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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법인 바라밀 이사장 현고 스님

복지는 낭만 아닌 자신의 인생·생명 나누는 거룩한 불사

▲ 현고 스님

단언컨대 역대 봉축법어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부처님 법은 중생의 현실적 고통을 덜어주고, 실제적인 이익과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불교는 냉철한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멀리하고 마음만 깨치면 그만이라는 ‘깨침의 신화’에 매몰돼가고 있습니다.”

이타(利他)를 외면한 채 자리(自利)만 구하고 있지 않느냐는 광주 원각사 회주 현고 스님의 촌철살인이다.

송광사 구산스님 은사로 출가
조계총림 사격 조성한 주인공
불교환경·사회복지 지평 열어
템플스테이 처음 착안해 실행
성직자는 진리 실천하는 사람
관념적 불교 이제는 벗어나야

승보종찰 송광사의 현 모습과 사격은 현고 스님의 노력으로 탄생됐다. 경내에 펼쳐져 있는 60여개의 전각, 요사채 중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건 수선사, 설법전, 도성당 정도다. 20대 초반인 1971년 출가한 후 1998년 송광사 주지소임을 놓을 때까지 27년 동안 산사를 떠나지 않고 일군 역작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님은 이미 5개의 법인을 설립하고 20여개의 복지관을 운영했으며 200채의 절집을 지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했던 스님은 지금도 주암호보존협회 이사장, 생태지평연구소 이사장 등을 맡아 환경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찰건축, 불교사회복지, 환경생태 3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인 조계종 중진스님이다.

궁금했다. 봉축법어를 통해 이리도 날카로운 비수를 종단에 던진 이유가. 누구든, 현고 스님이 걸어온 여정만 슬쩍 들여다봐도 ‘박수’쳐 줄 터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해야만 했던 그 이유가 궁금해 순천 송광실버하우스로 발길을 재촉했다.

▲ 송광실버하우스는 광주 복지시설 중 최고를 자랑한다.

현고 스님의 출가는 당돌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모 대학 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던 청년은 송광사 사하촌의 한 여관에서 하숙하며 공무원시험을 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산책 삼아 송광사로 향했다. 한 스님이 석축을 쌓고 있는 인부들에게 ‘제대로 일 하라’며 혼을 내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그 스님에 끌렸다. 옆에 가 ‘석축은 왜 쌓느냐?’, ‘이 절은 언제부터 있었냐?’, ‘저 건물은 뭐냐’ 등의 시시콜콜한 이것저것을 물었다. 3일째 되던 날 청년이 물었다.

“지구만한 종이에 우주를 그려 넣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그리시겠습니까?”

한 점으로라도 표현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과학 분야는 전연 모를 스님일 터이니 대답도 궁색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도전 앞에 선 구산 스님이 일렀다.

“온 우주가 네 안에 있다!”

여관으로 돌아온 청년은 책과 이불은 물론 남아있는 하숙비마저 다 들고 송광사 산문을 열고는 구산 스님을 은사로 삭발했다.

“신선한 충격? 아니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전에는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 생각했는데, 그 순간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다’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쳐갔습니다. 돈이나 명예, 학벌 등의 조건에 의해 내가 그려지고, 그렇게 그려진 그 모습이 나의 실체라 생각했던 종전의 인식도 송두리째 뿌리 뽑혔습니다.”

‘진정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도량 내 모든 스님들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예불문과 초발심자경문, 반야심경을 공부해보니 ‘근본’, ‘본질’을 제대로 알고 다스리라 한다. 그런데 일부 수행인들의 삶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스님들 머무는 요사채의 지붕이 새 빗물이 방으로 떨어집니다. 양동이로 받쳐 놓고는 빗물 안 새는 공간으로 이동해 수행하더군요. 몇날 며칠이 지나도 그냥 그렇게 지냅니다. 이상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 기와 한 장 갈면 끝날 일인데 누구 한 사람 고쳐보려 하지 않아요.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법담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아니예요. 오히려 밥이 질다, 국이 짜다, 싱겁다 이런 말만 있어요.”

그래도 스님의 심중을 알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제 길을 가게 해 준 사람은 은사 구산 스님이었다. 구산 스님은 누구보다 먼저 빗자루를 들고 나와 대웅전 앞을 쓸었다. 대중살림의 기본을 이론이나 관념이 아닌 실천으로 몸소 보여주었다. 현고 스님이 바라보는 불교는 그래야 했다. 스스로 펼칠 불교도 그래야 한다 생각했다.

이성의 날을 너무 벼렸던 것일까? 사중에서도 ‘까칠한 스님’으로 소문났다. 사리에 맞지 않으면 작은 일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현고 스님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사람은 사형 현호 스님이었다. 어느날, 구산 스님이 현호 스님을 불렀다.

“내가 이 도량에 신세 많이졌다. 도량을 장엄해 주었으면 한다. 현고를 불러라. 현고가 있어야 불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성철 스님의 당부로 송광사를 잠시 떠나 해인사 총무를 맡고 있던 현고 스님은 은사 스님 부름에 한걸음으로 달려왔다. 현호 스님과의 송광사 중창불사는 그렇게 시작돼 8년 동안 지속됐다. 어느 날, 현호 스님이 현고 스님에게 주지직인을 전했다. 이제부터는 현고 스님이 주지라는 뜻이다.

“현고 스님, 자네가 지장이고 용장인 건 맞네. 그런데 지난 8년 동안 나를 사형이나 주지로서 제대로 대접해 준적 있나? 그럼에도 내가 주지 직인을 자네에게 이렇게 넘겨주는 건 자네가 덕장이 되길 바라기 때문일세.”

가슴이 먹먹해 졌다.

“제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그 때 깨우친 게 있습니다. 인재를 키우고 싶다면 일단 묵묵히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사람 곁에 더 큰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는 간과할 때가 많아요.”

1998년 송광사 주지 임기를 마치고 도심 속 원각사에 와 세간 현실을 살펴본 현고 스님은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다. 불교는 절 안에만 있을 뿐, 절 밖 세상엔 불교가 없다는 슬픈 현실 앞에 가슴을 쳤다. 불교의 대사회활동이 전무함을 통탄한 것이다.

“세상의 고통을 불교가 외면하니, 세상도 불교를 외면해 가고 있었습니다. 자비 가득한 인간애를 추구하겠다는 불교의 사명, 보살도는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불교는 이렇게 지리멸렬해 가고 있었구나. 세상의 고통을 나도 외면해 왔구나. 참회했습니다.”

일단 송광종합사회복지관에 전념했다. 처음엔 직원 월급도 주기 어려웠지만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열어 아픈 이들의 고충을 담았다.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절감한 후엔 고려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현고 스님의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한국지역복지학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타이틀이 갖는 의미는 컸다. 기독교뿐만 아니가 불교도 복지불사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사회복지의 새 지평을 활짝 연 셈이다.

“상대에게 무엇인가 베풀 때도 모르고 주면 독입니다. 자율·자립의지를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준다’, ‘베푼다’는 생각도 오만입니다. 상대를 배려한 나눔이어야 합니다. 무주상보시여야 하는 것이지요. 복지는 낭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과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환경생태 문제는 송광사 주지 재임시에도 좌시하지 않았다. 1988년 주암댐을 건설할 때 환경문제가 발생해 지역민들과 함께 감시활동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적 ‘리오선언’이 나온 직후부터는 더더욱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사람과 자연이 둘일 수 없습니다. 함부로 버린 오물 하나가 결국 내 입으로 다시 들어온다는 사실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 함부로 파헤쳐 고기 한 마리 제대로 살 수 없다면 그 물은 우리도 마실 수 없습니다. 공존공생은 이치가 아닙니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현고 스님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의미 있는 불사 하나를 이뤄냈다. 조계종 전국 주요 사찰에서 실시하고 있는 템플스테이를 처음 착안해 실행에 옮긴 주역이 바로 현고 스님이다. 템플스테이는 현대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의 힐링공간이면서 세간과 출세간의 소통 공간이기도 하다. 불교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고 스님은 지금의 템플스테이는 위험수위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다.

“불자는 물론, 목사, 신부, 기독교, 무종교인도 템플스테이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재설계되어야 합니다. 포교를 겨냥한 프로그램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한국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템플스테이여야 합니다. 불교는 그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템플스테이의 원래 의미를 되찾자는 뜻이다. 일례로 종과 운판, 목어 등을 쳐보는 프로그램은 괜찮지만 누구든 참선해야 한다는 강요식 프로그램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한다. 유명 강사를 초청해 인문사회 강연을 여는 건 좋지만 불교교리를 중심으로 한 불교강좌나 설법이 혹여라도 있다면 거두는 게 좋다고 한다.

“언젠가는 시민단체나 정부가 템플스테이를 냉철하게 평가할 겁니다. 당연히 예산지원 규모나 지속성을 염두에 둔 평가이겠지요. 그 때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시민들의 정당한 평가 속에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체진단은 방기한 채 불교만을 위한 템플스테이로 흐른다면 결국 정당성은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 송광실버하우스 개관 20주년 기념식 모습.

현고 스님은 ‘부처’가 ‘신’이 된 작금의 불교행태도 하루빨리 깨야한다고 강조한다. 부처가 신이 되면 스님은 주술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개인의 번뇌망상을 깨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교도에 형성된 왜곡된 불교를 깨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기복불교를 조장해서는 안됩니다. 천도재 올리면 죽은 영혼이 극락에 간다는 것을 이성적인 논리로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산 사람들의 위안일 뿐이지요. 방편이라 하겠지만 이미 본말이 전도돼 천도재가 불교인 것처럼 인식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적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배고픈 사람,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돌보세요. 그들의 미소에서 기적을 보게 될 겁니다.”

현고 스님은 끝으로 의미 있는 한마디를 전했다. 성직자란 ‘자신의 삶을 통해 진리가 현실 속에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수행자란 불법을 이해시키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이해한 후 직접 그 가르침대로 살아서 불교적 삶의 실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나아가 부처님의 교설이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는 뜻이다. 관념적 불교를 이제 그만 걷고 실천적 불교로 한발 내딛자는 뜻이리라. 현고 스님은 그렇게 걷고 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현고 스님
1971년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27년간 송광사 주지로 중창불사를 일으켰다. 1998년 주지직을 내려놓은 스님은 ‘주암호보전협의회 의장’과 ‘푸른전남21 이사장’을 맡아 환경운동에 나섰고, 송광종합사회복지관을 이끌었다. 송광종합사회복지관 관장, 한국사회복지관협회 부회장,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 그린순천21 공동대표를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총무부장,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다. 법인 5개를 설립하고, 복지관 20여곳을 운영했으며 절집 200채를 지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바라밀’ 이사장, 전남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주암호보전협의회 이사장, 생태지평연구소 이사장, 송광실버하우스 원장, 광산구장애인복지관장을 맡고 있다. 2000년 국민포장에 이어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1246호 / 2014년 5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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