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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겪으며 만난 부처님 가르침에서 참 행복의 길 찾아

기자명 법보신문

법보신문 사장상(우수상)-홍현승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지금부터 2014년 화계불교대학 졸업식을 봉행하겠습니다.”

불교대학을 입학하면서 ‘언제 졸업해서 포교사 활동을 하지?’라고 생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초·중·고 시절 어른들께 제일 듣기 싫었던 말씀이 “너도 내 나이 되어 봐. 1년이 금방 간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온 후,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주가 지나가고, 1년이 지나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그 말씀이 이해가 갔다.

할머니가 주신 신행수첩
불교 인연 맺게 된 계기
화계사 학생회 참가하며
본격적인 신행활동 시작

“장애는 전생 ‘업’ 때문”
한 노보살 말에 큰 충격
‘장애불자모임’ 참가하며
현재가 중요한 것 깨달아

최연소로 포교사 고시 합격
진정한 행복 알리는 게 꿈

장마철에는 하루아침에 잠수교가 잠기듯, 화계사와 인연이 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종교’라는 단어를 인지할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할머니가 주신 파란 불자수첩의 ‘반야심경’. 나와 불교의 첫 만남이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처음에는 글자도 생소하고 독경하는 법도 몰라 천천히 글자를 읽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작은 불자수첩을 그림책 보듯 한 페이지씩 넘겼다. 그리고 집에 케이블을 설치하면서 만화 채널보다 불교TV 채널을 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쉬운 말씀이든 어려운 말씀이든 TV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반야심경’이 무엇인지,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전반적으로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불교를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신행생활에 대한 욕구도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복지관에서 친구들이 교회에서는 사람들과 기도해주고 교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절에도 저런 모임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2005년 부처님오신날, 화계사에 갔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절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나?’하고 경내를 걷고 있었는데, 어느 법당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친구들이 모여 ‘천수경’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화계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법회에 대해 알아보았다. 학생회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내가 갈 곳은 여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신행생활에 대한 욕구’라는 작은 불씨가 ‘법회’라는 부채를 만나 활활 타오르게 된 것이다.

처음 화계사 학생회에 나간 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잘 걸어 다니지만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넘어지지 않을까’ 부축하고 싶은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선뜻 나서기가 어려워 갈팡질팡하는 눈빛, ‘여기에 장애인이도 오는 거야?’라는 어리둥절한 눈빛들이었다. 나의 고정관념일지 모르지만 처음 학생회 법당에 들어설 때는 그런 눈빛으로 나를 주목했던 것 같았다. 순간 ‘내가 과연 여기에서 적응해 장애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법우로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청소년 소통의 장이라고 불리던 ‘버디버디’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회장 형을 시작으로 부회장 누나, 총무 누나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가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법회를 열심히 나갔다. 법회뿐만 아니라 회식 자리, 노래방 뒤풀이 등을 경험하며 내 또래의 친구들이 이렇게 논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장애 특수 교육기관이 아닌 똑같은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나에게 ‘학교 친구’는 그저 학교에서만 만나는 친구였다. 그럴 정도로 친구들과 하교 후 개인적인 교류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들과의 교류에 대해 목말라 있었다.

학생회를 다닌 지 다섯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올해도 예년 겨울방학 때처럼 스키캠프를 떠난다는 공지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주에는 법회가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함께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마치 학교에서 수련회 일정이 잡히면 으레 다른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던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담당 포교사님으로부터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현승이랑 함께 스키캠프에 가고 싶다”며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장애인 친구들이랑 가는 수련회나 캠프에 같이 가자고 한 경우가 딱 한 번, 고등학교 제주도 수학여행 외에는 없었다. 내가 동참하면 인솔하시는 분들은 물론 같이 가는 친구들도 많이 힘들어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승이가 가면 더 힘들 텐데요.” 엄마는 걱정 섞인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포교사님은 “현승이가 가면 아이들이 서로 도와주며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전화로 하셨던 그 말씀이 무엇인지 캠프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느낄 수 있었다.

스키캠프 둘째 날 아침 7시.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나는 먼저 빨리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때마침 남자 친구 한 명이 들어왔다. 같은 동기인 S 법우였다. ‘저 친구도 씻기 위해 왔겠구나’ 생각하고 방해가 될까 씻는 속도를 올렸다.

샴푸를 묻혀 열심히 헹구는데 슬쩍 내 손에 쥔 샤워기를 잡아들더니 천천히 머리에 묻은 샴푸를 씻겨주는 것이었다. 처음이었다. 또래 친구가 내 머리를 감겨준다는 것. 그 뿐만 아니었다. 식사시간에도 내 옆에, 혹은 내 앞에 앉아 자기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 대단한 일이고 놀라운 일이냐”고 묻겠지만 다른 사람과 숟가락 젓가락을 같이 쓴다는 것은 정말 친하기 때문에, 아니 친해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그 법우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다시 자기 밥을 먹었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도 화계사 학생회 법우들이 나를 도와주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스키캠프 이후로 법회는 물론 다른 행사에도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문득 ‘왜 절에는 장애인 불자가 없을까?’라는 진지한 의문이 갖게 됐다. 예전에 누군가 “그런 생각이 왜 들었냐?”고 물어봤다면 “절에 다니는 장애인들이 없는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어느 날 지나가는 노(老)보살님의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전생의 무슨 업을 지었기에….”

‘전생의 업? 그렇다면 내 장애는 그 업에 대한 과보인가?’ 화계사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 TV와 인터넷, 책으로 법문을 접하며 ‘업’과 ‘업보’에 대한 단어를 수없이 들었지만 한 번도 내 장애가 그 두 단어에 속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이든 보살님의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절에 나가면 안 될 존재인가? 어차피 절에서는 내 자체가 걸어 다니는 업 덩어리인데…. 내가 갈 곳은 결국 교회인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인터넷을 보다가 ‘장애불자모임 보리수 아래’를 알게 되었다. ‘장애인 불자 모임이 있었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불교뿐만 아니라 문학을 하는 분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저 없이 어른들 모임에도 가입을 하고 가입인사까지 남겼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내가 딱 맞는 옷을 찾은 것이다.

만나고보니 아버지, 엄마 연배의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회원들도 나랑 똑같이 ‘불교에서 장애는 전생의 업’인가를 고민하고 답을 찾기를 원했다. 진솔하게 이야기할 분위기가 되면 어김없이 그 화두가 거대 담론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그 화두에 대해 서로 의견도 교환하고, 스님들께 질문하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가면서 이 담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해는 ‘장애는 과거의 업보(業報)’라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장애가 전생의 악업(惡業)으로 인한 결과인지 아니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당시, 인(因)과 연(緣)의 부조화 때문에 생겨난 현상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여기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처님께서는 ‘과거는 지나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과거에 형성된 이 장애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장애 가운데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행복의 길을 찾아 나간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삼보님께 귀의하고 수행하는 이유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결론을 얻기까지 1~2년이 걸렸던 것 같다. 참 어렵게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값진 답을 얻고 나니 같은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참된 불교의 진리를 알리고 싶었다.

불자가 아닌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불교에 대해 오해하는 점이 적지 않았다. 또 비장애인 불자들도 장애인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다는 점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오해 부분들을 바로 잡고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포교사’라는 원력을 세웠다.

그 원력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화계불교대학을 함께 다니기 시작했고 지난 2월, ‘최연소’로 포교사 고시 필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발 나간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교육과 봉사활동, 면접 등이 기다리고 있다. 필기시험을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지혜를 얻어 나의 꿈인 포교사뿐 아니라 세상에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회인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발원한다.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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