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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원당암 감원 원각 스님

마음을 깨달으면 지금 이 세상이 바로 극락입니다

‘착하게 살아라’ 강박 관념
‘내려 놓아라’에 풀려 발심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선풍
달마선원 대중과 함께 진작

▲ 원각 스님

‘미혹할 땐 나고 죽더니(미즉생멸심·迷則生滅心)/ 깨달으니 진여성이네(오래진여성·悟來眞如性)/ 미혹과 깨달음 모두 쳐부수니(미오구타료·迷悟俱打了)/ 해가 돋아 하늘과 땅 모두 밝도다(일출건곤명·日出乾坤明).’

‘나의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아신본비유·我身本非有)/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도다(심역무소주·心亦無所住)/ 무쇠 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철우함월주·鐵牛含月走)/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 (석사대효후·石獅大哮吼)’

원당암 달마선원 주련에 새겨진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의 오도송과 열반송이다. ‘미혹도 깨달음도 모두 쳐 부수’며 ‘하늘, 땅’을 밝히는 가야산 선객 특유의 당찬 선기가 오도송에 오롯이 나타나 있다. ‘몸은 본래 없는’ 것이니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다는 열반송 일갈은 무아무상의 진면목을 여실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 혜암 스님이 생전에 머물며 정진했던 미소굴. 사진=혜암선사문화진흥회 제공

법구경에 ‘꽃향기가 제 아무리 짙어도 바람을 거슬러 퍼질 수 없지만, 순수한 마음에서 풍기는 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이 세상 끝까지도 간다’ 했다. 선사의 청정심에서 나오는 향기야 말로 우주 끝까지 퍼져 만물에 스며들 터. 혜암 스님의 향훈을 따라 미소굴(微笑屈)로 발길을 돌렸다. 목비(木碑)에 새겨진 혜암 스님의 한마디가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 ‘공부하다 죽어라’ 목비가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공부하다 죽어라’

‘앞으로 중생들이 죽음의 길로만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한 혜암 스님은 그 대비책으로 1985년 지금의 원당암 영당에 재가불자선원 달마선원을 개원했다. 궁극으로는 출재가를 막론한 깨달음에 있을 것이지만, 자본주의 폐단에 따른 인간의 삼독심이 더 요동쳐 뭇 중생들은 화택에서 영영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선견지명에 따른 것이었으리라.

혜암 스님은 매년 여름과 겨울 안거, 봄·가을 산철 결제,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 철야용맹정진 법회를 이끌었다. 법우(法雨)를 기다렸던 전국의 재가고수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다. 1996년 지금의 108평 규모의 달마선원이 신축됐다. 시설 규모로나, 열정으로나 전국 제일의 재가선원이다. 토요 용맹정진을 비롯한 하안거, 동안거, 7일 용맹정진 때에도 200명에서 300여명의 재가불자들이 이곳에서 은산철벽과 마주한다.

혜암 스님의 유지인 ‘공부하다 죽어라’가 원당암 가풍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 선풍을 면면이 이어오고 있는 ‘혜암의 제자’ 한 사람을 꼽아보라면 단연 현 원당암 감원 원각 스님(해인총림 유나)이다. 2001년 12월 혜암 스님이 열반에 든 후 2002년부터 10여년 동안 원당암에 주석하며 달마선원을 이끌고 있다.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입시 준비 차 해인사 약수암에 머물렀다. 산사에 이는 바람에 몸을 맡겨보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착하게 살아라!’ 어떻게 사는 게 착하게 사는 것일까? ‘내가 대학에 합격하면 누군가 떨어지는 건 명확한데 이 또한 착한 삶과는 먼 게 아닌가?’

산사에서의 낙이라면 몇몇 친구들과 해인사 중턱의 중봉암에 올라 도림 스님의 소참법문을 듣는 것. 어느 날 도림 스님은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착한 것도 내려놓고 악한 것도 내려 놓아라!’ 10여 년 동안 쌓였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자신이 느낀 심중을 전하자 도림 스님은 ‘육조단경’을 비롯해 ‘금강경’ ‘반야심경’ ‘법구경’ ‘보조법어’를 내 주며 독파해 보라 했다. 경전어록에 푹 빠졌다. 도림 스님은 청년에게 출가를 권했다. 청년은 삭발하고 승복을 입었다. 행자시절은 그렇게 1966년에 시작됐다.

도림 스님은 다름 아닌 전강 스님의 제자 봉철 스님이다. ‘만행. 화계사에서 하버드까지’를 내놓은 현각 스님을 소백산 절터 석불 앞에 꿇어앉혀 놓고는 “말로 법을 펼쳐 보이는 중은 낮은 수준의 선승”이라 꾸짖었던 그 봉철 스님이다.

어느 날 도림 스님은 그 청년의 손을 잡고 혜암 스님 앞으로 데려갔다. 법기를 한 눈에 알아 본 혜암 스님은 그 청년을 제자로 맞아 들였다. 혜암 스님의 두 번째 상좌가 된 청년은 원각이라는 법명으로 사문의 길을 걸었다. 그 때가 1967년 봄이다. 지리산 칠불암, 상무주암, 남해 용문사에서 정진하던 40대 후반의 혜암 스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시봉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던 원각 스님이다. 묘한 인연이다. 혜암 스님의 출가 해인 1946년은 원각 스님이 태어난 해(주민등록상은 1947년)이고, 혜암 스님의 열반 일은 원각 스님의 생일이다. 숙세의 인연이 아닌가.

차향이 염화실(拈花室)을 적셨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혜암 스님의 본뜻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큰 스님께서 말씀하신 ‘공부’란 참선을 말합니다. ‘죽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최선’만으로는 부족한 게 이 공부입니다. ‘사막에서 물 찾는’ 그 간절함을 기반으로 한 최선이어야만 증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큰 스님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름·직위없어 허무하단 건
극단에 떨어진 단견의 결과
연기중도·쌍차쌍조 확연하면
걸림없고 평화로운 삶 영위해

깨달음의 근원이라는 법명 원각(源覺)은 혜암 스님이 내린 게 아니다. 사미계를 받기 전 혜암 스님이 ‘네가 한 번 지어봐라’해 ‘근원을 깨닫겠다’는 생각에 ‘원각’이라 했다. 법호 벽산(碧山)은 혜암 스님이 직접 내렸다. 벽산원각. 40여년이 지난 지금, ‘푸른 산의 근원’은 어디에 닿아있을까? 선시 한 구절 나올 법 한데, 의외로 원각 스님은 필자의 이름과 회사 직위부터 지워가기 시작했다. 끝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이름과 직위가 내 본모습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그 상태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막막했다. 이름과 직위만 지워버려도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중생일 뿐이다. ‘상’에 걸려있는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라는 의미일 터. 하지만, ‘상’없이 한 세상을 산다는 건 무의미하기도 하다. 이름이라는 상이 없어지니 역할마저 사라지지 않는가? 스님은 한쪽의 극단으로 치우친 ‘단견’이라 했다. 그리고는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통해 처음 접했던 쌍차쌍조(雙遮雙照)를 들어 보였다.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 해가 그대로 드러나고, 해가 완전히 드러나 있으면 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이다. 결국 구름이 걷혔다는 건 해가 드러났음을 의미하고, 해가 드러났다는 건 구름이 걷혔다는 말이다. 쌍차란 양변을 완전히 떠나니 구름이 걷혔다는 말이고, 쌍조란 양변이 서로 융합한다는 말이니 해가 드러나 비친다는 말이다. 쌍차가 쌍조이고, 쌍조가 쌍차인 셈이다.

“쌍차쌍조는 결국 중도(中道)를 말합니다. 중(中)이란 중(中)도 셀 수 없는 양변을 여읜 자리를 말하며 다른 말로는 진공묘유이고, 진여법성이며, 자성청정심입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둘이 아닌 중(中)’이라는 건 모든 것이 다 원융하다는 말이며, ‘능통하다’라는 것은 일체가 막힘없이 무애하다는 뜻이라 하셨습니다. 즉, 연기를 통해 중도를 확연히 알면 걸림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품을 바로 깨달으면 이름이나 직위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름이나 직위가 바뀌어도 흔들림 없지요.”

역설의 역설이다. 부정의 부정이 긍정이 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원각 스님이 말한 확연하다는 것은 단순한 알음알이가 아니라 완전한 ‘체득’, ‘계합’을 뜻한다. 원각 스님은 승조의 시 한 수를 전했다.

‘지수화풍으로 된 이 몸은 원래 주인이 없고(사대원무주·四大元無主)/ 몸과 마음도 본래 비어 있으니(오온본래공·五蘊本來空)/ 칼날이 내 머리 내리쳐도 (장두임백인·將頭臨白刃)/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네(유여참춘풍·猶如斬春風).’

후진의 2대왕인 요흥은 승조 스님을 등용해 재상을 삼고자 그에게 “환속하라” 명했지만, 승조 스님은 “세상의 부귀영화는 허망한 것”이라며 왕의 청을 거절했다. 화가 난 왕은 승조 스님을 옥에 가뒀다가 참수형에 처했다. 당시 쓴 승조의 임종게는 열반송의 백미로 꼽힌다.

“명예와 권력은 물론 죽음마저도 초탈한 대장부의 기개, 너무도 멋지지 않습니까? 확철하게 깨달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대자유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진정한 평화, 안식, 쉼은 대자유를 체달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 조계종 전 종정 혜암(사진 가운데) 스님은 원각(사진 오른쪽) 스님을 두 번째 상좌로 맞이하며 ‘공부도 때가 있다’는 가르침을 전했다. 사진=혜암선사문화진흥회 제공

원각 스님은 대자유와 함께 찾아오는 게 또 하나 있다고 강조했다. 다름 아닌 ‘지혜’다. 그 지혜는 중도연기를 확연하게 깨닫게 되면 동시에 발현되는데, 부처님 법과 다를 게 없는 지혜라고 확언했다. 나와 너, 선악추미 경계에도 걸리지 않는 대자대비심이 심연 깊은 곳에서 샘솟는다고 한다. 원각 스님은 그 마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의 길’로 가려는 자신과 타인을 구할 수 있는 마음이라 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에 ‘깨달음의 도량이 어디인가. 지금 나고 죽는 이 세상에 바로 거기로다(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음을 깨달으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극락입니다.”

확철대오 하도록 열심히 정진하라는 당부다.

“하루살이는 수명이 하루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 짧은 생을 살다가는 벌레도 있습니다. 초명입니다. 소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일생을 마친다고 합니다. 초명은 자신의 인생 몇 번을 살아야 하루살이 생만큼 살아보게 될까요? 하루살이는 자신의 인생 몇 번을 살아야 한 사람의 인생만큼 살아보는 것일까요? 소중한 찰나요, 하루입니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혜암 스님의 뜻을 전하고 있음이다. 지금, 이 시공간에 머무는 동안 한 찰나도 허투루 쓰지 말라는 원각 스님의 당부이기도 할 것이다. 그 어떤 생명이든 존재하는 순간 찰나찰나 변화의 연속에 따라 생을 마감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원각 스님은 묻고 있다.

“당신, 그 소중한 하루를 부귀영화 얻는대만 쏟아 부을 것인가?”

가야산 바람이 원당암 경내를 ‘휘익∼’ 휘돌아친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원각 스님
1947년 경남 하동 출생. 1967년 혜암 스님을 은사로 수계한 이후 해인총림, 영축총림, 조계총림 선원과 범어사, 상원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경남 거창 고견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해인사 원당암 감원 겸 달마선원 선원장, 해인총림 유나를 맡고 있다.

[1244호 / 2014년 5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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