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되고 꽃이 다 되면 장마가 끝난답디다.”아저씨 말씀입니다. 해마다 치자 꽃이 피면 그 뽀오얀 흰 빛깔과 아찔한 향기에 취할 줄이나 알았지 장마가 오고 가는 줄이야 당연히 몰랐습니다. 장마가 꽃과 함께 왔다가 꽃과 함께 간다는 것은 몰랐지만 장마 중 안개가 깊은 날 물방울 머금고 막 피어나는 치자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제주의 장마는 안개 깊은 날이 많은데다 퍼붓듯 비 내리는 날이 많아 피어나면서 해 한번 만나지 못하고 지는 꽃도 많습니다.
매운 빗줄기에 지친 치자 꽃이 아까워 손 가득 따다가 잘 마른 수건사이에, 가족들 옷 사이에 끼워둡니다. 치자꽃 향기로 그 수건이나 옷을 입는 사람을 물들이고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도 객들이 쓰게 될 수건들 사이에 치자 꽃잎을 끼워 넣습니다. 하루쯤 지나 치자 꽃잎을 털어 내고 사용하면 수건을 쓸 때마다 잠깐의 번거로움 몇 배나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기 위해 수건을 펼쳐 얼굴에 가져가는 순간 코 안 가득 들어오는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런지요. 아저씨께 치자 꽃을 이러저러 이용한다고 수다처럼 말씀드립니다.
“치자 꽃이야 많이 필 테니 그렇게도 쓰면 쓰것소. 무엇이든 허쇼.”농장아저씨는 땅 밟고 산지 오래지 않은 제가 땅에 나는 것들을 별스럽게 이용할 줄 안다며 그것을 기뻐하고 아낌없이 도와주십니다.
몇 해전 꽃 치자 삽목은 아저씨가 해 놓으시고 오늘 기르고 즐기기는 제가합니다. 제가 이리 좋아하면 표현 안 하시고 늘 수줍으신 아저씨도 덩달아 좋으신 표정입니다.
오늘도 종일 부슬부슬 비 내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붉은 해를 볼 수 있다면 뽀오얀 치자 꽃이 뿜어내는 눈부신 흰빛을 황홀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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