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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불교의 역할

붓다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으로 “네 자신을 등불로 만들어 살아가라(atta dipa viharatha)”고 하셨다. 등불은 지혜의 상징으로서 스스로의 지혜에 의지하라는 뜻이다.

고대 한반도 삼국은 불교의 유입과 함께 지혜의 지평을 확대하여 문명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다. 원효는 통합지향의 화쟁이론을 제시했다. 유교를 포섭하는 중국문화의 패키지로서 왕권중심으로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백성들의 윤리덕목을 형성했다. 또한 초기 고대 불교는 덕치사상에 기초한 사상에 기반하여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정립했다.

신라의 경우에는 불교가 청소년의 마음속에 윤리의식을 심었다. 어떤 위기에도 생사를 같이 한다는 붕우정신(盟友精神)과 공공정신(公共精神)이 그것이었다. 세속오계란 화랑도의 지도이념의 영향으로 신라 청소년은 벗과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깃털과 같이 가볍게 여겼다. 562년 가야 병합을 위해 벌어진 전투에서 신라의 사다함은 용맹을 크게 떨쳐 모범이 됐으며, 적의 병력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했다. 백성도 화랑의 구성원을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하였다. 화랑 제도의 조직에 ‘미륵 하생신앙’이 깊이 연관돼 있어 화랑을 미륵선화라고 했으며, 김유신은 자신이 화랑으로 있을 때의 무리를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불교의 도입은 왕실 세계관에 명확한 변화를 가져왔다. 무상함의 인식은 새로운 세계관의 중요한 측면이었다. 붓다가 말하기를 “모든 사물을 이렇게 알라/ 청명한 밤하늘의 달이/ 맑은 호수에 비추듯이/ 비록 그 호수로 달은 결코 움직이지 않지만”이라고 했다. 생명의 덧없는 속성의 인식은 인간의 마음을 자비심으로 가득 채우고 인생을 가치 있게 여기게 했다.

티베트 승려 밀레파(Milrepa)도 “공을 보면 자비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개최된 연등회와 팔관회 같은 불교의식은 분명 왕권의 자애로운 태도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생활을 하던 국민들에게 심리적이고 영적 위안을 가져다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라의 제일 중요한 사원인 황룡사의 조성 배경 또한 중요하다. 원래는 왕실이 그곳에 궁궐을 조성하려고 했는데 황룡(黃龍)의 모습을 보고 계획을 바꾸어 궁궐대신에 절을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불교계에 의한 만들어지고 전파된 것 같다. 중국에서 왕실의 상징인 황룡은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들과 한반도의 거주민들에게 길조(吉兆)를 상징했다. ‘고구려본기’에는 주몽왕 3년 3월에 황룡이 골령에 나타났고 이어 붉은 구름과 다채로운 안개와 같은 길조의 징후들이 골령 근처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왕은 그곳에 궁궐과 관청을 지었다. 국가 지도이념으로써의 불교의 수용은 왕의 사고방식에도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비록 군주 권력의 상징으로 쓰였다고 하더라도 왕은 무속 전통에서 신성시되었던 성스러운 장소를 일종의 공공장소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는 재가신도들은 물심양면으로 승가를 도왔다. 승려들은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나라를 행복의 방향으로 이끌고 국민을 도덕의 길로 인도하였다. 승려들이 가진 이러한 정신적인 힘에 감명을 받아 신라의 법흥왕과 진흥왕은 스스로 승복을 입었다. 그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탈속적 권위를 새롭게 하고 강화시켰다. 고승들이 가르쳐 준 윤리덕목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널리 실천되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 가운데 가장 후진국이었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세월호 침몰비극에 따른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지혜의 등불이 다시 켜졌다. 불교에 기반을 둔 윤리적인 규범이 국민의 마음속에 다시 자리 잡기를 기도 드린다.
 
판카즈 모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pankaj@aks.ac.kr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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