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단개혁 20년, 화해가 필요하다

조계종 종단개혁이 20주년을 맞았다. 1994년 따스한 봄, 불교계에 태풍이 불었다. 개혁의 광풍이었다. 1987년 6·10항쟁을 계기로 사회는 민주화로 향했다. 국민들은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았다. 세상은 달라지는데 불교는 바뀌지 않았다. 종권은 당시 총무원장 의현 스님에게 집중돼 있었다. 사회는 상식으로 가고 있었지만 불교는 비상식이 판을 쳤다. 민심을 얻지 못한 의현 스님은 정부권력에 기댔다. 선거 때마다 여당후보를 지지했다. 노골적인 찬양이었다. 의현 스님은 정권과 결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부패해 갔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현 스님은 오만했다. 정권의 힘을 믿었을 것이다. 의현 스님은 총무원장 3선을 강행했다. 종헌종법은 무시됐다. 투표권을 가지고 있던 종회의원들을 협박했다. 들끓은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세상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권력만 좇던 결과는 파멸이었다. 스님과 불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의현 스님의 총무원장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정권이 이를 비호했다. 경찰과 폭력배까지 몰려와 총무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스님과 불자들을 폭행했다.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정권퇴진을 외치며 더욱 극렬하게 저항했다. 정권은 당황했다. 권력으로도 불의를 바로잡고자하는 역사의 흐름을 거슬릴 수는 없었다. 민심의 역풍을 맞은 정권은 손을 뗐다. 권력의 장막이 걷히자 의현 스님은 항복을 선언했다. 총무원장직을 포기하고 종권을 내려놓은 것이다. 1994년 4월13일, 숨 가빴던 개혁의 순간이었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이날을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완벽하게 성공한 우리역사의 최초사례”라며 극찬했다.

잘못은 충분히 인정되지만
승려의 삶 빼앗은 건 과해

20년 지난 허물 용서하고
자비문중 본모습 찾아야

종단개혁 이후 조계종은 많이 변했다. 총무원은 총무원과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리됐고, 총무원장 겸직이 금지됐다. 입법과 행정, 사법 등 3권 분립이 도입됐다. 총무원장의 노골적 전횡이 표면적으로는 불가능한 구조가 된 것이다. 정권의 예속도 벗어났다. 최근 수배중인 철도노조집행부가 조계사로 피신하는 등 불교가 약자를 품는 ‘소도’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개혁이 남긴 성과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개혁에 대한 생각들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총무원장의 권력독점은 상당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비구니 차별과 재가자 소외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또 개혁과정에서 발생한 비불교적 요소에 대한 반성적 성찰도 필요하다. 당시 총무원장 의현 스님을 비롯해 9명의 스님들이 멸빈징계를 받았다. 승려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잘못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승려로서의 삶까지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당사자들은 이제 70~80세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금도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주변을 떠돌고 있다. 죄가 있어도 쉽게 혈연을 내칠 수 없는 인정처럼 이들 스님들이 속한 문중이나 사찰은 서로 상처를 품에 안은 채 말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 화해가 필요하다. 한때 도반이었던 이들의 허물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들추며 용서를 못하는 것은 자비문중의 모습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용서하지 않으셨던가.

▲ 김형규 부장
올해는 종단개혁 20주년이다. 이제 개혁의 과정에서 가졌던 분노와 증오, 대립의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용서만이 분노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신년회견에서 “개혁20주년을 맞아 자비의 조계종, 화쟁의 조계종, 이웃의 조계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의 이런 의지들이 멸빈된 스님들에 대한 자비와 소통으로 시작돼 화해와 용서로 귀결되는 한해로 마무리됐으면 한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1230호 / 2014년 1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