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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 기자칼럼
  • 입력 2014.04.07 14:11
  • 수정 2015.03.30 11:30
  • 댓글 0

▲ 남수연 부장
얼마 전 사무실로 손님 한 분이 찾아왔다. 5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이 여자 분은 조계종총무원이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이 주관하는 제1회 신행수기 공모에 관해 이것저것 한참을 물었다. 그런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뭔지 할 말이 있는데 빙빙 돌리는 느낌이었다. “뭔가 불편한 게 있으시냐” 넌지시 물어보니 그제야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이 “신행수기를 쓰고 싶은데 어느 절 신도인지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이 무슨 말인가. 사연인즉 이렇다. 현재 A 사찰에 적을 두고 있는데 B 사찰에서 기도를 하며 큰 가피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우연히 찾게 된 B사찰에서 기도를 했고 몸과 마음을 추슬러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힘을 얻게 되었다는 이 여자 분은 “덕분에 신심도 커지고 신행생활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됐지만 재적사찰의 주지 스님이 B사찰에서 기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운해 하실까봐 걱정된다”며 나름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행 잘하신 스님들은 그런 일에 서운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켜드렸다. 그러나 손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떫은 감을 씹은 듯 텁텁한 뒷맛이 가시질 않았다.

다른 사찰에서 열리는 법회나 교육 등에 ‘우리 절 신도’들이 찾아가는 것을 일부 스님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드물지 않은 현실이다. 사찰의 특정 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스님을 따라 우르르 절에서 빠져나가 버리거나 어떤 이유로든 신도들이 다른 사찰로 이적해 버리는 바람에 사찰 재정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신문사까지 찾아와 고민을 털어 놓고 간 이 불자님의 고민도 바로 ‘다른 절에 가 기도했다는 사실을 스님이 탐탁치 않게 여기실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좋은 기도인연 덕분에 신행활동에 전기를 맞게 되고 이후 재적사찰에서 불교대학도 다니며 더욱 신심깊은 불자가 되었다는 분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런 고민에는 불교계 내에 만연해 있는 ‘우리 신도’ ‘우리 스님’이라는 왜곡된 인식의 단면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더불어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새신도 유입이 정체되고 있는 사찰들이 ‘우리 절 신도’를 다른 절에 뺏기지 않으려 애쓰는 고달픈 현실이 투영돼 있는 듯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부지불식 간에 스님의 눈치를 보게 된 이 신도님의 고민은 어쩌면 우리 불교계 모두가 좀 더 진진하게 고민해야할 포교의 무거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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