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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정치

  • 법보시론
  • 입력 2014.03.31 13:01
  • 수정 2014.03.3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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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흔히 비사회적이고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이런 사실은 불교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불교는 아리안족이 만든 바라문교보다 약 1000여년 전에 일어난 인더스문명의 사문(沙門) 전통에 유래됐다. 역사적으로 사문은 바라문교에 대항하는 형태로 전개됐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칼산에 올라간 선재동자처럼 두루 편력했다. 고행의 길을 밟았고 대중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생활했다.

불교도 브라만교와 달리 인간이 중심이 되는 국가계약설의 이념을 제시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불교경전에 나타난 ‘왕(王)’은 브라만경전의 왕처럼 카스트제도를 지키는 것을 의무로 하지 않고 사회질서의 확립을 의무로 삼았다. 그러나 사회변화에 따라 국민과 국가의 계약적이고 민주적인 의무의 이론은 곧 부적당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갠지즈강 유역에서 전제군주가 출현해 인접 공화국들을 무력으로써 병합해 국토를 확대해 나갔기 때문이다. 전제군주가 주민에 가한 압제는 흉악하고 난폭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국경지방으로 내쫓겼다.

불교는 실리보다 정법(Dharma)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국가를 다르마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본 것이다. 이는 바라문교와 명백히 구분되는 큰 특징이기도 했다.

불교가 고대 아시아사상의 주류를 이루고 동아시아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그 중 가장 주된 원인은 불교가 확고한 정치철학을 갖추고 대중과 호흡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불교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이래 중국 황제들은 불교를 왕실의 이념(ideology)으로 수용했다. 불교가 황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앙집권적 통일정책을 포함한 여러 가지 국가사업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남북조시대의 정치적인 상황 아래 토착화된 불교는 중국 특유의 사상을 낳게 되었다. 양무제가 중국의 천자사상을 인도의 전륜성왕 이념과 융합하면서 자신을 ‘보살천자(菩薩天子)’로 부각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사에서도 불교는 왕권의 강화 및 영토팽창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신라시대 왕실이 백고좌법회나 황룡사 창건도 왕권강화와 무관하지 않다. 또 내우외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인왕경’을 설강하는 법회를 개최함으로써 신라인의 마음에 충성심을 심어주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신라가 통일전쟁을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 불교가 있었던 것이다.

원광, 자장, 의상, 원효, 의천, 지눌, 서산, 만해 등 한국불교사의 큰 별들은 수행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국민의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위대한 스님들 덕에 한국불교가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의 불교는 병들고 쇠퇴했다. 7~8세기경 불교교단이 힌두교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크게 구분되지 못했다. 인도 내에서 대중적인 지지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불교 본래의 정체성이 상실된 것이다. 힌두교 의식으로 변질된 불교교단에 대해 인도인들은 더 이상 붓다의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다. 방대한 불교경전을 요약본으로 만들더니, 요약본을 다라니로, 다라니를 만트라(Mantra)로 줄였다. 일반인들이 만트라만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불교가 지지기반을 상실한 이유라고 설명될 수 있다.

▲ 판카즈 모한 교수
한국불교는 인도불교의 쇠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불교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경제적인 갈등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국사회가 바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불교가 정치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판카즈 모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pankaj@aks.ac.kr
 
 
 

[1239호 / 2014년 4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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