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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섭 전 신라대 총장

“인간의 선한 본성·가능성 일깨워 성장 돕는 게 참교육”

▲ 정홍섭 전 신라대 총장은 1947년 경북 경주 출생. 1970년 경북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졸업 후 신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를 거쳐 부산시 교육위원회 부의장과 한국교육학회 부회장을 지낸 후 2007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신라대학교 4, 5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퇴임 후 공직자 최고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올해 들어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가 전국적으로 5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 지도에 애를 먹고 있는 교사들이 교단을 등지려 하기 때문이다. 꿀밤 한 대만 주어도 학부모가 교장실로 달려 가 항의하는 시대니 ‘사랑의 매’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입제도 다양화에 따라 사설학원 비중이 높아진 것도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학교와 학원 비중을 50대 50으로 보지만 일각에서는 그 균형추마저 학원으로 넘어갔다고 토로한다.

▲ ‘강물은 굽이쳐도 바다로 간다’
‘강물은 굽이쳐도 바다로 간다’는 현 교육풍토에 비춰볼 때 캄캄한 동굴에서 들어 올린 횃불 같았다. 한국 특유의 대학입시교육이 낳은 폐단을 치유함은 물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교육의 이정표를 올곧이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을 관통하는 핵심 코드가 ‘인드라망’과 ‘불성’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이채로웠다. 저자는 전 신라대 정홍섭 총장.

등록금 받아오라는 담임 선생님 말에 오전 수업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꽤 있었던 1960년대. 그도 중학교 등록금을 내지 못했다. 고개 숙인 채 발길을 돌리는 그에게 담임선생님의 위로 한마디. ‘기죽지 마라!’ 너무도 고마웠다. ‘나도 가난하거나 뒤쳐진 학생들을 따듯이 돌보는 선생님이 되겠다’며 교사의 꿈을 꾸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한 채 막노동으로 집안 생계를 꾸려가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다. 거기서 대구상고 야간학교라도 다니게 된 건 ‘행운’이었다. 새벽엔 신문배달, 낮엔 방직공장 사환, 밤엔 야간부 학생. 점심 거르는 건 예사였다. 교과서 한 권 사기도 버거워 영어, 수학, 주산 책만 사고 나머지 과목은 친구들에게 빌려 수업을 받았다. 장갑도 없이 한 겨울 맨손으로 자전거를 타고 염색이나 가공할 천을 나르던 그가 경북대 사범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자 주위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다.

부산내성중학교 교사와 신라대학교 전임강사를 맡더니 신라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했다. 그것도 4대와 5대를 연임했다. 2007년 참여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맡으며 세계의 석학들과 함께 ‘교육비전 2030’도 내놓았다. 창의인성교육, 핵심역량교육, 혁신학교, 입학사정관제, 기숙형 자율학교, 대안학교지원 등 현재 미래지향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여러 교육제도들이나 용어들이 이 때 나온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꾼 사람도 정홍섭 전 총장이다.

신문배달·공장·야간고교
중학교 교사·대학총장 역임

비교무한경쟁은 자만·상실 불러
선한 본성·잠재역량 일깨우고
성장토록 조력하는 게 참교육

첨단 정보기술 홀로 감당 안돼
배려협동 조율 능력자가 ‘성공’
인드라망에 담긴 상생의미 중요

8년간의 대학총장과 대통령직속기관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 역임 등 38년 동안 교육분야에 전념한 그는 2012년 11월 총장직에서 내려 온 뒤 밀양 삼랑진으로 귀촌해 된장농원 ‘돌담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유년부터 청년기까지 따라다녔던 고난의 숙명! 하늘 향해 원망의 절규를 내질렀을 법도 하다.

“곶감을 만들려고 감을 햇볕에 말리는 한 신문의 사진기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1천 개의 햇살과 1만 개의 빗줄기를 맞고 비로소 감이 됐다. 얼마나 힘들었니?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곶감이 되어라.’ 거저 익는 가을은 없습니다. 한 인생이 제대로 여물어 좋은 결실을 보려면 역경도 이겨내야지요.”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고난이라는 뜻이다. 그의 책 한 구절이 스쳐갔다. ‘코스모스를 보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은 사진 찍는 사람의 욕심일 뿐이다. 역경 속에는 우리 삶의 지혜가 되는 소중한 지혜의 보물이 숨어 있다.’ 이 속에 담긴 속뜻이 궁금했다.

“내가 좌절하지 않는 한 어떤 얄궂은 운명이나 조건도 결코 나를 망치지 못합니다. 운명에 짓눌려 무력감에 시달리는 사람과 주어진 운명을 영양분 삼아 성장해 가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을 알뜰하게 태워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신라대학교 총장 재임시에 학생들에게 강조한 게 있다.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에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잠시 굽이치고 맴돌겠지만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흐르고 흘러야 평화의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인생철학은 간단명료하다.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일에 온전하게 몸과 마음을 다한다.’ 군더더기 없는 선적 풍미까지 느껴진다. 경주 출생인 그는 일찌감치 불교를 접해 불자가 되었다. 하지만 불교매력에 푹 빠지게 된 건 대학교수로 자리 잡고 교육심리학자로서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유식학에 접근하면서부터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다’는 이치를 터득하면서 그의 명상 정진은 깊이를 더해갔다. 하루 단 몇 분이라도 명상 하고자 하는 의지는 그의 다실 이름 관정재(觀靜齊)에서도 느낄 수 있다.

“외부로 향하는 삶만 추구하면 평생을 살아도 자기 안에 얼마나 큰 미지의 세계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자기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모든 말은 침묵 속에서 시작한다’ 했습니다. 언행이 가볍지 않도록 고요한 사색을 통해 단련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첫 교사 부임 학교는 부산내성중학교. 그의 꿈은 오래전인 1974년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우리 교육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관료적 통제, 군대식 훈련, 획일적 내용의 주입식 교육. 봉건사회에서나 행할 낡은 교육방식임을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시 여겼습니다. 교육계를 혁신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아이들의 행복도 없다고 판단했지요.”

중학교단에서 내려 와 대학원으로 향했다. ‘참교육’이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서였다. 그의 교육관이 궁금했지만 그보다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것 하나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는 사회가 키운다’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아이가 지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다른 말로 사회화라 합니다. 아이는 세상을 닮아가면서 자라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를 교육적 환경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의 인성이 황패해진다고 모두들 걱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출세와 금권을 좇아 경쟁하는 성인사회 모습이 아이에게도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엄친아’를 예로 들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교와 경쟁을 강요하는 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비교는 인간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비교를 통해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립니다. 비교당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열등감은 좌절의 고통을 안겨줍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을 천시하게 되고,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교만해집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비교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일류고등학교나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평생 무능력자로 분류해버리는 사회야 말로 후진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역경이나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이 점점 사라집니다. 그런 경직된 풍토가 사회 전반에 깔리면 그 사회는 역동성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현 교육사회 풍토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새로운 물꼬가 필요한데 이 역시 인식의 대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단초는 무엇인가?

“지식과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더 첨단화된 기술과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여러 분야의 기술을 융합하고 여러 사람이 협력하면서 이루어지는 일이 대부분일 겁니다. 남을 배려하고 협동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개인, 이기주의 사람은 도태됩니다. 인드라망 속에 담긴 연기상생 의미를 알아채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열릴 게 분명합니다. ‘나보다 우리가 더 똑똑하다’는 말로 대변되는 집단지성의 위력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 신라대학교를 ‘에코 캠퍼스’로 선언한 정홍섭 총장이 자전거(사진 왼쪽 맨 앞)를 이용해 학교로 향하고 있다.

교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사는 더 이상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과 문제해결 과정을 도와주는 조력자,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감성적 능력 배양은 인간과 인간간의 교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인격적 감화를 줄 수 있는 감성의 관리자여야 합니다. 교사의 역할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막중해 집니다. 그런 만큼 교사들에게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고 부단한 자기연찬을 하게 하는 지원체계가 시급합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의미도 교육계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존재는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하셨습니다. 교육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근본적으로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설명을 들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육 또한 그렇습니다. 개인이 가진 선한 본성과 잠재적 가능성을 일깨우고 성장하도록 조력하는 것이 참교육이라 봅니다.”

부처님 법에 근거한 그의 교육관이 너무도 청량하게 느껴졌다. 언제쯤에나 ‘참교육’이 이 땅에 실현될까! ‘이상’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한 발씩이라도 내디뎌야 한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233호 / 2014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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