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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두려워 비구니 참여를 제한하나

  • 기고
  • 입력 2014.03.24 16:09
  • 수정 2014.03.2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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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부터 열린 197차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에 상정된 비구니 스님의 호계위원 참여를 위한 종헌개정안이 또 다시 부결되었다. 비구니 스님도 초심과 재심 호계위원이 되어 비구니가 비구니를 갈마할 수 있도록 개정한 법안이지만 비밀투표 결과 부결되고 말았다. 비구니 스님이 출가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다른 차별적 종헌종법은 차치하고라도 호계위원이 되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종회의원의 인식에 안타까움을 넘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상정되었고, 가장 큰 반대의견이었던 비구니 스님이 비구 스님을 갈마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여 이번 개정안에서는 단서조항을 마련했다. 비구니 호계위원이 비구 징계사건의 심리와 판결에 참여할 수 없도록 범위를 제한한 것이 그것이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세와 법적 절차를 통해 심리하고 판결하는 일에 비구, 비구니를 가리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적 근거를 둔 것이지만 비구니의 역할 확대라는 차원에서 일부 제한성을 받아들였다고 본다. 비구니의 참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종단적 여론이 높은데다, 종회의장과 총무원장 스님이 개회 인사말에서 통과해주기를 간곡히 당부한 까닭인지 종회 논의과정에서 그 어떤 비구 스님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모 계파의 대표인 스님은 자신의 계파 의원들에게 찬성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호의적인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비밀투표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종헌개정안은 투표결과 가결종족수가 8표 모자란 찬성 46표, 반대표 20표로 부결되었다.

그동안 조계종 종헌종법은 비구·비구니의 차별성이 농후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종단의 주요 소임을 비구 스님들이 독차지 하도록 했고, 비구니 스님들은 절대 맡을 수 없도록 자격을 제한했다. 비구니 스님들에게 권리는 없고 의무 사항만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비구니 스님들은 종헌종법 개정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럼에도 비구 스님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번 종헌개정안은 비구니 징계사안만이라도 비구니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여성대통령이 나오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흐름과 비교하면 한 참 부족한 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마저도 부결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종단 내에 만연된 성차별의식의 심각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 시대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그 능력과 역할을 발휘하도록 인재를 등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비구 스님들에게 언제까지 미래 불교계를 맡길 수 있겠는가. 비구니 스님들에게 초심, 재심 호계위원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자비와 연민으로 중생제도에 힘써온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을 인정하고 동등한 주체로 여긴다는 최소한의 규정이다. 그럼에도 이를 부결시킨 것은 비구 스님들의 차별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참종권은 협의의 대상이나 시혜가 아니다. 승가공동체에 부여된 공통된 권리이다. 그럼에도 이를 선심으로 여기는 비구 스님들의 구태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자 평등을 최우선으로 내세운 부처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열반을 앞둔 부처님은 어느 날 ‘승단의 후계자를 지명해 달라’는 아난다의 간청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 김영란 소장
“아난다여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나의 지도를 받는다고 생각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여래가 무엇을 당부한단 말인가.”

스스로 ‘지도자’이기를 거부하면서 교단의 관료화와 권위주의를 우려했던 부처님의 위대한 평등정신을 비구 스님들은 이제라도 되새겨야 할 때이다. 

김영란 나무인권여성상담소장 ranyharu@naver.com
 

 

[1238호 / 2014년 3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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