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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통증이해공감상담사

지금은 거의 극복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통증 때문에 수십년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고 그 덕택에 낮에도 멍하게 보냈다. 아니면 마음을 거칠게 휘둘렀다. 밤새 잠을 자도 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 전체나 어딘가가 늘 불만에 차있게 된다. 그걸 누가 잘못 건드리면 바로 폭발해버린다. 푹푹 찌는 여름날 사람들이 더워서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을 치는 날씨쯤 되어야 조금 몸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고 5분만 달리면 온 몸이 슬슬 얻어붙으면서 만사가 귀찮아진다. 덕분에 그런 하소연을 하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 안다.

가슴 깊이 생각 다듬어 보면
통증은 좋은 도반 이기도해
자연과 사람 청정히 대하는
진정한 마음이 활력에너지

만성통증을 겪어보지 않거나 참을성이 유달리 강한 사람은 만성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꾀병부리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만성통증 당사자는 참 기가 다 막힌다. 얼마동안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다가 사람들이 자신의 통증에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무의식이 알아채고는 입을 다문다. 이제 통증은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간다. 대장벽이나 소장벽이 굳고 간이 문드러지고 심장이 지치고 췌장이 비틀거리게 된다. 이런 통증을 겪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통증을 잘 이해한다. 얼마전에 만났던 분에게 ‘많이 아프시군요’하는 말 대신에 ‘통증이해공감상담사를 하시면 아주 잘 하시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씩씩하고 힘찬 대답이 돌아왔다. ‘네. 그거 아주 잘 할 수 있어요.’

물론 아픈 것이 썩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업 때문에 아프다는 걸 알았을때 처음에는 그놈의 업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업은 전환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그 업설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 알아차려질 때까지는.

우리가 세월호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해도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불의의 사고로 세 살짜리 애기를 저 세상으로 보낸 엄마는 이웃집 엄마가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발목이 다쳤다고 난리 걱정을 피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가 스무살짜리 딸이 손가락 두 개를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울고불고 할 때도 말없이 그 친구의 손을 꼭 쥐어주기만 한다. 우리 아들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두 다리를 잃었다고 혼수상태에 빠진 친척도 꼭 안아줄 뿐이다.

조금만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저런 만성통증으로 고생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개인의 통증뿐만 아니라 단체의 통증, 계층의 통증, 학벌의 통증, 국적의 통증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만성통증 증후군이 널려있다.

문제는 나의 통증은 확실하게 느끼면서 남의 통증은 아예 모르거나 혹 알면서도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한 호흡 깊게 들이쉬고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보면 통증은 좋은 도반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부지게 가다듬어 바라보면 통증은 불보살님께서 뼈를 깨부수고 골수 속에 집어넣어주신 최고급 다이아몬드이다. 그 다이아몬드의 에너지를 잘만 소화해서 온 몸으로 휘돌리기만 할 수 있다면 사실은 엄청난 활력에너지이다. 현재는 물론 아프다. 근육이 찢어질듯 아프고 뼈가 으스러지듯이 저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찌릿찌릿하면서 말로 다할 수 없이 아프다. 필자는 ‘번뇌즉보리’라는 말을 이제 ‘통증은 활력에너지이다’하는 말로 확신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갖가지 만성통증에 힘겨워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야부 스님의 시를 읽는다.

竹密不防流水過 (죽밀불방류수과)
山高豈碍白雲飛 (산고기애백운비)

대나무 숲 빽빽해도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니 / 산이 높다고 어찌 흰구름 나는 것을 막아서리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46호 / 2014년 5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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