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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동체 핵심 요소는 무형유산…내부 전승의지 관건

기자명 황권순
  • 기고
  • 입력 2014.03.11 15:32
  • 수정 2014.03.11 15:38
  • 댓글 0

3. 효율적 활용방안

무형문화유산 어떻게 볼 것인가
1. 가치와 특성
2. 법적·제도적 문제
3. 효율적 활용방안

 

▲ 영산재 전수자인 범패와작법무보존회장 능화 스님의 영산재 시현 모습.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

지난 201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50주년을 맞아 국민공모를 거쳐 마련한 문화재청의 슬로건이다.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소중히 잘 보전해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정책목표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번 전승이 단절된 무형유산은 후대에 되살리기가 매우 어렵다. 비록 사진, 동영상, 구술채록 등 다양한 기록화 방법으로 언제 소멸될지 모르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세심히 그 흔적을 남기고는 있지만 온전하게 예전의 모습을 재현해 내기는 어렵다.

문화유산은 시장논리 넘어선
국가 뒷받침 필요한 ‘공공재’
수요 진작시킬 인프라 절실
국민과 접점 늘 때 활성화

교계, 전승자 양성 대책 마련
전문기구 설립 검토도 필요
신도들 자발적 참여 ‘큰 힘’

일본의 ‘이세신궁’ 사례를 살펴보자. 일본 3대 신궁 중 하나인 이곳은 전체 건물을 정확히 20년마다 허물고 옆에 있는 부지에 똑같은 모습으로 옮겨 짓는다. 나무도 주변 숲에서 키워서 조달한다고 한다. 건물 수명이 20년이라서가 아니라 선조들의 건축기술을 물려받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때마다 다시 짓고 있다. 그 결과 이 신궁은 690년 최초 만들어진 모습을 1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경제논리로 따진다면 기둥 밑에 받침돌을 두고 잡석을 깔아 빗물에 나무가 썩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어 건물 수명이 다할 때까지 두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세신궁의 건축기법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을까?

문화유산은 국방, 외교, 경찰, 복지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장에 맡겨놓아서는 서비스가 효율적으로 생산, 배분, 소비될 수 없는 공공재이다. 공공재의 성격에 맞게 국가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하나 현재의 문화유산 관리체제는 그렇지 않다.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는 비용부담자(개발사업 시행자)와 수익자(국가 또는 국민전체)가 달라 암암리에 훼손되거나 아니면 국토개발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규제만으로 인식되고 있고, 국보·보물 문화재의 수리·복원은 문화유산 가치제고가 최우선이 아닌 최저비용 논리에 따라 진행됨으로써 예산을 투입할수록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는 구조적 문제를 보이고 있다.
무형유산 분야도 이와 다르지 않아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장에 맡겨 놓기보다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무형유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그 가치를 맘껏 향유하면서도 전승단절의 위험 없이 우리 곁에 둘 수 있는 방법, 우리에게도 일본의 ‘이세신궁’ 사례와 같은 세심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무형유산의 사회적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현재 인간문화재가 만든 전통공예품을 보고, 구입하고, A/S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벌써 39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은 장소가 없어 매년 인사동 갤러리나 민속박물관을 전전하면서 개최하고 있다. 전통예능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내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관광객에게 우리의 소리, 춤,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전용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오죽했으면 외국인들로부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하소연을 듣고, 현대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인사동에서 플래시몹으로 ‘아리랑’ 기획공연을 벌였을까? 우리가 중국에 가면 ‘경극’을, 일본에 가면 ‘가부키’와 ‘노’를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전통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전용공간이 필요하다.

둘째, 무형유산에 대한 친밀성을 높일 수 있는 눈높이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현대 생활에도 소용될 수 있는 공예품의 디자인을 개발하고, 재료와 품질, 가격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전통공예품 인증제’를 도입해 거래시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또한 언제 어디서든 자주 접할 수 있도록 전통공예품을 전시하고 홍보할 수 있는 ‘전통공예품 은행’을 만들어 국민과의 접점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원형에 바탕하되, 현대인과 호흡할 수 있는 브랜드화된 전통공연 프로그램도 만들어내어야 한다. 긴긴 시간 판소리를 완창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퓨전 공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무형유산을 비롯한 전통문화 전반의 교육 기반이 강화되어야 한다. 청소년 인성교육에서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데에 무형유산만큼 유용한 자원도 없다. 초중등학교에 파견하는 문화예술교육사 중에서 무형유산 전승자의 비율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 초중등학교 중 일부를 무형유산 전수학교로 지정해 정책적으로 무형유산 전승자를 육성할 필요도 있다. 지자체의 주민자치센터 교양강좌에도 무형유산 과목을 넣어 고령화 시대에 우리 것을 찾는 수요에 적극 대응하여야 한다. 최근 농림부와 농촌진흥청이 귀농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에 발맞춰 농촌공동체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진정한 공동체 복원을 위해서는 영농기술 지원 이외에 마을농악, 당산굿, 절기별 민속놀이 등 무형유산을 활용해 주민 결속을 높이는 문화공동체 복원 사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집중적인 투자로 무형유산 분야의 대표적 관광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전승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무형유산이 상품성 있는 존재로 인식돼야 한다. 유형유산에 의존하는 관광자원화는 한계가 있다. 매력적인 볼거리, 즐길거리, 살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무형유산은 지역에 전해오는 전설, 설화, 민담, 민간신앙, 생활관습, 농경·어로 등의 전통지식을 아우르기에 현대적 수요에 맞게 조금만 가공·연출한다면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 중국의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시리즈’는 그 좋은 사례이다. 지역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극으로 꾸며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항주는 백사전 설화를 소재로 한 ‘인상서호’를 앞세워 서호 권역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도 했다.

매년 5월이면 중요무형문화재 ‘연등회’가 열린다. 제등행렬에 참여하는 불교공동체 구성원들은 이 행사를 통해 공동체 소속감을 높이게 된다. 의례행사가 의식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공동체 내에서의 결속력을 높이는 것이다. 불교무형유산이 불교공동체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불교무형유산이 효율적으로 활용돼 공동체 내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불교무형유산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교공동체 내에서 불교무형유산의 전승자를 길러내는 다양한 통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불교무형유산에 대한 수요를 내부에서의 공급으로 충당코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중앙승가대나 교육관련 기관에서 불교무형유산에 대해 가르쳐야 하고, 기능이나 재능을 가진 전승자를 배출시켜 각급 사찰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각종 불사건립 시 일반 전통건축과 달리 불교 고유의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내부에서 배출된 불교무형유산 전승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탱화와 불상을 새로 봉안하기 위해 외부의 장인을 찾아다니다 정체성 없는 작품을 봉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불교 본연의 의미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전승자를 길러내려는 의지를 갖고, 탱화 등 장엄물의 제작, 영산재, 수륙재, 연등회 등의 대형 의례행사에 최고의 재능을 가진 전승자들로 채워갈 수 있도록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불교무형유산의 진정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연등회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논의 당시 두 가지의 논란이 있었다. 현재 연행되는 연등회가 일제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역사성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와 연행되는 모습이 지나치게 개방적(뽀로로나 둘리의 등장)이어서 중요무형문화재로서의 지정가치가 있는가의 논의였다. 연행의 지속성이 역사적 자료로서 검증되고 단순 해프닝으로 인정돼 큰 문제는 없었으나 불교무형유산의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다른 분야에서 불교무형유산을 발굴하거나 전승할 때에도 신중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 불교무형유산 전승에 신도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수륙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때, 진관사, 삼화사, 백운사 사찰 신도의 참여와 호응이 지정가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고려됐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심사 시 공동체의 전승의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불교무형유산은 공동체 내에서 먼저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신도와 함께 전승하는 공감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은 참여의 효능감을 높여 불교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여줄 것이다.

넷째, 불교무형유산 조사연구 역량을 높여야 한다. 앞의 세 가지 요소가 필요조건이라면 네 번째는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불교공동체 내에서 불교무형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발굴하고 전승자를 찾고, 종단간의 협력을 이끌고, 안정된 전승기반을 갖춰가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불교무형유산 전문기구의 설립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황권순
불교무형유산은 이제 조금씩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그 동안 소외되었지만 불교공동체의 본질적 요소를 이루고 있기에 종단과 신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 가치를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불교무형유산은 우리 모두의 무형유산이지만 일차적으로는 불교계 스스로가 보호, 전승, 활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불교공동체 구성원이 앞장서야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가운데 지속가능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황권순 koreasoc@hanmail.net
 

[1236호 / 2014년 3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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