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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 집단 살육의 광기

중국역사에서 혜원(慧遠)이라는 법명으로 기억되는 스님이 두 분 있다. 동진 때의 여산혜원(廬山慧遠, 334~416) 스님과 북주와 수나라 때 살았던 정영혜원(淨影慧遠, 523~592) 스님이다. 두 스님은 황제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출가수행자로서의 기개를 지킨 스님들이다. 여산혜원 스님은 절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황제에게 부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절을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정영혜원 스님은 북주의 무제가 스님들에게 사찰을 폐하겠다고 위협할 때 유일하게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면전에서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던 스님이다.

이 두 스님의 전기(傳記)에는 우연히도 날짐승이 등장한다. ‘광홍명집’에 따르면 여산혜원 스님은 출가 전에 활을 잘 쏘았다. 한번은 활로 새끼 학을 잡았는데 나중에 어미 학을 발견하고 잡으려하니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은 이유가 궁금해 배를 열어보니, 심장이 모두 조각나 있었다. 잡혀간 새끼를 너무 염려한 탓이었다. 어미의 사랑에 감복한 혜원 스님은 보리심을 내었고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됐다. ‘속고승전’에는 정영혜원 스님이 절에서 기른 거위가 등장한다. 거위는 스님의 강론을 듣기를 좋아했다. 법문을 할 때면 강당 안에 들어가 엎드려 있다가 법문이 끝나면 문밖으로 날아갔다. 6년간 청법을 즐기던 거위가 어느 날 뜰에서 슬피 울며 더는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며칠 후 혜원 스님이 입적했다. 거위는 혜원 스님의 입적을 미리 알고 그렇게 슬퍼했던 것이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동물도 불성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 살인이 아닌 살생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이유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혜원이라는 법명의 두 스님
날짐승과 인연 기록에 남아

가축에 대한 무자비한 살생
그 과보 결코 사라지지 않아

최근 전북 고창과 부안 일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예방차원이라며 주변의 오리 수십만 마리를 땅에 파묻었다. 소리를 지르고 날개 짓하는 오리들이 산채로 흙구덩이에 굴러 떨어지는 모습은 참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광기어린 장면을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뿐만 아니라 구제역 같은 질병은 대량사육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비좁고 비위생적인 대량사육방식은 가축들의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그 결과 작은 병에도 견뎌내지 못하고 집단적으로 죽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류인플루엔자는 감기의 일종이다. 감기는 사람도 걸린다. 죽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이겨낸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철새인 가창오리가 조류인플루엔자의 발병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가창오리 20만 마리 중에 겨우 수십 마리만이 죽었다. 스스로들 이겨낸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힘이다.

이제 일상화된 집단발병과 집단살육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먼저 사육법을 바꿔야 한다. 도축될 운명일지라도 사는 동안 동물로서 본성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필요하면 법도 만들어야한다. 식생활도 개선해야 한다. 채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육식은 줄일 필요가 있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불교계에서 추진하는 사찰음식 대중화운동이 채식확산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 김형규 부장
가축들도 고통에 느끼는 생명들이다. 그런데 병에 걸리지도 않은 가축들을 예방차원이라며 무참히 살처분하고 있다. 그 과보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변종바이러스가 빠르게 창궐하는 것도, 자연재해가 심해지는 것도 인간의 악행을 꾸짖는 자연의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방치한다면 살처분의 대상은 아마도 우리가 될것이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1231호 / 2014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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