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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자 일탈은 훼불행위

기자명 남궁선
  • 법보시론
  • 입력 2014.04.07 15:16
  • 수정 2014.04.07 15:18
  • 댓글 1

선(禪)을 최고의 수행으로 삼는 한국 불교에서 선승들의 무애행은 차별 없고 걸림이 없는 호쾌한 행동으로 흔히 묘사된다. 불이법문을 증득한 도인의 초탈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계율을 무시한 이들의 파격적인 행동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선사들의 무애행은 탐진치를 버리고 무아를 체득한 경지에서 나온 순진무구한 행동으로 평가된다. 이런 무애행은 파계를 넘어선 출세간적인 정신세계의 표출이기 때문에 선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는 파격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들이 모든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런 행동이 오욕락의 추구와는 거리가 먼 청정무구한 득도의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도의 경지와 천리만리 떨어진 범부들은 자유분방한 도인들의 무애행에도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선승들 사이에서도 무애행에 대한 평가가 항상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종경록’을 지은 북송시대의 유명한 선승 영명연수(904~975) 스님은 무애행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난했다.

“말세에는 미친 말하는 선객이 많다. 참다운 깨달음은 없고 빈 화두만 배워서 걸음걸음에 유(有)를 행하되 입으로는 공(空)을 말하며, 자신의 업력은 책망하지 않고 남에게는 인과가 없으니 술 마시고, 고기 먹는 것이 깨달음에 장애 되지 않고 도둑질하고 간음하는 것이 지혜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살아서 불법을 만났다가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스님들과 만나다 보면 행자시절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끼리끼리 모여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고기를 먹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거기에는 애교가 섞여 있고 참회의 마음이 배어있어 그러한 행동들이 재충전을 위한 일탈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무애행이라는 이름으로 파계행을 합리화시키는 일부 승려들이 있다. 오욕락을 즐기려는 그들의 일탈은 청정무구행과는 너무 거리가 먼 훼불행위이다.

과연 무애행이라는 것이 불교에 합당한 행위인지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자.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아나율존자가 길을 가다 날이 저물었다. 그는 여기저기 머물 집을 찾아 헤매다 어느 음녀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음녀의 허락을 얻어 그 집 문간방에서 잠을 자게 됐다. 그런데 잠자리를 구하지 못한 코살라국의 장자 일행이 뒤늦게 찾아와서 음녀에게 방을 요구했다. 음녀는 아나율존자가 허락한다면 문간방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문간방을 그들과 같이 사용하기로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방이 비좁은 것을 알게 된 음녀는 아나율 존자를 배려해 자기 방을 함께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존자와 한 방에 머물게 된 음녀는 교태를 부리며 존자를 유혹했으나 그는 선정에 들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자 존자가 여색을 밝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 때 부처님은 아나율존자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은 후 “아무리 결백해도 남들에게 오해받을 행동을 하는 것은 수행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꾸짖었다. 이처럼 부처님은 결백한 행동마저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더욱이 세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파계행이 부처님에게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예는 율장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물론 부처님 당시에는 무애행이라는 단어조차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불교의 표준은 부처님의 언행이다.

▲ 남궁선 전문의
부처님의 언행을 뛰어넘는 또 다른 기준의 가르침이 불교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불교가 아니다. 일부 고승들의 파계행이 더 이상 득도의 결과물인양 무애행으로 위장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은 가뜩이나 어려운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끌어내리게 할 뿐이다. 불교는 겸허한 마음으로 자체점검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불교를 살리는 길이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남궁선 정형외과 전문의 namgung0302@naver.com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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