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지금 저 모습이 내 모습

어김없이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왔다. 한 찰나도 고통이 없는 날이 없는 사바세계 감인토(堪忍土)에 해마다 빠짐없이 방문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이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바람에 미칠것처럼 저리고 쑤시던 팔꿈치에 스르르 혈액이 흘러주면 그 시원함이란 말로 다할 수 없다. 어깨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목의 어느 한 부위가 꽉 눌려서 피가 통하지 않으면서 찾아왔던 극심한 두통도 어떤 인연으로 피가 통하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모든 고통은 내 마음의 그림자
거울 속 떠오른 상분 잘 다스려
현재 앓고 있는 고통과 아픔
부처님오신날 계기로 치유되길

부처님은 그런 분이시다. 사바세계의 손가락 열 개 끝과 발가락 열 개 끝과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혈액과 에너지가 콸콸 소통되도록 해주시는 분이다. 문제는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중생들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병을 가지가지 종류별로 다 알아서 적절한 약처방을 해주시건만 그 약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우리네 지구 중생들의 히말라야산맥보다 더 두껍고 사하라사막보다 더 메마른 업보가 문제다.

三界皆苦 (삼계개고)
我當安之 (아당안지)
옥계·색계·무색계의 중생계가 모두 고통에 빠져있으니 / 내가 이들을 모두 편안하게 하리라.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것처럼 이번 부처님오신날을 계기로 우리가 현재 앓고 있는 모든 고통과 저 미래의 고통까지도 다 편안하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절망 속에 희망도 있다. 대학시절 들었던 어느 노교수님의 강의가 떠오른다.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가라앉을 때 두 사람이 동시에 겨우 널빤지 하나를 가까스로 붙잡았다고 하자. 그 널빤지는 한 사람이 잡고 있으면 물에 뜨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계속 붙잡고 있으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때 상대방에게 그 널빤지를 기꺼운 마음으로 양보할 수 있겠는가.

진도 앞바다의 어느 학생은 이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닌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양보했다. 우리네 어른들은 잘못은 저쪽이라고 계속해서 떠넘기고 있다.

내 몸 어딘가가 아픈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상식을 필자도 최근 몇 년 전에야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번역일이 어깨를 짓누르고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한동안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머릿속으로 깊은 의미가 이해되고 앞뒤가 연결되면서 문장이 흘러가면 어깨가 절로 가벼워지고 온몸에 에너지가 가득가득 채워졌다. 그런데 덜컥거리면서 내일 모레까지 넘겨야하는 번역원고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면 발가락 끝에서부터 어깨 목까지 갑자기 뻐근해지면서 대장과 소장의 안쪽 벽들이 짜증의 땀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 짜증의 땀이 혈액 속으로 스며들어 온 몸을 한바퀴 돌면 사람자체가 짜증세포로 채워진다. 평소에 가볍게 이해되던 문장도 갑자기 보기가 싫어지면서 애꿎은 만년필 잉크를 탓하게 된다. 저 일이 나를 아프게 하고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를 아프게 하는 저 일과 나를 괴롭게 하는 저 사람은 분명하고 명명백백하게 내 마음의 그림자이다. 유식에서는 이것을 상분(相分)이라고 말한다. 입적하신지 벌써 10년이 되신 직지사 관응조실스님께서는 눈앞에 현재 펼쳐지고 있는 모든 일이 내 마음의 거울 속에 그림자로 떠있는 상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렇다면 잘못은 저쪽이라고 떠밀고 있는 저 모습과 과적상태로 드러누워버린 저 세월호가 바로 나 자신일터이다.

心外無法 (심외무법)
滿目靑山 (만목청산)
마음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없는데
눈앞에 청산이 가득하구나.

짙어가는 신록과 함께 모든 아픔이 치유되길 간절하게 축원 올린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44호 / 2014년 5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