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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폄훼한 서명원 신부의 변명

  • 기자칼럼
  • 입력 2014.02.06 14:10
  • 수정 2014.02.10 10:32
  • 댓글 13

기자칼럼-이재형 기자

‘가야산…’ 2쇄 서문서 입장 표명
학자들 반발에 “감정적 수준 비판”
“영어논문 이해 못했다”고 명시
학자들 “최소한의 잘못 인정 없이
학자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격”

 
오늘날 한국불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고승인 성철(1912~1993) 스님을 군사정권에 부응한 인물로 서술해 논란을 빚은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서강대 출판부)가 최근 2쇄를 발간했다.

저자인 서명원(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신부는 2쇄 서문에서 문제의 영문논문 ‘20세기 한국사와 퇴옹성철의 사자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책 초판이 출간되자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 논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견해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피상적이거나 부분적인 이해로서 책의 전체를 평가하는 수준이었으며, 감정적이고 투사적인 수준의 비판, 흑백논리에 빠진 비학문적․비불교적 반박의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필자의 기대와는 달리 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복합적인 짜임새로 구성돼 있는 영어논문을 이해하는데 많이 어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서 신부의 변론이 그리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학자들은 “성철 스님을 모독한데 대한 사과는커녕 한국의 불교학자들까지 싸잡아 모독하고 있다” “논문에 대한 지적이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은 아집이자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시각이다” 등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성철 스님에 대한 비판은 서 신부가 처음은 아니다. 1980~90년대 성철 스님의 지눌 스님 비판으로 논쟁이 불거지면서 성철 스님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군부독재 시절, 성철 스님의 ‘침묵’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적지 않았다. 당시 법정, 진관, 지선, 법성 등 스님들과 많은 재가자들이 군사정권에 항거할 때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은 아무런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문에 성역이 없다는 점에서 성철 스님의 이같은 입장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학문적 비판에는 명확한 근거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에 불과할 따름이다. 서 신부는 “비판자들 주장과 달리 (자신은) 성철 스님이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결코 없으며, 반대로 성철 스님은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기 위해 아낌없이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책에서 “성철의 돈오돈수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를 떠올리게 한다” “성철이 해인사 방장에 오른 것은 박정희 정권에 용기를 얻어 수락한 것 같다” “성철과 (독재자인) 박정희, 전두환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성철의 언어적 폭력 방식은 독재정권의 빨갱이 논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명확한 자료 없이 추정에 근거한 그의 주장들이 정당한 학술적 비판으로 받아들여지기란 쉽지 않다. 정치적인 시류에 부응한 인물도 정치승의 범주에 포함된다. 따라서 그의 주장처럼 성철 스님이 군부독재의 시류에 부응했다면 성철 스님은 정치승이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 신부는 초판 서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펴낸 서적임에도 이 부분만 영어로 수록한 이유로 “한글로 번역할 경우 곤란한 문제(issue)를 일으킬 수 있다는 어느 학자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될 만한 부분만 한글로 번역하지 않은 것 자체가 한국인을 무시한 것일 수 있다. 논문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영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는 서 신부의 항변은 또 다시 한국인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서 신부가 정말 문제되는 게 싫었다면 애초 영문 논문을 뺐어야 했으며, 성철 스님의 장단점을 올곧게 드러내려 했다면 마땅히 한글로 번역해 실어야 했다.

선가에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는 말이 있다. 입을 여는 순간 이미 착오가 생긴다는 뜻이다. 언어의 숙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서 신부는 “이 영어 논문에 대한 상당한 오역을 불식시키기 위해 한글번역을 시작했고, 최대한 빨리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서 신부의 번역논문으로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232호 / 2014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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