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종착역인 대화역에서 서쪽으로 달리다보면 아파트를 넘어 컨테이너로 지은 건물들이 보인다. 가까이가기 전부터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양돈 단지다. 태국인 다원(53)씨가 일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한 돼지농가, 악취와 습기로 가득 찬 돼지우리에서 다원씨는 하루 12시간씩 일한다. 일을 막 마치고 나오는 다원씨의 안색이 좋지 않다. 지난달 궤양성 천공으로 수술을 받고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 고된 일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빚내서 한국 온 태국인 다원씨
일자리 중개 사기로 고난 겪어
악취 속 돼지우리 일하던 중
위 수술받아 병원비 800만원
태국 동북부 도시인 우돈타니에서 소규모 쌀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다원씨는 점점 늘어나는 빚을 이겨내지 못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마침 휴농기에 시내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한국 일자리를 소개시켜준다는 중개인을 만났다. 빚을 내 300만원의 거금을 건네고 2012년 한국에 왔다.
큰 기대를 안고 한국에 왔지만 현실은 엄혹했다. 일자리를 연결해준다던 중개인과는 연락이 끊겼고 당장 머물 곳이 없었다.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닭 농장에서 죽도록 일했다. 당장 수중에 돈 한 푼 없었기에 자리를 잡는 것이 급 선무였다. 하지만 한국어는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었다. 간단한 의사소통을 익힌 후 봉급이 조금 더 많다는 돼지 농가로 자리를 옮겼다. 일은 곱절로 고되고 악취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지만 10~20만원이라도 더 벌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 돈으로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이 따뜻한 음식을 마음껏 드시는 모습을 상상 하며 악취를 이겨냈다.
그렇게 한국에 온지 1년이 지날 무렵, 복통이 왔다.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서 생긴 속 쓰림 정도로 넘겼다. 도심에서 고립된 지역에 머무르고 있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속이 쓰려올 땐 그저 제산제를 먹으며 쓰라린 속을 달랬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다 2014년 3월, 일이 터졌다. 돼지우리 청소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오던 다원씨가 배를 부여잡고 고꾸라진 것이다.
궤양성 천공이었다. 위벽에 궤양으로 인해 구멍이 생겼고 피가 주변 장기까지 스며들었다. 다원씨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수술을 마친 후였다. 수술 후 14일간 병원에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 위뿐 아니라 출혈로 인해 손상된 옆 장기도 관리가 필요했다. 다원씨는 2주간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병원비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수술비와 입원비만 800만원이 나왔다. 그는 퇴원 후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김포우리들병원의 도움으로 상당부분 병원비 감면을 받았지만 160여만원의 초기 검사비는 농가 사장이 부담했다. 이를 먼저 갚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다원씨는 돼지우리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악취와 싸우고 150여 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중 120만원을 태국 부모님께 보낸다. 이 돈으로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학교에 갈 수 있었다.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고 있는 아들은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 준다.
한국에서의 고달펐던 일 년 반. 다원씨는 병원비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습기와 악취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돼지우리로 향한다. 그는 노쇠한 부모님에게 든든한 아들이, 조금이라도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며 기술학교에 간 아들에게는 힘이 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다원씨에게 한국불자들의 자비온정이 절실하다. 모금계좌 농협 032-01-183035 (주)법보신문사, 02)725-7014
고양=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244호 / 2014년 5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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