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적 조사·전승장려정책으로 무형유산보호 선진국 발돋움

기자명 황권순
  • 기고
  • 입력 2014.03.03 18:29
  • 수정 2014.03.03 18:30
  • 댓글 0

 무형문화유산 어떻게 볼 것인가
1. 가치와 특성
2. 법적·제도적 문제
3. 효율적 활용방안

▲ 불교무형유산의 경우 불교공동체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큰 종목을 우선적으로 발굴한 뒤 종단 내부에서부터 보호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진은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연등회.

우리나라 무형문화유산의 보호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서 출발한다.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기타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을 무형문화재라고 정의하고, 1964년에 제1호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양주별산대놀이, 꼭두각시놀음(현 남사당놀이), 갓일, 판소리,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등 7종목을 지정한 것이 중요무형문화재의 첫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16종목,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31종목, 시도지정 무형문화재 452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옛 사진을 보면 지난 50년간 우리 삶의 모습이 얼마만큼 변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급하게 들이닥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는 무형문화유산의 보고(寶庫)였던 농촌공동체를 급격히 해체시켰고, 도시로 모인 사람들은 도시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뿌리였던 전통과 관습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문화재보호법이 없었다면, 특히 무형문화재 지정과 보호를 위한 조항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곁에 남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은 얼마나 될까?

1968~1979년 전국조사로
한민족 삶의 흔적들 채록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도 박차

보호정책 우수성, 세계가 인정
유네스코·중국서도 벤치마킹
전승 활성화방안 마련은 과제

불교유산, 단절위험 적으나
파벌 등으로 어려움 겪을 수도
내부결속·자율적 통제 필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무형유산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것을 미리 예측했던 선각자들은 조금이라도 우리 것이 남아있을 때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국을 누비며 무형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전승자를 찾고,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었다.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진행된 전국민속종합조사는 그 백미였다. 전국을 광역시도로 나누어 우리 민족의 삶의 흔적을 샅샅이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대역사였다. 직접 현장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북한지역도 실향민을 대상으로 한 구술채록 방식으로 그 조사기록을 남겼다. 문화재청도 이에 발맞춰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에 박차를 가하고 보유자(흔히 인간문화재라 칭함), 전수교육조교, 이수자로 이어지는 전승계보를 갖추도록 장려하는 등 세대간 전승에 중점을 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사회환경의 변화는 행정제도의 파급효과보다 더욱 빨랐으며 무형유산에 대한 사회경제적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전통적 살림살이는 현대적 주방기구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고 전통공예품은 더 이상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지 않는 박물관 유물이 되어 버렸다. 트롯트를 앞세운 현대가요가 대중문화로 자리잡고, 오페라, 관현악 등 서양식 문화가 고급문화로 인식되면서 우리 고유의 민속음악, 궁중정악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특별한 날, 특별한 잔치에 초청되어 구경거리로만 간간히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이제는 공연장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사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장소조차도 많지 않다. 다행히 무형유산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이만큼의 유산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전통문화를 포기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준 수많은 전승자들과 그 가치를 미리 깨닫고 현장을 누빈 선각자들의 노력 덕택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제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무형유산 보호정책의 우수성을 인정, 벤치마킹하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을 제정할 때에도 우리의 제도를 모범삼아 큰 틀을 만들었고, 중국도 2011년 비물질문화유산법을 제정하면서 우리 제도를 참작하였다. 이는 인간문화재라는 용어가 ‘Human Living Treasure’로 번역되어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통용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제도는 없듯이 우리 법률이 무형유산의 전승활성화에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무형유산의 보호범위가 너무 협소했다. 전통기능과 전통예능으로 한정하여 우리 민족의 삶의 양식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였다. 둘째, 특출한 기량을 가진 소수의 몇 사람만 보호하는 집중육성 방식이었기에 보유자로 인정받지 못한 대다수의 전승자는 오히려 사장되고 말았다. 이는 전승의 폭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셋째, 원형유지 원칙에 따른 사승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새로운 ‘유파, 째, 바디’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종목의 지정이나 전승자를 인정하는 행정처리에 신경쓰다보니 전승환경 전반의 여건개선에 소홀했고, 전승의 폭이 좁아져 신규 전승자 유입이 줄어들고, 일상적 삶 속에서 전승되지 못하는 격리 현상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법률일지라도 그 영향력은 막강하여 때론 법·제도에 따른 전승 왜곡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소리, 춤, 악기연주 종목의 전승자들은 대체로 유파, 째, 바디별로 구분하여 전승자를 충원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제도적으로 이를 구분하여 인정하는 순간, 전승자들은 인정받은 곳으로 몰리게 되고 인정받지 못한 유파, 째, 바디는 전승단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추후에도 제3의 새로운 유파, 째, 바디는 형성되지 않아 결국 무형유산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질적 수준이 낮아진 획일화된 전승체계만이 남게 된다. 더구나 보유자 인정심사 대상을 전수교육조교와 이수자로만 제한해 온 기존 관행과 겹칠 경우, 보유자를 정점으로 한 전승체계 부조리는 더욱 심화되고, 지정제도 무용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형유산 법·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전승자 인정심사에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전승의 폭이 넓지 못하니 조사자 선택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객관적 지표에 준거한 평가가 이루어져도 논란이 확산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이는 지난 50년간 전승자 인정에 관한 행정에 일관성이 없어 전승 현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에 그 1차적 원인이 있겠으나, 보유자·보유단체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가 너무나 분명하여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소하고자 지난 3년간(2011~2013)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인정 제도에 관한 대폭적인 개정이 이루어졌다. 첫째, 조사자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모든 평가지표는 정량지표로 구성하였다. 둘째, 현장조사 권한을 가진 조사자를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해 관련 학회, 전문가집단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문화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절차를 마련하였다. 셋째, 신규종목 지정의 경우 학술연구를 먼저 실시하여 해당 종목의 특성과 가치를 확인한 후 전승자 기량조사를 실시토록 했다. 넷쨰, 보유자 인정대상의 범위를 해당 종목의 전수교육조교, 이수자, 시도지정 무형문화재 전승자 이외에도 대학에서 관련분야를 전공한 사람,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사람, 강사·교사 자격을 가진 사람 등 일반전승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대폭 넓혔다. 다섯째, ‘유파, 째, 바디’별로 구분하여 전승자를 인정하지 않고 해당 종목으로 통칭하여 인정함으로써 어느 유파, 어느 바디의 전승자도 기량이 우수하면 보유자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유파, 째, 바디’는 행정제도의 영역이 아니라 학문적·전승현장의 영역으로 남겨놓음으로써 제도의 폐해를 줄이고자 하였다. 이를테면 특정 유파에서 현재에는 기량이 뛰어난 전승자가 없어 보유자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다음에는 해당 유파에서 보유자가 배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특정 유파로의 전수생 쏠림을 막고 전승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때로는 유파를 통섭하여 기량이 더 뛰어난 전승자가 배출될 수도 있을 것이며, 새로운 유파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섯째, 전승이 취약하거나 활성화된 경우에는 정책적으로 다수의 보유자를 인정토록 하여 전승단절의 위험을 해소하고 전승자간의 내부경쟁을 통해 전승 독점의 폐해를 줄이도록 하였다. 일곱째, 국회에 계류중인 무형문화유산법률은 도제식 전수교육 이외에 대학 등 학교를 통한 전수교육도 인정하여 변화하는 전승현장의 모습을 반영토록 하였다.

비로소 기존의 하드웨어적 보호장치에 소프트웨어적 개선방안을 담은 무형유산 선진국다운 보호 방안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아직 전승단절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승이 활성화된 단계, 일상생활에서 살아있는 유산으로의 안정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 부분은 다음 편 ‘무형유산의 활용방안’에서 다루기로 한다.

다른 분야와 달리 불교공동체는 그 전통이 건실히 유지되고 있기에 전승단절의 위험은 비교적 적으나, 개별 종목 내부에서 파벌, 알력으로 전승에 곤란을 겪을 가능성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영산재, 연등회, 수륙재 등 보존회를 구성하여 단체가 전승해 가는 단체종목의 경우 보존회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불교공동체가 자율적인 통제장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종단간의 헤게모니 쟁탈이 아닌 해당 무형유산이 불교공동체에서 갖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내부운영 원칙을 세워야 한다. 불교무형유산을 목록화하는 작업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국회에 계류중인 무형문화유산법률에 따르면 특정 보유자의 인정 없이 종목만으로도 지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목록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동체 내에서 해당 유산의 의미와 가치 규명, 원활한 전승체계, 합리적인 보호방안 등이다. 특히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고, 불교공동체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큰 종목을 우선적으로 발굴하여 종단 내부에서부터 보호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우수한 기량을 가진 전승자를 찾아, 원활히 전승될 수 있는 전승환경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교무형유산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것이 불교공동체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은 둘째치고라도 불교무형유산의 전승을 통하여 불교공동체 내부 결속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제도는 모든 것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종단을 비롯한 불교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한 까닭이다.

황권순 문화재청 창조행정담당관 koreasoc@hanmail.net
 

[1235호 / 2014년 3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