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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파로종과 키추라캉

전설과 풍요로 보석처럼 빛나는 옛 수도이자 국제 관문

부탄의 실질적인 관문은 파로다. 부탄 유일의 국제공항이 있고 이곳을 통해 부탄국영항공사인 ‘드룩에어’가 인도, 네팔, 태국, 방글라데시 등을 오가며 세계인들을 부탄으로, 그리고 부탄인들을 세계무대로 실어 나르고 있다. 명실상부한 부탄의 국제 관문, 그러나 파로의 첫 인상은 부탄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파로추를 사이에 두고 평지가 잘 발달돼 있는 파로는 풍요의 땅이다.

파로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파로추를 사이에 두고 펼쳐져있는 파로계곡의 평지엔 잘 정비된 논과 밭이 널찍하고, 그 사이사이로 나지막한 부탄 전통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앉아 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파로 시가지가 시작되는 지점 야트막한 언덕, 양지바른 산등성이 위에는 우뚝 솟은 파로종이 여지없이 서 있어 이 한가한 풍경의 화룡점정이 되어주고 있다. 부탄의 서북지역으로서는 드물게 평지가 펼쳐져 있는 파로계곡에서는 쌀농사가 가능해 ‘부탄의 쌀그릇’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17세기 샤브드롱이 부탄을 통일하고 푸나카를 수도로 정했지만 19세기 부탄의 수도가 이곳 파로로 이전된 이유 가운데 하나도 파로강과 평야가 만들어내는 풍요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티베트와 인도, 벵갈을 이어주는 길목이자 히말라야를 둘러싼 동서무역의 요충지로 번영을 누렸다. 19세기 후반 부탄의 3대 국왕이 수도를 팀푸로 옮긴 후에도 파로에는 부탄 유일의 국제공항이 들어서 영광과 풍요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다.

수도 팀푸를 거쳐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한 일행에게 마지막 여정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파로는 이 같은 역사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그 어느 때보다도 화창한 모습을 열어 보였다. 청량한 하늘을 전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제법 두툼한 구름 사이사이를 뚫고 낙하하는 햇빛들이 푸른 들판에 안긴 도시 파로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 부탄의 국제 관문 파로의 얼굴이자 심장인 파로종. ‘보석 더미 위의 성’이라는 본래 명칭에 걸맞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로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파로종의 정식 명칭 ‘린첸풍종’에는 ‘보석 더미 위의 성’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풍요로운 파로에 어울리는 무척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종을 단순한 건물 이전에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심장으로 여기는 부탄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파로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부른다.

파로종 역시 부탄의 영웅 샤브드롱이 세웠다. 1644년 티베트가 대군을 이끌고 부탄을 침략하던 그 때 샤브드롱은 파로종 건축을 지시한다. 전쟁의 와중에 세워진 성. 애초부터 파로종은 사원이나 행정기관이 되기보다는 이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요새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샤브드롱의 이러한 계산과 바람은 적중했다. 샤브드롱은 파드마삼바바가 상주한다는 사원의 양식대로 파로종을 건설토록 명려했고 결과적으로 파로종은 티베트의 침략으로부터 파로계곡을 굳건히 막아내는 구심점이 됐다. 1905년 이곳을 방문한 영국의 정치인 존 클라우드 화이트는 ‘파로종의 베란다에는 거대한 돌더미와 오래된 투석기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파로종이 20세기 초반까지도 적을 방어하는 요새의 기능을 건실히 수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파로종은 1897년 부탄을 강타한 진도 8.7의 강진을 거뜬히 견뎌냈고, 1907년 발생한 대화재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이듬해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통해 예전의 건재함을 되찾고야 말았다.

그렇게 파로를 대표하는 사원이자 난공불락의 요새로 영광을 이어온 파로종은 오늘날 여느 종들과 마찬가지로 사원과 행정관청이 모여 있는 파로지역 종교, 행정의 중심지로 사용되고 있다. 파로종이 부탄의 여러 종 가운데서도 유독 유명세를 타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파로종은 1995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제작한 영화 ‘리틀 붓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부탄 곳곳에서 촬영돼 히말라야에 은둔해 있는 이 아름다운 불교왕국의 비경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기도 했던 이 영화에서 파로종은 단연 돋보이는 부탄 건축의 상징이 된 것이다.

▲ 영화 ‘리틀 붓다’의 촬영지였던 파로종 내부.

이처럼 아름다운 파로종은 밤이 되면 더욱 환상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푸른빛 조명이 종의 외벽을 비추는 가운데 중앙에 높게 솟은 지붕이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모습이 마치 밤에도 빛을 뿜어내는 신비로운 보석 더미위에 종이 내려앉은 듯 보여 ‘린첸풍종’이라는 본래의 이름이 오히려 부족해 보일 지경이다.

파로종 뒤편에는 나선형 모양의 지붕이 있는 독특한 형태의 둥근 건물이 있다. 원래는 파로종의 부속건물로 1656년 완성된 전망대였다. 정식 명칭은 ‘타종’. 1968년 국립박물관이 되면서 이곳에는 다양한 생활용품과 불상, 탱화 등 부탄의 문화재와 함께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수많은 전리품들이 전시·보관됐다. 그야말로 부탄인들의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이 국립박물관은 그러나 2009년 발생한 지진으로 심하게 손상된 후 아직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파로종 뒤편에 서 있는 국립박물관 ‘타종’.

파로에서 손꼽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바로 키추라캉이다. 7세기 초 티베트의 토번왕국을 통일한 송첸캄포가 히말라야를 장악하고 있던 도깨비를 제압하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108곳에 사찰을 세웠다는 전설, 그 도깨비의 왼쪽 다리에 해당하는 부탄지역에 세워진 송첸캄포의 사원 가운데 도깨비의 왼쪽 발 부분인 파로에 세워진 사원이 바로 키추라캉이다.

▲ 7세기 초 토번왕국을 통일한 송첸캄포왕은 히말라야의 도깨비를 제압하기 위해 108개의 사원을 세웠다. 그 중 도깨비의 왼쪽 발에 해당하는 키추라캉.

그러니 이 사원의 역사 또한 1400여년은 거뜬히 넘기고 있다. 그러나 7세기 세워진 사원은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의 건물은 1839년, 그리고 1968년 부탄 3대 국왕의 왕비 아쉬 케상 왕축의 후원에 힘입은 대대적 증축의 결과다. 특히 당시 사원에는 부탄 최초의 철교(鐵橋) 창시자인 탕통걀포(1385~1646)상이 함께 조성됐는데 이 역시 부탄 불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 키추라캉 입구의 어르신은 염불정진 중이다.

탕통걀포는 부탄은 물론 티베트 문화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385년 티베트에서 태어난 탕통걀포는 ‘티베트 연극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티베트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존경의 크기만큼 그의 일생도 온간 신기한 이야기들로 휘감겨 있다. 그중에는 탕통걀포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60년을 살다가 나와 태어났을 때 이미 백발이었다거나 그가 120살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가 출가하여 큰 깨달음을 얻은 후 티베트 각처를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했는데 이때 험준한 계곡을 건너야되는 사람들을 위해 다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원력을 세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히말라야의 계곡 구석구석에 무려 180여 개의 다리를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는 쇠사슬로 만든 다리도 있으며 그 가운데 소수는 현재까지도 전하고 있다. 문제는 다리를 만드는 대공사를 위해서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탕통걀포는 바로 이 공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극이라는, 당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주목했으며 결과적으로 티베트의 연극 뿐 아니라 춤, 민요, 악기 등 문화 전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이 턍통걀포라는 이름 앞에 티베트 연극의 신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탕통걀포는 부탄서도 무거운 쇠줄을 이용해 흔들다리를 만든 ‘기적의 인물’로 통한다. 그가 세운 철교 가운데 8개를 부탄에 세웠다고 전한다. 탕통걀포가 부탄에 온 시기는 1433년으로 그가 만든 다리 가운데 하나가 동부탄의 덕숨에 유일하게 남아 전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04년 수해로 떠내려가 버렸다. 그러나 철교에 사용된 철제 고리 일부가 키추라캉을 비롯해 국립박물관 등에 보관돼 있다. 탕통걀포는 철교 외에도 부탄 여러 곳에 사원을 세우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이곳 파로의 길목에 남아있는 탐촉라캉이다. 이 사원 앞을 흐르는 파추강을 건너 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흔들다리를 건너야 한다. 아쉽게도 탕통걀포가 만든 철교는 오래전에 유실되고 지금은 새로 만든 흔들다리가 놓여있지만 양쪽 강변의 건물에 각각 쇠줄을 걸어 흔들다리를 만드는 양식은 바로 탕통걀포에 의해 전래된 방식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다시 한 번 눈길이 간다. 다리와 사원 건축 외에도 다방면에 뛰어났던 탕통걀포의 재주는 부탄에서도 발휘됐는데 현재 부탄 내에 전래되는 여러 민요들이 탕통걀포에 의해 작곡되었다고 하니 탕통걀포에 대한 부탄인들의 존경이 티베트 못지않은 것은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 탕통걀포가 철교를 만들었다는 탐촉라캉.

하지만 부탄 곳곳에서 보이는 벽화와 조각상 속의 탕통걀포는 곱슬곱슬한 백발의 긴 머리카락과 구불구불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뚱뚱한 할아버지로 묘사되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두둑한 뱃살과 짧은 목, 그리고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채 헐렁하게 두른 옷차림에서 엄격한 수행자이기 전에 언제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이 탕통걀포를 여기는 부탄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파로는 하루에 다 돌아보기가 빠듯한 정도로 흥미롭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부탄을 찾는 모든 외국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파로로 모여드는 것은 파로종이나 치미라캉, 혹은 탕통걀포 때문만은 아니다. 파로는 부탄 최고의 보물이자 부탄 불교의 상징인 탁상사원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부탄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올라가 명상에 들었다는 바위절벽. 그 위에 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난 은둔의 사원 탁상의 출발지가 바로 이곳 파로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바로 그 탁상사원이다. 그 때문인가. 파로에서의 하루가 더없이 길게 느껴진다. 이 아름답고 오래된 도시가 품어내는 그윽한 역사의 향기, 그리고 곳곳에 품고 있는 역사의 결정체들을 둘러보기만도 하루가 빠듯하지만 기다리는 내일은 유독 더디게 다가오는 듯 느껴진다.

국제공항이 들어서고 수많은 외국의 관광객들이 오가는 도시, 조금은 흥청거릴 법도 한 이 도시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며 옛 시절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그 도시의 느긋한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 환하게 불을 밝히고 보석처럼 빛나는 파로종이 내일의 여정을 약속하는 듯 화려한 불빛 장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파로=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38호 / 2014년 3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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