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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싸 가는 길

황량한 돌무더기 산에 피어난 신심의 꽃, 티베트

이 기사는 조계종 교육원 승려연수교육의 후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잿빛 돌무더기 산 위로 경전을 적은 타르쵸가 펄럭이고 있다. 뵈릭 민족은 숨 쉴 공기조차 희박한 히말라야 고원에 불교를 숭상하는 그들만의 왕국을 세웠다.

차창 밖으로 황량한 풍경이 낮게 깔린 하늘과 맞닿을 듯 펼쳐진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잿빛 돌무더기 산, 일행을 실은 버스는 지금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경들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조화로움 속을 달리고 있다. 인도 판과 아시아 판의 충돌로 생성돼 아직도 그 높이를 키워가고 있다는 히말라야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온 사람들이 풍경의 일부인양 드문드문 박혀있다. 마치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의 숨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대지로 깊게 뿌리내린 모습이다.

라싸로 향하는 길. 이 광활한 공간에서 오직 인간이 손길을 덧댄 것만이 부자연스러움을 발산하고 있다. 돌무더기 산 굽이굽이로 위태롭게 걸려있는 도로에는 붉디붉은 오성홍기(五星紅旗)가 고원의 바람을 타고 휘날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거대한 광고판은 자본주의의 물결이 히말라야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시점부터 시작된 중국 속 티베트,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의 슬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를 목도하는 것 같아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들이 농밀하게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여실히 느낄 수 있음이라.

▲ 도로 주변의 거대 광고판.

하지만 티베트를 순례하는 이방인은 풍경이 변해가도 사람은 그대로일 것이라 믿고 싶다. 한족들이 중화사상이라는 무기를 들고 이 땅을 잠식해오고 있지만 티베트인들에게는 불교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 스님)이 5월18~27일 주최한 티베트 성지순례(지도법사 혜총 스님) 참가 스님과 취재진은 순례기간 동안 티베트의 암울한 현실과 깊은 밤하늘 외로운 별처럼 빛나는 희망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었다.

라싸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오성홍기와 광고판 가득해
현재 급격한 한족화 진행 중

과거 불교왕국 건설했으나
중국지배로 정체성상실 위기

본격적인 일정의 시작은 라싸 공가공항에서부터였다. 순례단은 5월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동했던 중국 충칭을 출발해 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공가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자 여과 없이 내리쬐는 강렬한 직사광선과 고산증세의 고통이 일행을 맞는다. 공가공항은 해발 4000m에 위치해있다. 한라산의 두 배가 넘는 높이다. 대기의 산소농도는 우리가 살던 곳의 60~70%에 불과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호흡이 가빠온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리고 가슴은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하다. 가이드의 조언대로 최소한의 움직임을 유지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걸음을 걷는 단순한 행위에도 불필요한 동작이 얼마나 많이 가미됐었는지, 온 몸을 조이는 고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라싸로 들어가는 입구인 공가공항.

가까스로 버스에 오르자 두통이 조금 옅어진다. 공가공항은 라싸 남쪽으로 98km 떨어져있다. 라싸까지 2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갑작스러운 고산증세로 축 늘어진 터라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버스가 압도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성홍기가 우리를 감시하듯 펄럭이고 있고 의류브랜드와 전자기기 등 광고판이 반복적으로 시야를 방해하고 있지만.

자연이 빚어낸 놀라운 풍광과 중국의 티베트 점령 후 만들어진 조형물들과의 부조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몇 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친다. 티베트인들의 영혼은 과연 지배와 억압의 거친 조수를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험준한 지형에 아로새긴 티베트인들의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라싸의 조캉사원 주변을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티베트인.

티베트인, 즉 뵈릭 민족의 기원은 유인원이다. 여러 정령과 동물들이 노닐던 태초의 히말라야 고원에 특별한 원숭이가 한 마리 있었다. 그는 관세음보살의 안내에 따라 얄룽 계곡에 있는 한 동굴에 도착해 도를 닦았다. 어느 날 바위의 정령이 나타나 명상에 잠긴 원숭이에게 결합을 간청했다. 관세음보살의 조언을 받은 원숭이는 인연을 받아들이고 여섯 명의 자식을 낳는다. 후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형상을 갖춰나갔다. 그들은 불을 지펴 소와 말을 키우고 채집과 수렵으로 식량을 충당하면서 번성해나갔다.

여섯 부족은 곧 열두 부족으로 늘어났고 얄룽 계곡을 중심으로 부족연합을 형성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기원전 3세기 경, 열두 부족이 공동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녹색 피부와 물갈퀴를 가진 아이가 나타났다. 부족장은 아이를 하늘이 보내준 왕이라 여기고 어깨가마를 태워 마을로 데려왔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어깨무등으로 왕이 된 이’라는 뜻의 ‘네치짼뽀’로 짓고 신격화시켰다. 이는 토번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네치짼뽀는 티베트 4대 호수 가운데 하나인 얌드로쵸 호수 용왕의 딸 남무무와 결혼해 천신의 혈통을 이어갔다.

그 후 부침을 거듭하던 토번왕국은 전설적인 왕 송첸캄포(581~649)의 출현으로 티베트 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된다. 송첸캄포는 어린나이에 보위에 오르자마자 정적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내정을 장악했다. 고유문자를 창제하고 법령을 정비해 기틀을 다진 송첸캄포는 동북방 지역을 평정한 후 북방원정을 감행하는 등 영토확장을 거듭했다. 토번은 이내 당나라와 국경을 마주하는 대국으로 성장한다. 자신감을 얻은 송첸캄포는 네팔과 당나라에 볼모를 요구했고 두 나라는 각각 부리쿠티공주와 문성공주를 티베트로 보낸다. 이들은 선진문물을 함께 가져왔는데, 특히 토착종교인 뵌뽀교가 지배하던 티베트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되는 계기가 됐다.

8세기 후반 치송데첸 왕은 중국 본토를 공격해 당의 수도인 장안을 점령했으며 실크로드로 진출, 돈황을 지배했다. 치송데첸은 숭불칙서(崇佛勅書)를 공포해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티베트 최초의 출가자를 배출한 삼예사를 건설했다. 인도에서 초빙한 빠드마삼바바가 주술로 뵌뽀교를 몰아낸 후 불교는 티베트의 정신을 형성하는 절대적 가치가 됐다.

이 시점부터 티베트 고원의 역사는 불교의 번영과 맥을 같이해왔다. 토번왕국이 멸망하고 원나라에 침공 당해 1만명의 승려가 살해되는 참변을 겪기도 했지만 불교는 뵈릭 민족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아갔다. 특히 제5대 달라이라마인 로상 갸초는 환생제와 법왕제의 도입으로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정권을 탄생시켰으며 포탈라궁의 관음성지 홍궁(紅宮)을 건설, 대내외적으로 불교의 권위를 세웠다. 하지만 제5대 달라이라마가 법왕으로 즉위한 후 정확히 300년이 흐른 1959년, 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는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된다.

그 후의 역사는 익히 아는 것과 같다. 1965년 중국은 라싸와 시가체를 포함한 지역을 서장자치구로 지정했다. 1966년부터 중국 전역을 휩쓴 문화혁명의 광풍에 수없이 많은 사원들이 파괴되기도 했다. 1989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티베트 독립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으나 1996년 시작된 서남공정(西南工程)으로 뵈릭 민족은 서서히 중국 역사의 변방으로 편입되고 있다. 나아가 2006년 칭짱(靑藏)열차 완공은 티베트의 한족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의 독립은 과연 한바탕 꿈에 불과한 것인가. 지금 라싸로 향하는 버스의 차창 밖 풍경은 히말라야를 수놓았던 불교왕국 티베트와 중화주의를 내세운 중국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있다. 짧은 순례만으로 그 내밀한 속살을 더듬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풍경과 사람들에게서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하게 되길 염원해본다.

한참을 상념에 잠겨있는데 가이드의 낭랑한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중국에 대한 고마움에 티베트인들이 자발적으로 중국국기를 내걸었다는 가이드의 말이 고원의 바람 따라 부질없이 흩어진다. 도로주변으로 점점이 펼쳐진 티베트 민가에는 어김없이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불교경전을 적은 깃발인 오색 타르쵸는 원래 자리를 내어주고 오성홍기의 배경으로 물러났다. 바람은 히말라야 설산을 타고 넘어와 순례자들의 뺨을 스치고 오성홍기와 타르쵸를 흔들어놓는다. 저 바람, 슬픔일까 희망일까.

▲ 티베트 민가에 어김없이 걸려있는 오성홍기와 타르쵸.

멀리 라싸가 보이기 시작한다. 달라이라마의 도시, 포탈라를 품은 뵈릭 민족 마음의 고향 라싸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고 있다. 그 사이 고산증세로 인한 답답함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대신 기대감으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라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설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라싸로 흘러가고 있었다.

라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48호 / 2014년 6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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