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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작자미상, ‘왕회도’

기자명 조정육

“눈에 보이는 것들 너머 여래의 진면목을 보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

조공 바치는 모습 그린 왕회도
황제를 소박한 모습으로 표현
상에 집착하면 제대로 못 봐
본질 읽어야 진리 만날 수 있어

▲ 작자미상, ‘왕회도병풍’,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67×380cm, 이화여대박물관.

아, 이거였구나. 얘기가 하고 싶어 나를 보자고 했구나. 그 친구를 마주보며 앉아있는 시간 내내 그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얘기를 시작했다. 밥 먹는 순간에도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그의 얘기는 쉼 없이 계속됐다. 말의 물길을 틀어막았다가는 홍수가 날 것 같은 속도였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불교공부를 시작했는데 자신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다면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불교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아 망설였지만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겠다 싶어 나왔다. 스승이 아니라 도반이라면 만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만나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일을 겪었는데 그걸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속이 오죽했으랴.

얼마 전에 ‘10억 주고 산 부처님’이란 신행 수기를 쓴 이후 있었던 일이다. 그 친구는 대뜸 자기는 부처님을 10억이 아니라 100억을 주고 샀다고 털어놓았다. 나보다 열 배나 부처님을 비싸게 주고 산 사연이 네 시간동안 계속됐다. 얘기가 다 끝나고 헤어질 무렵 그가 내게 물었다. 나도 열심히 수행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나는 그에게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제행무상이잖아요!”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마땅히 어떻게 그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산스크리트어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무상정등정각이라는 뜻이다.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이며 견줄 바 없이 가장 바른 부처님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는 말은 부처가 되려는 마음을 낸다는 뜻이다. 줄여서 간단히 발보리심(發菩提心) 또는 발심(發心)이라고도 한다. 수보리가 천이백오십인의 대중을 대표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발심한 사람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 통제해야 하는가, 라고. 이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였다.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금강경’에 나오는 사구게(四句偈:네 구절로 된 게송) 중의 하나다. 워낙 유명하여 뜻풀이보다 원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늘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원문을 소개했다.

발심한 사람의 자세를 물었는데 상을 버리라는 대답이다. 상(相)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상을 버리라 하셨을까. 상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실체로 잘못 보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들은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로 잘못보고 실체라고 믿는다. 껍데기를 실체라고 믿는 것이다. 실체가 아닌 껍데기에는 네 가지가 있다. 그 네 가지 상(四相)이 바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다. 나라고 하는 아상, 나와 남을 구별하는 인상, 나는 못난 존재라는 중생상, 나는 나이가 몇 살인데 하는 수자상 등이 모두 실체가 아닌 껍데기다. 이런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다. 보시를 할 때도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한다. 보시를 하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보시. 머무는 바 없이 행하는 보시는 그 복덕을 헤아릴 수 없다. 네 가지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금강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다. 심지어는 부처님을 볼 때도 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을 구비하신 분으로 32길상(吉相)과 80종호(種好)를 갖추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동안 선행과 수행을 한 결과 이런 길한 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하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형상이라도 그 형상마저 허망하다고 가르친다.

부처님의 형상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방편일 뿐 부처님의 참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실체는 육신의 몸이 아니라 진리의 몸인 법신(法身)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형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상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허망하기 때문이다.

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제행무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영원한 줄 착각하며 살아간다. 항상하지 않은 것에 집착한 데서 고통이 생긴다. 내가 가진 젊음이 항상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가진 돈이 항상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가진 사랑이 항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항상한 것은 없다. 항상 변한다. 항상하지 않다는 진리를 알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바깥으로부터의 경계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집착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애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이것이 만상의 근원에 있는 진면목, 여래를 보는 것이다.

‘왕회도병풍(王會圖屛風)’은 얼마 전에 실견한 작품이다. 현재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미술과 이상’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귀한 작품이다. 황제가 각국 사신들로부터 조공 받는 장면을 오방색의 진채로 10폭 병풍에 그린 작품으로 보존상태가 좋아 처음 제작했을 당시의 힘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부감법으로 내려다 본 궁궐에는 소나무와 오동나무 등의 고목들이 기품 있게 심어져 있다. 공작새가 거니는 나무 위로 상서로운 구름이 뒤덮인 가운데 각국의 사신들이 황제에게 조공을 바친다.

꼼꼼하게 채색으로 묘사한 건물과 괴석, 정원에서 거니는 공작과 수목 표현은 19세기에 많이 제작된 ‘요지연도(瑤池宴圖)’ ‘백동자도(百童子圖)’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같은 궁중회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으로 이 작품의 제작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왕회도병풍’은 다른 궁중장식화와 마찬가지로 화려함과 장식성이 돋보인 작품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 행사장면이 매우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10폭이나 되는 긴 화면에 황제가 조공 받는 행사장면을 근접 촬영하듯 집중적으로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만큼 행사장면이 실감나게 눈에 들어온다.

왕회도(王會圖)는 황제가 각국의 사신들에게 조공을 받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구당서(舊唐書)’ 권86 ‘남만열전(南蠻列傳)’에 보면 “정관(貞觀) 3년(629)에 원심(元深)이 들어와 조회하였다. 중서시랑(中書侍郞) 안사고(顔師古)가 아뢰기를 ‘옛날 주 무왕(周武王) 때에 천하가 태평하여 먼 나라들이 찾아오자 사관(史官)이 그 일을 기록하여 ‘왕회편(王會篇)’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만국이 찾아와 조회하였는데, 그들의 의상이 실로 그릴 만하니, 지금 왕회도를 편찬하였으면 합니다’라고 하니, 윤허하였다”라고 하여 왕회도가 이때부터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화가는 초당(初唐)을 대표하는 인물화가 염립본(閻立本:600년경-673)이 맡았다. 관료이자 화가인 염립본은 ‘역대제왕도권(歷代帝王圖卷)’ ‘직공도(職貢圖)’ 등을 남긴 대가다.

중국에서는 왕회도가 당(唐) 태종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조선에서는 대한제국(1897. 10-1910. 8. 22)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대한제국이 선포됨으로써 고종이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종 황제는 이 작품이 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왕회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고종 16년(1879) 5월24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살펴보면 여러 신하들이 ‘통감’을 진강하는 과정에서 왕회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에 고종은 “먼 나라에서 와서 조공을 바친 것이 이때보다 더 성대했던 때는 없다. 왕회도(王會圖)를 그려서 후세에 보인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하교한다. 물론 이 ‘왕회도병풍’은 실제장면을 그린 기록화가 아니다. 비록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했으나 외국 사신들로부터 조공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중국의 왕회도에 의거하여 나라의 번영을 꿈꾼 상상화였을까. 아니면 고종황제의 미래를 향한 청사진이었을까. 자료가 없으니 어떤 의도로 제작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왕회도병풍’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공을 바치며 알현하기를 청하는 황제의 모습이 의외로 아주 작게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황제는 오른쪽 1, 2폭에 세워진 전각 안에 옹색하게 앉아 있다. 두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앉은 황제의 모습은 엄청난 위용을 갖춘 최고의 권위자로써의 모습보다 궁벽한 오지의 판관 나으리처럼 소박하다. 진짜 황제가 맞나 할 정도로 존재감이 약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황제가 아니라 차례를 기다리는 각국 사신들 같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자세와 몸짓,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 끝에 황제가 있다. 구석에 있되 결코 비중이 낮은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황제는 누구보다 크게 그려야 하고 한 중앙에 그려야 하고 화려하게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크기나 모양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려했다가는 읽을 수 없는 작품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했던 구절이 나온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혹은 시선을 확 사로잡는 것에만 집착하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 너머에 있는 본질을 읽어야 참 진리를 만날 수 있다. 여래를 만날 수 있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번민. 이것도 모두 허망하다. 여러 원인과 시절 인연에 의해 도래한 것일 뿐 항상하지도 않고 고정되어있지도 않다. 기쁨과 즐거움이 항상하지 않듯 이 또한 원인이 제거되면 결과 또한 바뀔 것이다. 그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때가 되면 사라진다. 고통이 가르쳐주는 참 진리를 생각하고 용기를 내시기 바란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48호 / 2014년 6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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