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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길 아쉬움

기자명 법상 스님

개발로 파헤쳐진 산사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면서 이 작은 마을에서도 소박하지만 생기로운 불탄의 잔치가 벌어졌다. 법요식이 끝나고 가만히 되돌아 보면서 나에게 있어 불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내 안에 물음을 던지고 나면 조용히 내면의 뜰을 거닐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면 그길로 길을 나선다. 이것 저것 생각하고 따지고 다음 일정을 짜맞추다 보면 쉽게 저지르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반복되다 보면 내면은 정체되어 이내 빛이 바래진다.

이맘 때 즈음이면 산숲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수런수런 초록이 물들고 온갖 야생화들이며 봄나물들이 앞다투어 피어올라 부처님 맞이를 모두 함께 치르고 있다. 아마도 동안의 바쁜 일정에 치여 밋밋해지고 퇴색해 가는 내면이 맑은 샘을 기다리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저마다 자기만의 온전한 빛을 피우면서 우리의 내면을 생기롭게 채워주고 있다. 길 떠나는 여행자의 가슴에 푸르른 설레임과 맑은 외로움을 또 깊은 사유의 뜰을 제공해 준다.

며칠 되지 않는 창연한 만행길. 그러나 이 산천 어디를 가나 만나게 되는 한 가지 아쉬움은 늘 그렇듯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이 작은 나라 어디를 가든 공사 소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곳은 없다. 어디에서건 항상 자르고 파헤치고 고치고 짓고 또 무너뜨리고, 발전과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너무나도 흉측한 모습들이 눈과 귀를 얼룩지게 만든다.

이 아름다운 산천을 얼마만큼 더 못살게 파헤쳐야 우리의 개발은 끝날 것인가. 발길을 내딛으며 파헤쳐져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흙을 보면 가슴이 탁탁 막힌다.

이런 문제는 비단 세속의 일만이 아니다. 깊은 산 물 좋은 산사에도 개발에 민감한 우리의 습성은 버려지지 않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소리는 공사하고 짓고 부수는 기계소리에 파뭍혀 있다. 시끄러운 불사의 굉음만이 산숲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대신한다. 어지간한 절 치고 공사중이지 않은 절, 불사중이지 않은 절은 보기가 드물다. 언제부터 이렇게 절에 불사가 많아졌는지. 과연 이런 대량의 불사, 대형의 불사, 또 지속적인 불사가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10년 전 절에서 불사 관계로 흉측하고 시끄럽던 모습에 적잖이 실망을 하면서도 그래도 이 불사가 끝나면 고즈넉한 산사의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거란 어릴적 소박한 기대는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또다른 불사를 마주하며 생각이 복잡해 지고 만다.

길을 걷다가 아직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산이 있고 우거진 숲이 있고 행여 졸졸 개울이 흐르는 훤한 터를 만나면 작은 오두막 하나 짓고 텃밭 일구며 소박하게 자연과 벗하며 그 속에서 내면의 뜰을 비추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진다. 그러다가도 주변의 개발 여건을 따져보면 얼마안가 이 곳도 개발되어 파헤쳐지겠지 생각하면 내 작은 희망은 이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 작은 땅 어디에도 개발과 훼손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면, 소박한 꿈을 가진 자연벗 맑은 도반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고요한 아란야를 찾는 청정한 수행자들이 가야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물소리 대숲소리 언제까지고 마음편히 들을 수 있는 그곳은 어디인가.


법상 스님 buda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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