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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금강경야부송(金剛經冶父頌)

기온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곧 봄날의 나른함이 찾아오고 나른함에 기대어 잠깐 조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때 살짝 스치는 꿈은 대개는 강아지꿈이기 십상이지만 더러는 번쩍하고 영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수염을 깊게 드리운 분이 주장자를 세우고 앞에 앉았다. 눈빛이 정갈하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투명한 광채를 부드럽게 뿜어낸다. 머리는 스님처럼 삭발을 하셨다. 대뜸 필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신다. 목소리도 부드러우면서 힘찬 종소리처럼 웅웅 울리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시에 대한 감상문은
시 자체가 준엄한 독자
구멍없는 피리가 내는
태평가를 들으시길

“그대가 어느 신문에 시향만리를 연재하는 사람이시오?” “예 그렇습니다만….”

조용하고 정중하게 대답을 드렸다.

“그걸 감상이라고 쓰고 있소?”

나지막하지만 폐부 깊은 속을 찔러들어오는 날카로움이 묻어있다.

“예. 손으로 써서 타이핑을 부탁 합니다” “어허 그 말이 아니고 그대가 연재하는 시가 그대의 감상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거라고 생각하고 있소?”

아, 내가 지금 꿈속에 들어와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꿈속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분을 만났으니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계속 대화를 나누기로 생각했다.

“노인장님, 제가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질문은 처음 받아봅니다. 그런데 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시한테 맡기고 노인장님께서는 제 감상문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인장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듯 했다. 노인장님이 잠시 생각하는 동안 스스로 안으로 돌이켜 생각을 해보았다. 감상이랍시고 이얘기 저얘기 떠들고 있긴한데 이 노인장님의 말씀대로 시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게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감상의 대상인 그 시야말로 가장 준엄한 독자이다. 생각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입체적으로 펴진다. ‘금강경’도 강의한 적이 있고 ‘법화경’도 스터디 형식을 통해서 읽긴 했는데 ‘금강경’은 필자의 금강경 강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갑자기 두개골을 덮고 있는 근육 전체가 입체적으로 살짝 당겨지는 느낌이 선명하게 든다.

“쓰레기요.”
노인장님의 입에서 답이 흘러나왔다.
“부연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히말라야를 등반해보았소?” “아직 못 가봤습니다” “가보고 안가보고는 중요한 게 아니오. 그대가 종이에 히말라야라고 쓰면 그 종이위에 히말라야산이 제깍 달려와서 앉소?”

“제가 히말라야산이여 이 종이위에 달려와서 앉으세요 하고 써도 히말라야산은 그냥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의 감상문은 쓰레기라고 내가 말하는 것이오. 히말라야산 입장에서 보면 히말라야라고 쓴 팻말조차도 쓰레기인 것처럼 말이오.”

차라리 가슴속이 후련해졌다. 가끔 원고독촉 전화를 받을 때마다 했던 생각을 노인장님께 여쭈어 보기로 했다.

“노인장님. 옳습니다. 백퍼센트하고 이십퍼센트 더 옳으신 말씀입니다. 쓰레기인 이 감상문 연재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박 선생 아직도 성질머리를 그 따위로 쓰니 주변사람들에게 아주 자주 성질머리 참 더럽다는 말을 듣는 것 아니겠소”

“쓰라는 얘기십니까, 말라는 얘기싶니까?” “거원, 성깔하고는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로 써보시오. 이제와서 안쓰겠다고 하면 피곤해질 사람들도 더러 있지 않소” “재활용이 가능한 감상문은 어떤 감상문입니까”

“금강경야부송(金剛經冶父頌)의 구절을 그대가 기억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소
只把一枝無孔笛 (지파일지무공적)
爲君吹起太平歌 (위군취기태평가)
한자루 구멍없는 피리를 집어 올려서
그대위해 태평가를 불어드리리”

꿈에서 스르르 깨어났다. 주장자도 노인장님도 사라지고 없다. 그만 존함도 여쭤보지 못했다. 다시 찾아오시겠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37호 / 2014년 3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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