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대 한국불교의 여정과 과제

1935년에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인도의 위대한 불교학자, 불교운동가, 소설가와 사상가인 라후라 산크리탸얀(Rahula Sankrityayana)은 한국불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유구하고 자랑스러운 불교문명의 유산을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위기에 직면해왔다. 불교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예술과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힘든 여정을 걸으며 문화유산과 전통에 대한 열정이 약화됐다. 사실상 불교국가인 일본의 잔학행위와 억압은 다수의 한국 젊은이들이 서구문명과 기독교로 전향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한국역사에서 불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서 결코 묵살될 수 없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각자들은 중국과 인도로 건너가 불교철학뿐만 아니라 선진문명을 배우고 전파하면서 한국 고대문화의 기틀을 잡았다. 또 일본에 건너가 일본 불교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불교의 초기 전파과정 뿐 아니라 고대국가의 형성과 불교사원 건립, 승관제도 수립 등은 한국과 일본 승려들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인해 500년간의 길고 긴 침묵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일본불교는 꾸준히 발전했다.

19세기말 일본승려의 도움으로 500년 동안 지속돼왔던 스님의 도성출입 금지령이 해금되었지만 이러한 협력의 밑바닥에는 메이지(明治)시대 팽창적 민족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세기말부터 서양의 근대 학문을 수입한 뒤 실증적 방법으로 불교학 연구의 체계를 세우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일본의 불교학연구는 호전적 민족의식의 강화와 더불어 식민지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고 문화적 헤게모니를 확인해 주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세기말 일본 지식인들은 동양 삼국이 연합하여 서구 열강의 도전을 막아야한다며 ‘흥아회(興亞會)’를 만들었고 개화파 승려인 이동인도 이 모임에 적극 참가했다. 그러나 흥아회는 실제로 일본의 제국주의정신 확대의 수단이었고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한론과 아시아맹주론을 실천하는데 힘을 쓰게 된다.

메이지시대 아시아맹주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오카쿠라 텐진(岡倉天心)은 인도가 1000년간의 이슬람통치로, 중국이 수차례에 걸친 호족의 침공으로 문화가 왜곡되고 본질을 잃었지만 일본은 아시아문화의 정수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동양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유일한 박물관으로써 고대아시아의 눈부신 문화를 회복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카쿠라 텐진은 한국 불교문화를 중국불교의 연장선상으로 봤는데, 이 학설이 아직도 일본불교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관점을 바로잡고 해외에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해 위상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현재 불교전도협회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장학재단들은 외국 유명 대학에서 불교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고 불교관련 학술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한국불교계도 한국불교학진흥재단을 발족시키고, 해외 주요도시에 불교종합문화센터를 설립하고, 국내외 불교학 전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 한국불교학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에서 중국불교학과 일본불교학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했지만 서양인의 한국 초기불교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카즈 모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pankaj@aks.ac.kr

[1247호 / 2014년 6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