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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

물욕 덜어 낸 소박한 차 한 잔이 세상을 맑혀간다

▲ 원학 스님

“찻자리를 만들어 맛과 향기를 나누면 저절로 지혜로운 슬기가 솟고 더불어 행복해 질 수 있다.”

최근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이 선보인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에 담긴 일언이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을 수행자적 입장에서 명쾌하게 해설했다.

정말, 차 한 잔의 여유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향기로운 동다’와 ‘깨달음의 환희’에 담긴 뜻을 꿰뚫으면 차 한 잔의 진정한 의미도 드러날 것이라는 사념을 안은 채 봉은사 다래헌(茶來軒)으로 향했다.

18세 때 쓴 원학스님 불(佛)자
해인도인 지월, 객승들에 자랑
청남-우계 선생에게 서화 사사
남종화 전통 이으며 개인전 6회

불성(佛性) 찾아가는 ‘선의 길’
다성(茶性) 드러내 보려는 다도
무상·연기 터득해 가는 과정

‘달팽이 뿔’만한 공간에 산다고
마음 닫아가며 살아가선 안 돼
뭇 생명과 호흡·나눔 생활화가
진정한 다인이 걸어야 할 길

다래헌 대나무가 미풍에 흔들리고 있었다. 예로부터 군자들은 곧은 성품을 키워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자신이 머무는 마당에 대나무를 심고, 거실에는 찻물 달이는 화로를 놓아두었다. 그래서 ‘죽로지실(竹爐之室)’이다. 다인(茶人)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해 간다는 의미로 향을 피웠다. 그래서 일로향실(一爐香室)이다.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에는 한 가지 더 있다. 경전이다. 다로경권(茶爐經卷)이라는 족자가 스님들의 다실에 많이 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학 스님 다래헌에는 하나 더 있다. 붓이다.

고집 세 툭 하면 싸움질 잘 했던 14세의 스님 손에 붓을 들려 준 건 집안 어른들이었다. 16세에 출가한 후에도 사경하며 붓을 놓지 않았던 원학 스님이고 보면 붓과의 인연도 숙연일 터. 붓과의 인연을 좀 더 깊게 열어준 장본인은 ‘고래등 지붕 아래서, 거울 장판 아래서, 백옥 쌀밥을 먹으며 사는 우리가 공부 말고 뭐가 더 필요하냐!’ 일갈했던 해인사의 키작은 도인 지월 스님이다. 손상좌 원학 스님이 18세 때 쓴 불(佛)자를 자신의 방에 걸어 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자랑했던 지월 스님은 서예공부에 매진해 보겠다는 손상좌의 뜻을 헤아려 부산에 머물고 있던 청남 오제봉 선생과의 인연을 맺게 해 주었다.

원학 스님은 범어사 강사를 하며 동대신동 청남 선생의 집까지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오가며 글씨를 배웠다. 청남 선생과 의형제를 맺은 효당 최범술, 의재 허백련 선생을 만난 것도 그 때다.

어느 날 청남 선생 방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우니 물고기가 아니 물어(야정수한어부식夜靜水寒魚不食)/ 빈 배에 밝은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만선공재월명귀 萬船空載月明歸)’라는 야부 도천 스님의 시와 함께 그려진 그림은 의재 선생의 작품. 순간,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의재 선생으로부터 사사하지는 못 했다. 의재 선생은 글씨에 이어 십군자, 화조를 그려내야만 산수화를 가르쳤는데 원학 스님은 당시 서예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을 뿐 십군자도 공부하지 못했던 때다. 원학 스님은 훗날 의재의 제자 우계 오우선 선생으로부터 산수화를 사사해 중국 남종화의 맥을 이었다.

대상의 사실성에 충실하는 북종화와 달리 남종화는 화가가 품고 있는 생각을 그리는 ‘사의(寫意)’를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말 그대로 붓가는 대로 그리는 직관의 세계다. 이미 여섯 번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원학 스님이다. 전통 산수묵화에 자주 등장하는 산, 강, 바위가 스님 작품에도 표출돼 있다. 원학 스님은 “집념의 작가정신을 발휘한 것이라기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수행자의 취미를 화폭에 담았을 뿐”이라 하지만 그 의미는 사실 남다르다.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사상에 입각한 화엄상생의 세계를 선과 농담으로 표현한 것이다.

차를 내는 원학 스님 뒤편에 놓여있는 그림 한 점이 ‘적멸의 한적함’으로 빠져들게 한다. 마음이 일면 붓을 들고, 구도가 떠오르지 않으면 붓을 내려 놓다보니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대략 3년쯤 걸렸다.

이 작품에도 산과, 나무, 그리고 강이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니 숲 사이에 집 한 채 다소곳이 있다. 화제는 ‘임중모옥다연기(林中茅屋茶煙起. 숲 속 초가집에 어느 선비가 앉아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난다)’. ‘차를 달이는 집’이라 한 이유가 궁금했다.

▲ 원학 스님의 작품 임중모옥다연기(林中茅屋茶煙起. 숲 속 초가집에 어느 선비가 앉아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난다)는 3년에 걸쳐 완성됐다.

“산사를 덮었던 새벽 안개가 맑은 바람에 서서히 걷혀 가는 풍광을 본 적 있습니까?  그 풍경 마주한  순간이나마 108번뇌도 안개와 함께 쓸어져 가는 듯합니다. 그 산자락 어딘가에 자리한 움막에서 누군가 차 한 잔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유한(遊閑)의 극치입니다.”

찬 한 잔에 ‘유한의 극치’까지 맛볼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차 한 잔의 ‘여유’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원학 스님은 차의 사향(四香)과 구난 사이의 관계를 일러 주었다.

사향이란 참 향기, 난초 향기, 맑은 향기, 순수한 향기를 말하는데 차에서 사향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옛 사람들은 ‘다경’에서 말하는 아홉가지 어려움, 즉 구난(九難)을 극복해야만 사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다경의 구난은 이렇다. 좋은 차 제조하기 어렵고, 좋은 차 감별하기 어려우며, 좋은 다기를 준비하기 어렵다. 차 끓이는 불 다루기 어렵고, 좋은 물 선택하기 어려우며, 차를 적당히 덖기 어렵다. 또한 좋은 말차가루 내기 어렵고, 차를 잘 달이기 어려우며, 차를 예법에 맞게 마시기 어렵다. 그러나 원학 스님은 이 모든 걸 갖췄다고 해서 사향을 얻을 것이라 예단하는 건 착각이라고 한다.

“선악을 구별해 욕심을 조절하고 화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순응하는 물처럼 남을 용서할 줄 알고 모든 생명체를 존중할 줄 아는 경앙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늘 거울처럼 닦아 티끌이 머물지 않게 하고, 마음이 가는 길을 잘 살펴 항상 자신이 있는 본래 그 자리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육바라밀 팔정도를 실천해 가는 수행자의 길과 다르지 않다!

“차맛은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그 맛을 표현하는 사람은 각각 다르게 말합니다.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어 평등하지만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주 속의 모든 생명체가 불성을 갖고 있듯, 누구나 차가 가진 본질의 일미를 느낄 수 있는 다성(茶性)을 갖고 있습니다. 선정을 닦음으로써 불성이 나타나듯 다성 역시 지극한 정성을 통한 행다의 수련을 쌓아야 비로소 드러납니다.”

차를 대하는 사람의 마음이 우선인 셈이다. 진정한 다인이라면 여러 가지 차를 두루 섭렵하는 것 보다 단 한 잔의 차라도 마음을 담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중국 청나라 시대의 심복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운을 그리며 쓴 회고록 ‘부생육기’에 담긴 ‘연차’ 이야기를 전했다.

아내가 아침마다 내주는 차맛은 천하일품이었다. 그 비법이 궁금해 아내의 차 끓이는 방법을 눈여겨보았다. 연못에 핀 수련은 저녁에 꽃 봉우리를 오므렸다가 아침이면 활짝 핀다. 아내는 저녁나절 꽃심 옆에 차를 넣었다. 수련은 밤새 별빛과 달빛 이슬을 머금었다. 봉오리 안의 차에 수련향이 깊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부인이 아침에 낸 차는 꽃봉오리에서 꺼낸 차를 달여 낸 차였다.

“사향이란 결국 차를 내는 사람의 정성이 빚어 낸 결과물입니다. 그 정성은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몇 가지 행다의식만 알면 마치 고상하고 고급한 문화생활을 누리는 양 자족자락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 원학 스님 작품. 화제는 ‘물 흐르는 계곡 가까이 매화꽃 먼저 핀 것 알지 못하고 겨울이 지났는데 눈이 아직 녹지 않았는가를 의심하였네.’

원학 스님은 차의 색처럼 몸을 맑히고, 차향처럼 덕성을 쌓아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차의 맛처럼 나눔을 생활화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백거이가 시로 전했습니다. ‘달팽이 뿔 같은 좁은 세상에서/ 무엇을 다투려 하는가/ 부싯돌 불빛 같은 찰나의 순간에/ 잠시 이 몸 의탁한 것이거늘.’ 그렇습니다. 그러나 달팽이 뿔 공간에 산다 해서 마음 마저 닫을 이유는 없습니다.”

팽주와 팽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홀로 차 한 잔 마시는 자리에 소나무와 달을 초대해 보라고 한다. 그 옆에 흐르는 물소리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함께 할 것이라 한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자기를 돌아보듯 그윽한 차향 속에 한 잔의 차맛을 음미하면, 흰 구름과 밝은 달이 환희와 깨달음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은 몸과 마음을 맑히는 수행의 한 방법입니다.”

‘향기로운 동다’ 한 잔에 ‘깨달음의 환희’가 담겨 있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었다. 원학 스님이 전하는 소박한 차 한 잔 속에 권위니 물욕이니 하는 것들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다선일여(茶禪一如)’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

대나무 스친 미풍이 찻잔을 스쳐가는 순간 원학 스님이 한마디 전한다.

“차를 통해 대자연의 생명과 함께 호흡하는 삶이 진정한 다도입니다. 뭇사람들과 인연 맺고 서로 위하며 은은한 인정 나누며 사는 게 지혜로운 삶입니다. ‘달팽이 뿔 같은 좁은 세상’에서 ‘부싯돌 불빛 같은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더라도 차 한 잔 해 보세요.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임중모옥다연기’ 움막에서 차 내는 사람이 시 한수 읊는다.

‘차의 첫 향기에 노불은 엷은 미소 짓는데, 종소리 긴 여운을 청산이 묵묵히 듣고 있네. (香初老佛微微笑 향초노불미미소) (鐘後靑山默默聽 종후청산묵묵청)’

차 한 잔 마주하며 인연을 나눠보아야겠다.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게 우리 삶 아니던가.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원학 스님
16세에 도성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로 출가, 해인승가대학 12기(‘해인승가대학 승가상’ 수상), 해인승가대학 총동문회장 역임.
동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에서 동양화 전공. 남종화 거장 의재 허백련의 제자 우계 오우선 선생으로부터 전통산수화를, 청남 오재봉 선생으로부터 서예 사사. 1974 불교미술제 우수상, 동아미술제 입선. 1977년 서울 중앙불교회관 첫 개인전, 2009년 중앙불교박물관 초대전까지 6회의 개인전 활동.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문화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10, 11, 12, 15대 중앙종회의원, 서울 조계사, 봉국사, 진주 연화사, 대구 용인사 주지 역임. 2013년 초의문화제(22회)에서 ‘초의상’수상.


[1248호 / 2014년 6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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