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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들숨도 시 한 편

덜컥 여름이다. 계절도 반은 제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덥다고 열받을 일이 아니라 이럴 때 겨울 동자 동시(冬詩)를 한 편 읽어본다.

북송시대의 문장가 장뢰(張耒)가 지은 ‘떡파는 아이’에 대한 시이다.

城頭月落霜如雪 (성두월락상여설)
樓頭五更聲慾絶 (누두오경성욕절)
捧盤出戶歌一聲 (봉반출호가일성)
示樓東西人未行 (시루동서인미행)
北風吹衣射我餠 (북풍취의사아병)
不憂衣單憂餠冷 (불우의단우병랭)
業無高卑志當堅 (업무고비지당견)
男兒有求安得閒 (남아유규안득한)

성 너머로 달이 떨어지자 서릿발이 눈처럼 하얗게 빛나고 / 누각에서 오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끊어질락 말락 할 무렵 / 떡판을 어깨에 매고 집을 나서면서 큰소리로 떡사시오 외치는데 / 시내 누각 동서 사방에 사람들이 아직 다니지 않는 구나 / 매서운 북풍이 옷에도 들이치고 떡판에도 불어치는데 / 홑 옷이 걱정이 아니라 떡이 식을까 걱정이라네 / 직업의 귀천없이 뜻이 마땅히 굳건해야 되는 법이니 / 남아가 구하는 바가 있다면 어찌 한가롭게 지낼 수 있겠느냐.

시는 대부분 고상한 것이 아닌
시인 자신 통증 절제 표현 한 것
우리 모두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아서 움직이는 시 만들어 내

아마 어지간히 게으름을 부리는 아들이 이 시의 작자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작자는 시를 짓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북쪽 이웃에 떡파는 아이가 있었다. 항상 오경 무렵 아직 해가 뜨기 전에 거리를 돌면서 큰소리로 외치면서 떡을 팔았다. 아무리 춥거나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빠지는 날이 없었고 시간도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에 시를 지었다. 또 경계할 바도 있으므로 거갈에게 보여준다.”

오경은 새벽 3시부터 5시까지이다. 오경을 알리는 북소리는 세시에 울린다. 이 시를 지은 선비도 항상 그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몇해전에 어느 강의에서 이 시를 소개한 적이 있다. 둘째 줄 ‘누두오경성욕절’하고 읽어주었더니 한 분이 갑자기 질문을 했다.

“오경에 성욕이 끊어졌다는 말입니까?”

 “아 예. 여기서 성자는 소리 성자입니다.”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필자도 생각해보니 거의 매일 그 시간에 잠이 들지 않았다. 엄습하는 통증이 잠을 재워주지 않은 것이다. 5시 넘어 아침 7시쯤 되면 통증에 지칠대로 지친 몸이 기절하듯이 이제는 잠을 좀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역경원으로 출근준비를 해야 되는 시간이었다. 출근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지옥에서 쇳물로 머리 감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하면 출근을 9시에 하긴 하는데 오전이 아닌 오후시간인 경우도 더러가 아니라 많이 있었다.

지구에서 내리는 지하철역이 혹시 있을까 하여 지하철 노선도를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농담으로 읽는 분도 계시겠지만 강도 높은 통증을 과거형으로 체험해보았거나 현재 체험학습중인 분들은 공감이 되는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다.

‘시’가 마냥 고상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시가 절제된 통증의 표현이다. 한문으로 된 시는 물론이고 우리말로 된 시도 음미해보면 음미해볼수록 시인 자신의 통증을 절제하고 절제해서 표현해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통증에 힘겨워하고 있는 분에게 간혹 말씀드린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사색적이 되셨군요.”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웃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역동적으로 살아 율동하는 시 한편이다.
승자도 시인이고 패자도 시인이고 관중도 시인이다. 여름도 시이고 가을도 시이고 봄겨울도 시이다. 콧구멍을 막 통과중인 공기도 시이다. 들숨도 시 한 편이요 날숨도 시 한 편 아니겠는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48호 / 2014년 6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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