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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와 바람의 말

  • 법보시론
  • 입력 2014.04.15 14:46
  • 수정 2014.04.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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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일 해양실크로드 프로젝트 발대식에 참석하려 경주에 갔다. 행사가 끝난 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천마(天馬), 다시 날다’ 특별전에 들렸다. 41년 만에 새로운 ‘천마도’가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 경주고분군에서 6세기의 금관과 말 그림들이 출토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후 이 고분은 국보 207호로 지정되어 천마총이라 명명되어 그간 일반에게도 공개되면서 또 하나의 답사코스로 자리 잡았다. 특별전시실 안에는 모두 3점의 천마도가 전시 중이었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그동안 보아오던 것이고 나머지 2점은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이라고 한다.

1973년 경주관광개발계획의 하나로 가장 큰 고분인 98호분 ‘황남대총’을 발굴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무모한 계획이 진행됐다. 그러나 고분을 정식으로 발굴해 본 경험이 없던 고고학계로서는 거대한 고분을 자체적으로 발굴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격론 끝에 우선 그 옆에 있는 작은 155호분을 먼저 시범적으로 발굴하기로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 속에서 금빛 찬란한 금관을 비롯해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토되는 말 그림 몇 장과 6세기 무렵의 귀중한 유물 1만여 점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흔한 말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말 그림의 공식명칭은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다. ‘장니’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에 매달아 늘어뜨리는 마구(馬具)로 ‘말다래’라고도 한다.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 번 겹친 뒤 이를 누벼서 판을 만들고 이를 치장하기 위해 하늘을 날아가는 흰색 말과 붉은색 갈색 검정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원래 발굴 당시 천마총에서는 3쌍의 말다래가 출토됐다. 그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았던 작품이 국보로 지정됐고 나머지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새로운 보존처리와 복원과정을 거쳐 자작나무로 만든 것과 대나무로 만든 것을 공개했다. 그중 한 점은 얇은 대나무살을 엮어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크고 작은 금동판을 붙여 천마를 표현했다. 3차원(3D) 스캔과 X선 촬영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과학적 고고학 발굴의 획기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과연 이 새로운 ‘천마도’ 역시 신령스러움이 감돌고 있었다. 비록 앞 다리부분이 복구되지는 못했지만 구만리 하늘을 나는 듯한 힘찬 기상을 엿볼 수 있어 ‘천마, 다시 날다’라는 특별전의 주제와도 잘 어울렸다. 크게 벌린 주둥이에서는 온 누리를 진동할 포효가 울려나오는 듯했다. 뒷목에 곧게 뻗은 갈기와 힘차게 휘젓는 꼬리에서는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금빛과 푸른색이 감도는 색조는 유명계의 신령스러움이 은은히 배어나오는 듯 생동감 넘쳤다.

천마라고 하면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말’이다. 천마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개국신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바로 백마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에 있던 알을 깨보니 광채가 나는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이른바 천강설(天降說)과 난생설(卵生說)이 조합된 개국설화로 유목민족이 농경민족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국설화이다.

이처럼 천마는 신라 사람들에게 매우 신성한 존재였다. 고구려 고분의 벽사용 사신도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바로 영혼을 실어 나르는 무마(巫馬)이다.

그러나 시야를 넓게 보면 티베트의 오색깃발에 문양으로 찍어 내는 ‘바람의 말[風馬旗]’과도 연결된다. 무덤의 주인공을 온갖 치장을 한 말 잔등에 태워서 바람을 타고 날아서 조상들의 나라인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하려는 기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김규현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장 suri116@hanmail.net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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