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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자카르종

행운을 부르는 하얀 새가 날아와 점지한 승리의 사원

▲ 자카르종 내부는 다른 종에 비해 화려함이 덜하다. 그러나 단단하게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사방의 건물들은 이곳이 난공불락의 요새임을 말해주는 듯 견고함을 자랑한다.

붐탕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계곡 가운데 중심이 되는 쵸스코르계곡에는 수많은 사원과 종, 궁전들이 밀집해 있다. 앞서 지나온 잠베이라캉과 쿠르제라캉 모두 이 쵸스코르계곡 내에 자리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오랜 역사와 특별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종은 아니다. 이곳 붐탕을 대표하는 종은 쵸스코르계곡의 중심부에 있는 자카르종이다.

쵸스코르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그림같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자카르종은 둘레의 길이만도 1500m가 넘어 트롱사종과 함께 부탄에서도 가장 큰 종으로 손꼽힌다.

자카르종은 1549년 샤브드롱의 증조할아버지인 가기 왕축이 세웠다. 당시 승단 회의에서 이곳에 새로운 사원을 짓기로 하고 적당한 땅을 선정했는데 당초 선택된 위치는 현재의 자카르종이 세워져 있는 언덕의 맞은편이었다. 그러나 땅을 고른 직후 어디선가 커다란 하얀 새가 나타나 허공을 세 바퀴 돌고 내려앉은 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흰 새가 내려 앉은 곳이 바로 지금의 자카르종이 세워진 자리다. 당시 이 모습을 목격한 스님들은 이것이 매우 희귀한 길조라 여겼으니 사원의 위치가 바뀐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자카르’라는 이름의 ‘자’는 새를, ‘카르’는 흰색을 뜻하니 말 그대로 ‘흰 새의 사원’이다. 후대인들은 이 흰 새가 아마도 포브지카 계곡에서 날아온 두루미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부탄 국민들은 이 흰 두루미를 길조로 여겨 이 새를 잡거나 상처를 낼 경우 재판에서 최고 종신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흰 새에 대한 부탄 사람들의 경외가 얼마가 각별한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처럼 흰 새와 얽힌 사연이 전하는 이 사원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웅장한 규모로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샤브드롱이 통치하던 1600년대 초반 자카르종은 샤브드롱의 지시로 크게 증축됐으며 1667년 티베트의 폰촉 남걀왕이 쳐들어온 것을 물리친 후 승리를 기념해 더욱 크게 확장됐다. 이 종의 공식 명칭은 율레이푼촉남걀종인데 푼촉 남걀왕을 물리친 이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이 역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함인 것 같다.

▲ 자카르종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워터타워.

자카르종의 성벽 밖에는 추종이라고 불리는 워터타워가 붙어있는데 강물을 끌어올려 가둔 인공 물탱크다. 신기하게도 적이 침입하려하면 자명고처럼 이 물탱크에서 소리가 울려 적의 침입을 알린다고 한다. 궁금하지만 들어가 볼 수는 없다니 밖에서 눈 구경으로 만족할 수밖에.

1649년 샤브드롱의 증조부가 건축
스님들이 정한 사원 부지 맞은 편에
흰 새 날아와 하늘 세 바퀴 돌고 착지
사원 옮기고 ‘자카르=흰 새’로 명명

티베트 푼촉 남걀왕 침입 물리친 후
지금과 같이 큰 규모로 대대적 증축
둘레 길이만 1500m 트롱사종 버금
종 옆 워터타워엔 ‘자명고’ 전설이

망자 공양물 ‘똘마’ 만드는 스님들
방문객 질문에도 친절한 설명 감명

▲ 자카르종으로 올라오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빼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자카르종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잠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전망이 시원하다. 자카르종이 자리하고 있는 언덕 아래에는 부탄의 1대 국왕이었던 우겐 왕축이 사용한 작은 궁전 ‘왕디초올링팔레스’도 있다.

▲ 자카르종이 자리하고 있는 언덕 아래에는 부탄의 1대 국왕인 우겐 왕축이 사용하던 작은 궁전 ‘왕디초올링팔레스’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언덕 위에 보이는 지붕이 자카르종이다.

자카르종 안으로 들어서니 앞서 보았던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가운데 제법 넓은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장식은 트롱사나 푸나카 등 다른 종들과 비교해 그리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다부진 내부 구조는 사원이나 행정기관보다는 요새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보여준다. 광장 구석 바닥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보니 미로처럼 좁고 어두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여러 개의 방이 개미굴처럼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복도 쪽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둡지만 방 안 창문은 밖으로 연결돼 있어 그리 어둡지 않다. 종이 높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이런 구조가 나타난 것이다. 이 방들은 지금까지도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광장으로 나와 법당으로 향하는데 입구에 있는 작은 방 안이 소란스럽다. 궁금해 안을 들여다보니 스님 3~4명이 둘러 앉아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보릿가루와 버터를 섞은 반죽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빚은 후 장식해 탑처럼 만드는 공양물. 티베트 법당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의 똘마(Tor ma)다. 보릿가루와 버터를 반죽해 다양한 문양과 조각을 만들어 불단에 공양하는 똘마는 가뜩이나 화려한 티베트불교사원의 법당을 더욱 화려하게 장엄하는 주인공 중의 하나다. 그 정교함과 화려함, 그리고 아름다운 문양과 다양한 색상은 티베트불교법당을 찾은 이방인들의 눈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여러 법당에서 수차레 똘마를 본 경험이 있지만 이처럼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 보릿가루를 반죽해 똘마에 장식할 작은 조각들을 만들고 있는 자카르종의 스님.

똘마는  모두 스님들의 손으로 직접 제작된다. 나무를 이용해 댐이라 불리는 틀을 만들고 보릿가루 반죽으로 그 위에 살을 붙여 튼튼한 몸통을 만든다. 그 위에 다시 버터로 만든 정교한 조각 까르젠을 장식하면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 똘마가 완성된다. 부탄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반드시 이 똘마를 만든다. 똘마는 7일간 불단에 올려 망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공양물로 사용한 후 산봉우리나 지붕 위, 계곡 아래 등 깨끗하고 성스러운 곳에 갖다 놓는다. 산짐승이나 새들에게 먹이로 주는 것이다. 똘마를 만드는 모습은 꼭 초등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찰흙을 갖고 만들기를 하던 모습 그대로다. 손에 물을 적셔가며 찰지고 매끄럽게 보릿가루를 반죽하고 버터조각을 만드는 스님들의 모습도 한결같이 즐겁고 능숙해 보인다.

문득, 화장을 한 후 그 유골과 재를 섞어 만든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혹시 이 똘마에도 유골이 섞여있냐’고 물으니 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준다. 화장 후 유골과 재를 진흙과 섞어 작은 탑 모양으로 만들거나 소형 틀을 이용해 불상이나 수호신 부조의 석판으로 찍어내는 것은 차차(TsaTsa)로 똘마와는 다르다는 것. 차차는 화장 후 만들어 길가나 숲 속에 모아두기 때문에 작고 개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란다. 무엇보다 진흙으로 만들어 짐승들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저절로 풍화될 때까지 놓아두는 것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준다. 더불어 이 속에는 뼈나 유골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준다.

▲ 똘마를 만들던 스님이 각 부분의 명칭과 만드는 방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7일간의 축원은 아마 우리의 천도의식과 비슷하지 않을까. 다만 그 기간 동안 여러 음식을 장만해 망자에게 공양하는 우리와는 달리 보릿가루와 버터를 이용해 만든 똘마로 동물들에게 보시를 베푼다는 점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후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은 바로 보시, 그것도 말 못하는 짐승과 같이 약한 자들에 대한 자비심이라는 가르침을 하나 더 배운다.

똘마나 차차는 모두 티베트불교 문화권 어느 곳에서나 비교적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티베트 불교의 특징이다. 이곳 법당에도 크고 화려한 똘마들이 제법 많이 있다. 그런데도 새 똘마를 만드는 스님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아마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법회가 많이 밀려있나 보다. 그래도 잠시 손길을 멈추고 낯선 방문객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준 이름 모를 스님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붐탕=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31호 / 2014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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