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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수순(守珣)스님의 나룻배

기자명 성재헌

수순, 스승 기일에 관을 나룻배 삼아 떠나다

▲ 일러스트=이승윤

동참(同參)이란 말이 있다. 함께 수업하는 동료나 같은 목적을 가진 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 같은 자리에 앉았으니,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어떠하겠는가? 함께했던 타인들은 곧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걸쭉한 농담과 짓궂은 희롱도 그들에겐 흐르는 세월에 가시지 않는 살가운 정담(情談)이다.

선문(禪門)에서도 동참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인다. 석두 희천(石頭希遷)선사의 참동계(參同契)를 비롯해 수많은 선사들이 대중들에게 동참을 호소하였다. 어느 자리에 함께 참여하자는 것인가? 부처님과 마하가섭, 달마와 육조대사께서 혁혁히 밝히신 청정한 마음자리[心地]에 함께 참여하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한 자들은 어떨까? 얼굴을 맞대고 이어지는 정담이 그칠 줄 몰라 서로의 눈썹이 들러붙을 지경이라 했으니, 환갑 넘은 노인들의 왁자지껄한 초등학교 동창회는 비할 바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는 빈부도 귀천도 남녀도 노소도 없고, 스승과 제자 범부와 성인의 구별마저 없기 때문이다.

송나라 때 불등 수순(佛燈守珣)선사라는 분이 계셨다. 출가하여 광감 영(廣鑑瑛)선사 회하에서 수학하던 그는 기연이 맞는 스승을 찾아 태평선원의 불감 혜근(佛鑑慧懃)선사를 찾아갔다. 수순은 대중들을 따라 소임을 보면서 참선을 하고 법회에 참여하였다. 주변을 돌아보면 도반들의 눈빛은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전혀 깨달아지는 바가 없고 도무지 들어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아둔함을 탓하던 수순은 어느 날 크게 탄식하고, 입고 있던 옷의 옷깃을 몽땅 꿰매버렸다. 그리고 부처님 전에 맹세하였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는 맹세코 이 옷을 벗지 않겠습니다.”

그날부터 수순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좌선에 매진하였다. 늦은 밤, 동료들이 모두 잠든 후에도 그는 잠을 자지 않았다. 졸음이 몰려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기둥에 기대었는데, 그 모습이 부모를 잃은 고아처럼 절박하였다. 그렇게 정진하기 49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도 혜근선사의 막힘없는 법문이 쩌렁쩌렁 산천을 울렸다. 긴 말씀 끝에 혜근선사께서 주장자를 높이 들고 외쳤다.

“삼라만상이 모두 한 법에서 도장 찍히듯 나온 것이다.”

그 순간 수순의 눈이 활짝 열리고, 마음의 바탕자리가 몰록 드러났다. 법회가 끝나자 수순은 곧장 방장실로 달려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혜근 스님이 따져 물었다.

“영운(靈雲) 스님께서 ‘복사꽃을 한 번 본 뒤로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가 무엇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영운 스님께서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렇게 의심하는 곳을 찾아봐도 끝내 찾을 수 없습니다.”

혜근 스님의 눈빛이 번쩍였다. 혜근 스님은 몸을 바로 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영운 스님의 게송을 듣고 현사(玄沙) 스님께서 ‘지당하고 지당하신 말씀이나 감히 보장하건데 노형은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했습니다’고 하셨다. 그가 깨닫지 못한 게 뭐냐?”

그러자 수순이 머리를 조아렸다.

“화상께서 노파심이 간절하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혜근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혜근선사는 그날 저녁 수순의 깨달음을 대중에게 공표하고, 시자로 명하였다. 수순은 얼굴이 새까맣고 못생긴 사람이었다. 어느 날, 유명한 관상가가 다녀간 뒤였다. 찻잔을 거두며 뒷정리하는 수순의 등에 대고 혜근 스님이 놀렸다.

“관상가가 너더러 박복한 놈이라더라.”

빈축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번엔 혀를 찼다.

“아깝구나, 한 알의 밝은 구슬을 저런 거렁뱅이가 줍다니!”

수순이 등을 돌리며 웃었다.

“아까우면 도로 가져가 꽁꽁 챙기십시오.”

“미친 놈! 네가 언제 깨달은 적이나 있냐?”

수순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혜근 스님에게 말했다.

“일체 중생이 언제 미혹한 일이 있었습니까?”

“뭐? 일체 중생이 미혹한 적이 없다고?”

그때 마침 한 스님이 방 앞을 지나가자, 혜근 스님이 그를 불러 세우고 다짜고짜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이냐?”

그 스님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혜근 스님이 수순에게 손가락질하였다.

“봐라, 이놈아. 언제 깨달은 적이 있었냐?”

그러자 수순이 곧바로 그 스님에게 물었다.

“참선하고 쉬는 시간이십니까?”

“쉬는 시간이 이제 끝났습니다.”

수순이 혜근 스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십시오. 언제 미혹한 적이 있습니까?”

당황한 그 스님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자, 혜근 스님이 벌컥 고함을 쳤다.

“이 축생아, 나가거라!”

그러자 수순이 바짝 엎드리며 말하였다.

“스님, 목소리 좀 낮추십시오. 바깥사람들이 들으면 우리 부자가 여기서 깨쳤다느니 미혹했다느니 다투는 줄 알까 겁납니다.”

이 말에 혜근 스님이 박장대소하였고, 수순도 따라 웃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수순의 나이 56세가 되던 해였다. 하산(何山)과 천녕(天寧)에서 후학을 교화하던 수순은 고향 장남(障南)으로 돌아가면서 쌍괴거사(雙槐居士) 정적(鄭績)에게 말하였다.

“오는 10월8일이 우리 불감선사 기일입니다. 저도 그날 갈 것입니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쌍괴거사는 혹시나 싶어 스님의 사제 도여(道如)를 보내 안부를 여쭈었다. 도여가 도착한 날이 10월4일이었다. 수순 스님은 두 팔을 벌려 사제를 반겼다.

“자네가 시간을 딱 맞췄군. 내일 나를 위해 나룻배 한척 알아보게.”

말뜻을 알아차린 도여가 되물었다.

“길쭉한 것을 원하십니까, 높다란 것을 원하십니까?”

“높이 다섯 척쯤이면 좋겠네.”

10월8일 아침, 닭이 울자 수순선사는 방문을 활짝 열고 자리에 단정히 앉으셨다. 곁에 있던 시자가 아뢰었다.

“스님, 임종게를 남겨주십시오.”

수순선사는 뜰아래 놓인 관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 지었는데.”

말씀을 마치고, 웃음을 머금은 채 앉아서 돌아가셨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별의 편지 한 장 남길 짬도 없을 만큼, 나룻배 타고서 동창생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설레었나 보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4호 / 2014년 5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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