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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멈춤

우리는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가야할 때 가야한다. 이것은 사실 어린아이도 아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멈추어야 할 때 가고, 가야할 때 멈춘다. 뒤바뀐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뒤바뀐 생각임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볼 여유주는 멈춤
상대방의입장에서 보고
살핌과 자비표출 하면
또다시 비극은 없을 것

이렇듯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커다란 고난이 닥친다. 한 두 번이야 어찌 어찌 넘어갈 수 있지만, 늘 그런 행운이 따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임에도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것을 예사로 아는 사람은, 언젠가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멈춤은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를 주고, 결과적으로 다툼의 여지를 줄여준다.

멈춤과 관련해서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에게 하신 말씀이 경전에 전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모든 생명에 대해서 폭력을 내려놓고 멈추어 있다. 그러나 그대는 온갖 생명에 대해서 자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어 있고 그대는 멈추어 있지 않는다.”(MN.II, An. gulima- lasutta)

경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폭력을 내려놓고 멈추는 것을 진정한 ‘멈춤’에 비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부처님은 언제나 멈추어 있는 것이고, 앙굴리말라는 멈추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폭력은 다양한 방식이 있다. 신체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언어적 폭력, 그리고 정신적 폭력이 그것이다. 이들 폭력은 폭력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씻기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돌이켜 봄’이다. 내가 당하는 사람 입장이라면…. 이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면 그렇게 모진 폭력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공감’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천성(生而知之)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속에서 자라면서 습득한 것(學而知之)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두드러지게 갖고 있는 특징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부처님께서 ‘모든 생명에 대해 폭력을 내려놓고 멈추어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폭력을 당하는 생명에 대한 깊은 ‘공감’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 ‘공감’이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할 수 있다. 남의 고통을 내가 겪는 고통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폭력을 내려놓고 멈출 줄 아는 자가 갖게 되는 불가사의한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통력’의 본질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나 커다란 아픔을 겪고 있다. 세월호에 갇힌 채 지고 만 꽃다운 생명들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참담함의 이면에는 탐욕을 멈추지 못한 어른들이 있다. 안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많은 돈을 벌고자 한 사람들, 재난에 대비하여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한 정부,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되도록 방치한 우리들. 누가 이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못난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리는 글을 통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 자신의 유리, 불리를 따지느냐 바쁜 일군의 무리들도 있을 것이다. 탐욕을 조금만 멈추고, ‘공감’의 능력을 조금만 쓰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런 비극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44호 / 2014년 5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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