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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숨은 미 찾는 사진작가 박보하 씨

"문화유산을 왜 싸구려 포장지에 담는지..."




박보하 씨

그에게는 ‘큰스님 전문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의 카메라 렌즈를 거치고 나면

큰스님 얼굴의 선 고운 주름과 살뜰히 풀먹인 장삼 자락의

올곧음이 고스란히 사부대중에게 전해지는 까닭이다



사진작가 박보하(37) 씨. 그는 사진작가이며 일찍이 우리가 보지 못한 산사의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내 온기 불어넣은 사진으로 돌려주는 문화발굴자이다. 홍조를 띠며 넘어가는 저녁노을에 발그레하게 물들어 버린 법당의 꽃문살 창호와 주인을 기다리다 삼라만상을 다 깨우친 듯 가지런히 댓돌 위에 앉아있는 선방 앞의 고무신 한 켤레. 말없이 나선 포행길에 문득 주고받는 큰스님과 상좌스님의 미소. 절 집안에 한 두 번쯤 발을 들인 적이 있다면, 고개를 들어 눈 한번 비비고 보았다면, 잠깐 걸음을 멈추고 산사의 고적함을 음미하는 여유를 가졌다면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우리가 훌쩍 넘기고 말았던 산사의 숨은 아름다움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는 여지없이 그 속살을 드러내고야 만다. 하기야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만큼 보여져야 한다’는 그의 신념 앞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박 씨가 ‘불교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전통문화 취재하며 불교에 눈떠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박씨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사진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특별히 불교사진에 집착하진 않았다. 1990년부터 코리아헤럴드지 한국문화 기획 코너에 3년간 사진을 연재할 때만 해도 전통문화의 일부로 불교문화재와 문화를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3년간의 작업은 그가 불교문화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 일대사 인연이었다. 단청과 불화의 화려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색감. 섬세하면서도 조잡하지 않은 사찰의 각종 문양들. 거기에 하나 하나의 장엄물과 조형물에 담긴 의미를 깨우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산사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보고’가 되어버렸다. 불교 미술과 건축 조각 조형물들이 갖고 있는 상징과 의미를 알아야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닥치는 대로 불교문화 관련 서적을 구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불교와의 인연은 ‘무교’였던 그를 골수 불교 팬으로 이끌어 마침내 서옹, 혜암, 진제라는 당대의 큰스님 사진을 곁에서 찍어 사진전을 개최하는 전대미문의 작업을 완성해내는데 이르렀다.

“큰스님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막상 허락을 받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인연이 있었는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지만 워낙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못 알아듣고 실수를 하는 경우도 꽤 많았죠. 서옹 스님은 하늘이 내린 학자답게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책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혜암 스님은 무척이나 꼼꼼하면서도 빈틈이 없는 철저한 수행자의 전형이셨죠. 진제 스님은 언제나 힘이 넘치고 호방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세 분의 스님 중 가장 개성이 강하셨다고 할까요.”1998년 서울, 부산, 백양사 미술관에서 순회전시 된 큰스님 사진전에는 세 큰스님의 이러한 모습이 고스란히 보여졌다.

큰스님 사진전으로 박 씨는 불교계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1993년 월간 좥사진예술좦은 그에게 올해의 사진 작가상을 수여했으며, 같은 해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까지 받으며 일찌감치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큰스님 사진전으로 더욱 힘을 보탠 박 씨는 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방한 당시 영국 측이 지정한 공식 전담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다.



큰 스님 사진전 연 후 유명세



이제는 첩첩산중에 숨어있는 절이 내 집처럼 편안하고, 공양간에서 먹는 그린필드 공양의 담백한 맛도 알게됐다. 이 소중한 경험들을 모아 1999년 사진집 좬산사의 미를 찾아서좭를 펴냈다. 전국의 사찰 36곳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카메라에 담은 ‘작은 아름다움’들이 마침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사진에는 그가 직접 쓴 해설이 곁들여졌다. 그 나름의 ‘산사의 미학’을 담은 것이다. 책이 나온 후 혹자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용어나 해설의 틀린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불교미술이나 미학의 전문가가 아닌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100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면 저는 그 대상이 있는 100곳의 장소를 일일이 다 찾아가 보았습니다. 탑이든 불상이든 암자의 추녀든, 전문적인 지식은 없을지 몰라도 그 모든 것들을 몇 번씩이고 살펴보고 찍어 본 다음에 글을 썼습니다.”그가 품고 있는 자부심이다. 지금 그는 전국의 탑 사진을 찍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전국의 탑이 아마도 180여 기쯤 된다니 그가 찾아야 할 곳도 180여 곳인 셈이다. 지독히도 고집스런 작업이다.



“불교수행 전통을 렌즈에 담겠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아시죠? 그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 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불교문화유산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조잡하고 촌스러운 싸구려 포장에 담겨 나간다는 것이죠. 석굴암의 부처님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장사치가 팔아대는 싸구려 조각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그는 선방의 사진을 찍으려고 벼르고 있다. 아직까지 불교문화의 ‘진짜 깊은 맛’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상을 드러내지않는 불교수행의 전통이 지켜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간의 사람들에게 불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이 남자가 사는 법

한 달에 10번은 여관, 나머지는 절에서 “그래도 나는 가정적인 남자”



박보하 씨가 번듯한 직장인으로 일을 한 것은 26살 때 딱 한번이다. 그것도 고작 6개월뿐이었지만. 부인 이정재씨와 결혼하기 위해 그럴듯한 직업이 필요했던 박 씨는 일종의 위장 취업을 감행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부인과 결혼해 1남1녀를 낳고 지금까지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고 있다. 그러나 단란한 가정이란 그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집에 들어오는 남자. 집에서 보내는 기간이 닷새만 넘어서면 벌써 사진 찍으러 떠날 궁리를 하는 남편을 어떤 부인이 곱게(?) 봐주랴. 한 달에 열 번쯤은 여관에서 자고 나머지는 절에서 자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가정적인 남자’라고 말한다. 경기도 광릉수목원을 지나 호젓한 산 속에 자리잡은 그의 집 너른 마당에서 풀을 뽑고 나무를 자르는 일은 늘 그의 몫이란다. 그런 박씨를 가리켜 부인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박씨의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부인이다. 변변한 돈벌이를 못하던 시절, 어떤 때는 한달 생활비라며 30만원을 내밀고는 무작정 사진만 찍으러 다니기도 했지만 그 어려운 시절을 끝까지 지켜준 사람이 바로 부인이다.

“늘 변함없이 자신의 일에 열심인 사람이죠. 단점일수도 있지만 그런 한결같음이 제게는 믿음이 됩니다” 부인은 이렇게 철썩같이 남편을 믿고 있다. 그렇다면 박씨는? “가끔은 출가 수행자의 생활에 더 없는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고. 그러나 곧바로 “집사람이 이걸 알면 난리 나겠죠. 이번 생에선 말고 다음 생에서나 한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 속에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향기가 되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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