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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유숙, ‘화외소거’ , ‘무후대불’

기자명 조정육

바람이 밀어주며 격려하니, 힘만으로 바퀴가 굴러간다 하겠는가

“신앙은 깨끗함을 특질로 하고 또 뛰어 들어감을 특질로 한다.” ‘밀린다왕문경’

꽃에 취해 약속 잊어버린 소옹
사마광, 화내는 대신 시 읊어
신앙 특질 묻는 밀린다왕에게
‘뛰어 들어감’ 설하는 나가세

성취는 혼자 힘만으론 어려워
도움 있다는 사실 인지해야

▲ 유숙, ‘화외소거’(왼쪽), 종이에 연한 색, 132.4×53.3cm. ‘무후대불’(오른쪽), 종이에 연한 색, 132.4×53.3cm, 국립중앙박물관

드디어 탄천으로 나왔다. 생애 최초 자전거 산책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완전무장을 했다. 머리에는 헬멧, 선글라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에는 장갑을, 오른쪽 발목에는 체인에 바지가 걸리지 않도록 밴드를 끼웠다. 물도 한 병 챙기고 초코파이를 넣은 가방은 등에 멨다. ‘결행’ 날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월요일로 잡았다. 부딪칠까 염려되어서다. 남편이 앞에서 길잡이가 돼 주었다. 남편만 따라가면 된다. 아파트를 나와 신호등을 건너니 탄천 옆으로 자전거 도로가 쭈욱 펼쳐졌다.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금단의 구역이었다. 파란색 산책로를 걸을 때면 붉은색 자전거도로를 씽씽 달리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오늘은 내가 그 도로를 달린다. 잘 할 수 있을까. 사고 나면 어쩌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사고 같은 것은 나지 않을 거야.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했다.

그런데 막상 자전거 도로에 들어가자 걱정이 일시에 사라졌다. 자전거만 달릴 수 있는 도로라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처럼 들고 나는 차량이나 사람들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 훨씬 편하고 신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나올 걸. 괜히 겁먹었다.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렸다. 계속 달리자 도로가에 심어진 버드나무들이 뒤로 밀렸다. 떨어지는 벚꽃도 올라오는 조팝나무도 휙휙 지나갔다. 봄 속으로 질주하는 것이 어찌나 신났던지 앞에 사람이 없는데도 괜히 벨을 찌릉찌릉 울렸다. 도로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자전거가 새 거라서인지 페달을 몇 번 밟기만 해도 바퀴가 저절로 굴러갔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어깨에 날개가 돋힌 듯 몸이 가볍게 나아갔다. 그렇게 이 십여 분을 달려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10km 조금 넘는 거리였다. 탄천 양쪽에 온통 벚꽃으로 뒤덮인 꽃동네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초코파이에 물을 마시면서 봄꽃을 감상했다. 쉰 세 살의 나를 일으켜 세워 여기까지 달려오게 한 꽃들을 마음껏 감상했다. 그러자니 꽃에 취해 재미있는 일화를 남긴 한 사람이 떠올랐다. 

북송(北宋)의 학자 소옹(邵雍:1011-1077)도 나 못지않게 꽃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시호(諡號)가 강절(康節)인 소옹의 자(字)는 요부(堯夫)이며, 호(號)는 안락선생(安樂先生)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며 수학자이고 역학자이자 철학자였는데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낙양(洛陽)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런데 어찌나 꽃을 좋아했던지 봄가을이 되면 꽃구경 가는 재미로 살았다. ‘화외소거(花外小車)’는 소옹이 꽃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소옹은 동자가 미는 작은 수레에 앉아 꽃을 감상하느라 넋이 나갔다. 턱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언덕 위에 핀 매화 너머 다른 꽃을 찾는 듯하다. 대각선으로 배치된 언덕의 바위에는 물기 젖은 화면에 진한 먹을 쓸어내리듯 칠했다. 반면 매화는 잎사귀 없이 꽃부터 피는 매화나무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선으로만 그렸다. 단단한 바위는 부드럽게, 부드러운 매화는 거칠게 그리는 역설의 힘으로 ‘화외소거’는 이제 막 잠이 깬 초봄의 변화가 만져질 듯 실감난다.

소옹은 꽃에 취해 자주 약속을 잊었다. 사마광(司馬光:1019~1086)의 별장에서 만나기로 한 날도 그랬다. 사마광이 술상을 차려놓고 기다려도 소옹은 나타나지 않았다. 꽃 보러 간 것이다. 기다리던 사마광은 화를 내는 대신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옅은 해 짙은 구름에 가렸다 다시 열리고(淡日濃雲合復開)
 푸른 숭산 맑은 낙수 저 멀리 둘러 있네(碧嵩淸洛遠縈回)
 숲 속 높은 누각에서 바라본 지 오래건만(林間高閣望已久)
 꽃 밖에서 작은 수레는 아직도 오지 않네(花外小車猶未來)"
(사마광, ‘약소요부부지(約邵堯夫不至)’중에서)

그림 제목 ‘화외소거’는 사마광의 시 마지막 구절 ‘꽃 밖의 작은 수레(花外小車)’에서 따 왔음을 알 수 있다. ‘화외소거’는 소옹의 자(字)를 넣어 ‘요부소거(堯夫小車)’라고도 불린다. 이후부터 ‘소거(小車)’는 소옹의 청빈하고 소박한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고 ‘소거’를 탄 채 꽃구경하는 ‘요부’의 모습은 수많은 화가들의 붓끝을 유혹했다. 꽃에 취한 선비와 그를 탓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 친구가 있어 생긴 에피소드다. 

밀린다왕이 물었다.

“존자 나가세나여, 신앙은 무엇을 특질로 합니까?”  

“대왕이여, 신앙은 깨끗함을 특질로 하고 또 뛰어 들어감을 특질로 합니다. 신앙이 생겨날 때 그것은 다섯 가지 덮개를 멸하고 덮개를 벗어난 마음은 명징하고 청정하고 혼탁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신앙은 깨끗함을 특질로 합니다.”

“존자여, 어째서 신앙은 뛰어 들어감을 특질로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예를 들면 수행자가 다른 사람이 해탈한 것을 보고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경지’ 혹은 ‘한 번만 이 세상에 돌아오는 경지’ 혹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경지’ 혹은 ‘아라한의 깨달은 경지’에 뛰어들고, 또한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고,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경지를 획득하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것처럼 대왕이여, 그와 같이 신앙은 뛰어 들어감을 특질로 합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산의 정상에 큰 비가 내린다고 합시다. 그 빗물은 낮은 곳을 따라 흘러 산간의 좁은 골짜기와 바위의 갈라진 곳과 벌어진 틈새를 채우고 강을 채운 뒤 강물은 양쪽 언덕에 범람할 것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 강의 넓이와 깊이를 모르고 두려워 망설이며 언덕에 서 있다고 합시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자신의 체력과 역량을 바로 알고 허리띠를 매고 나서 뛰어들어 맞은편 언덕으로 건너갔다고 합시다. 그가 완전히 건너간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도 따라서 건너갈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다른 사람이 해탈한 것을 보고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경지’ 혹은 한 번만 이 세상에 돌아오는 경지‘ 혹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경지’ 혹은 ‘아라한의 깨달은 경지’에 뛰어들고, 또한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고,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경지를 획득하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 위해 수행해야 합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신앙은 뛰어 들어감을 특질로 합니다. 대왕이여, 위대한 스승에 의해 이런 시구가 가장 수승한 『잡아함경』에 설해져 있습니다.”

사람은 신앙에 의해 격류를 건너고
근면에 의해 바다를 건넌다.
정진에 의해 괴로움을 뛰어넘고
지혜에 의해 완전히 깨끗하게 된다.

“잘 알았습니다. 존자 나가세나여!”

유숙이 그린 ‘무후대불도(武后大佛圖)’는 ‘화외소거’와 똑같은 크기로 그려진 대련이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화외소거’의 소옹이 ‘무후대불도’ 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 ‘무후대불도’는 비탈진 언덕에 키 작은 나무들이 자란 모습을 그렸다. 산사태가 난 걸까. 나무뿌리가 훤히 드러나도록 어수선한 오른쪽 중간 바위 뒤로는 하얗게 텅 빈 공간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그다지 눈여겨볼만한 풍경은 없는 듯하다.

 ‘화외소거’ 옆에 ‘무후대불도’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소옹이 가는 방향을 연장해서 그린 것인가. 모를 일이다. ‘무후대불도’의 왼쪽 하단에는 ‘당나라 무후가 새로 큰 불상을 만들어 천하의 스님들에게 날마다 1전씩 내도록 하고 그 일을 돕도록 했다(唐武后新造大佛使天下僧尼日出一錢以助基功)’라는 화제(畵題)가 적혀있다. 그런데 유숙에 관한 자료나 논문을 다 뒤져 봐도 이 화제가 적힌 내력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가 없다. 유숙이 굳이 두 작품을 한 쌍으로 제작한 데는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이해하려면 작가의 작품 제작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해석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의도를 모르겠다. 그렇게 하릴없이 몇 날 며칠을 허비하다 드디어 사마광의 저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유숙의 화제를 발견했다.

 

 ▲ ‘무후대불’ 세부

화제에 밝힌 당나라 무후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자 황제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625-705)다. 무후는 여러 차례 불사(佛事)를 일으켰는데 이 화제가 쓰인 700년에도 불상조성을 위해 스님들에게 돈을 거둘 작정이었다. 그 때 국로(國老:국가의 어른)라 불리던 적인걸(狄仁傑:630-700)이 나서 ‘석가여래가 가르침을 베푼 것은 자비를 주로 하는데, 어찌 사람을 힘들게 하여서 겉치레하기를 바라느냐’고 간언해 그 일을 그만두게 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무후대불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얗게 텅 빈 공간에서 안보이던 부분이 보인다. 그 곳에 연한 필선으로 그린 부처님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북송의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시인인 사마광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15년에 걸쳐 편찬된 이 책은 공자의 ‘춘추(春秋)’,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자치통감’은 사마광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유숙은 소옹을 그린 ‘화외소거’옆에 그와 친했던 사마광의 ‘자치통감’ 한 구절을 적어 넣음으로써 두 사람의 돈독했던 관계를 밝혀주려 했다. 그런데 294권이나 되는 ‘자치통감’의 내용 중에서 왜 굳이 ‘무후대불’ 부분을 인용했는지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조금 더 유숙의 제작의도에 뛰어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옹처럼 벤치에 앉아 질리도록 꽃을 감상한 뒤 다시 자전거를 탔다. 집으로 되돌아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무리 힘껏 페달을 밟아도 아까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왜 이럴까. 처음에는 그 원인을 몰랐다. 내가 너무 지쳐서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 까닭이 바람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올 때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니까 쉬웠는데 갈 때는 맞바람을 맞으며 가야 하니 힘든 것이다. 그때야 깨달았다. 올 때 자전거 바퀴가 저절로 굴러간 것은 내 힘이 아니라 모두 바람이 밀어준 덕택이란 것을. 그걸 모르고 내 실력이 뛰어나 그리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것이다. 쉰 세 해를 살아오면서 오로지 내가 잘나 여기까지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바람이 밀어주고 격려해준 덕분이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더욱 힘들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내는 바람과 싸워야 하는데 올라가기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집에 가려면 오르막길도 넘어가야 한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다는 말이 딱 맞았다. 자전거 타기가 꼭 우리 인생길 같다. 처음에는 신나게 잘 나가다가도 힘든 고비를 맞이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걸 전부 극복해야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 수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갈 때보다 거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려 겨우겨우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느낌이 참 묘했다. 거의 한 시간가량을 넓은 도로를 달리고 와서 보니 아파트 단지 안이 그렇게 좁아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 운동장을 둘러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좁은 곳을 넓다고 타고 다녔단 말인가. 이제 다시는 단지 내에서 자전거 타는 수준으로 만족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커버렸고 또한 너무 넓은 세상을 맛봐버렸기 때문이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계속 페달을 밟았더니 다리가 후들거려 곧 주저앉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물었다. 다리 안 떨려? 떨리기는. 당신한테 맞추느라고 천천히 간 건데. 그게 최고 속도 아니었어? 보통 때는 몇 분 걸리는데? 한 십분 정도. 내가 죽자 사자 달려서 삼십분 걸린 거리를 남편은 십 분 만에 간단다. 역시 고수는 고수다. 처음으로 넓은 세상을 보고 나서 아파트 안이 좁네 어쩌네 했던 생각이 부끄러웠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세상에는 나 정도 수준은 이미 뛰어넘고서도 전혀 티 내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고수들이 참으로 많다. 나 또한 그들처럼 고수로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될 때까지 자전거 타기에 풍덩 뛰어 들어가 봐야겠다. 자전거 타기 같은 수행에도 마찬가지로.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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