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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야부송, 갠지스강의 모래알

기자명 박상준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것이 생각이므로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중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한말씀 하시는 바람에 한참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과학 선생님은 어느날 “1억이라는 숫자를 차례차례 일, 이, 삼, 사 하고 세어선 1억까지 세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하는 질문을 던지셨다. 어떤 친구는 아무 생각없이 “한 열시간이요”하고 대답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대답을 듣고 있던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준 대답은 “하루에 8시간씩 소리내어 꾸준히 세어서 60년”이었다. 처음 “일, 이, 삼, 사, 오”하고 셀 때는 하나의 숫자를 세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재미있게 셀 수 있다. 그런데 십만 단위로만 가도 하나의 숫자를 소리내어 세는데 걸리는 시간이 제법 많이 든다. ‘이십칠만팔천구백팔십칠’, ‘이십칠만팔천구백팔십팔’, ‘이십칠만팔천구백팔십구’. 백만 단위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하나하나 잘 세다가 중간에 어디까지 세었는지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참 난감한 일이다. ‘구천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일’, ‘구천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이’. 고지가 바로 저 앞이지만 입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1억까지 차례차례 세면 1억을 준다고 해도 섣불리 덤빌 일이 아니다.

모래알 수만큼 많은 번뇌
간직한 게 중생들의 현실
그에 곱하기 제로한 순간
공덕되고 이는 곧 무한 돼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부처님과 중생과 공덕과 번뇌가 있다고 한다.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 흔히 ‘항하사수(恒河沙數)’라고 한다. 금강경에 나오는 항하사수의 개념은 우리의 생각을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증폭시켜준다. 금강경의 항하사수는 단순히 저 인도에 있는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가 아니다.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갠지스강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강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는 어느 정도나 될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각을 무한 증폭시켜서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를 생각해보고 조금전에 생각한 숫자 만큼의 갠지스강을 다시 떠올리고 그 많은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수를 다시 생각해보노라면 우리 생각이 참으로 끝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어떤 인연으로 갠지스강의 모래를 조금 가져온 분이 갠지스강의 모래를 보여주는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서 숫자가 말도 못하게 증폭되었다. 밀가루였다. 한강의 모래처럼 생각했던 모래가 아니고 밀가루에 가까운 고운 모래였다. 아. 그 순간에 사르륵 사르륵 증폭되었던 숫자의 개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번뇌를 가슴에 간직한 채 숨쉬고 있는 것이 우리네 중생들의 현실이고 또 그 만큼이나 많은 일들이 찰나 찰나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 수 많은 번뇌를 어쩌란 말인가. 금강경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요약해보자면 그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번뇌에도 곱하기 제로를 하고 공덕에도 곱하기 제로를 하고 제로라는 생각에도 곱하기 제로를 하는 것이다. 번뇌는 곱하기 제로를 하는 순간 공덕이 되고 공덕은 곱하기 제로를 하는 찰나에 무한증폭된다.

금강경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에서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채워 보시하는 복덕보다 금강경의 사구게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설명해주는 복덕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우리의 야부 스님은 다음과 같이 송(頌)을 붙였다.

一二三四數河沙 (일이삼사수하사)
沙等恒河數更多 (사등항사수갱다)
算盡目前無一法 (산진목전무일법)
方能靜處薩婆訶 (방능정처살바하)

하나둘셋넷 항하의 모래알 숫자를 셈이여 / 모래알만큼 많은 항하의 모래알 수 더욱 많아라 / 계산이 사라져서 눈앞의 모래알이 없어져야 / 비로소 고요한 곳에서 사바하를 하리라.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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