히려 작고 허름하다. 하지만 정성껏 다듬어진 석재가 빈틈없이 마당을 덮고 있고, 제법 밑둥이 굵은 나무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건물들은 알 수 없는 엄숙함과 위엄을 지니고 있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조각들로 장식된 창문이며 말끔히 잘 관리되고 있음이 한 눈에 보이는 흙벽들도 이 사원이 오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부탄 불교의 어른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사원 입구의 왼편에는 제법 너른 마당이 있다. 법당과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석재로 바닥을 정리한 이 마당에서는 1년에 한 번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부탄력 11월 보름, 우리의 10월에 해당하는 보름날 열리는 이 축제는 부탄의 사원에서 열리는 많은 축제들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축제로 손꼽힌다. ‘잠베이라캉드룹’이라 불리는데 3일 밤낮으로 계속되며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동시에 여인들의 다산을 기원하는 축제다. 밤에는 불을 이용한 춤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 잠베이라캉 왼쪽 마당에서는 매년 10월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사원을 나서는데 가이드 킨레이씨가 커다란 비밀이라도 공개하는 듯 살짝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진다.

“축제 마지막 날 밤에는 참가자들이 모두 옷을 벗고 춤을 춘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자 틀림없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카메라는 절대 반입할 수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손짓을 보낸다. 달밤에 사원 마당에서 알몸으로 벌이는 축제라. 문화와 정서의 차이니 왈가왈부는 하지 말자.

붐탕=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29호 / 2014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