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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전(傳) 서문보, ‘산수도’

기자명 조정육

“흐르는 구름처럼 머무르는바 없이 마음 낼지니”

“마땅히 형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마땅히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금강경

떡장수 노파 엉뚱한 질문에
얽매임 한계 깨친 덕산스님
어떤 것에도 고정되지 않고
오직 머문바 없이 마음 내야

▲ 전(傳) 서문보, ‘산수도’, 16세기 전반, 비단에 색, 39.6×60.1cm, 일본 야마토문화관.

‘금강경’을 읽을 때면 덕산 스님과 떡장수 노파가 생각난다. 덕산(德山:782~865) 스님은 중국 당나라 때 스님으로 이름이 선감(宣鑑), 속성은 주(周)씨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율장을 깊이 연구하였다. 여러 경전의 깊을 뜻을 두루 통달한 후에 ‘금강경’을 강설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금강경’에 능통한 전문가였다. 그런 어느 날 남방 오랑캐들이 불립문자(不立文字)니 교외별전(敎外別傳)이니 하는 말을 떠들며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교학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덕산 스님은 그들의 그릇된 견해를 깨우쳐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남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점심때가 되었다. 그때 마침 떡장수 노파가 떡을 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덕산 스님이 노파에게 다가가 떡을 청했다. 그런데 노파가 떡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 바랑이 무거워 보이십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그렇게 무거워 보이세요?”

덕산 스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떡장수 노파의 수작에 덕산 스님이 걸려들었다.

“‘금강경’에 내가 직접 주석을 단 ‘금강경소초(金剛經疏)’가 들어 있소.” “아, 그래요? 잘 됐군요.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만약에 이 질문에 대답을 하면 떡을 공짜로 드리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떡을 팔지 않겠습니다.”

주금강이 아니던가. 덕산 스님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좋습니다. 무엇이든 물어 보십시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심(點心)을 하시려는지요?”

서문보(徐文寶:15세기 후반)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산수도’는 ‘산수화(山水畵)’의 연원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산수화(山水畵)는 산(山)과 물(水)을 그린(畵) 그림이다. 산과 물이 들어간 자연경관을 그린 그림으로 동양화의 한 장르를 의미한다. 산수화를 그릴 때 산이나 물이 들어가야 산수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문보가 그린 ‘산수도’에는 산수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가 전부 들어가 있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바위가 있고 나무가 있다. 그 품 안에 절과 빈 정자가 작은 돌맹이처럼 놓여 있다. 산이 높으면 물이 깊은 법. 그림 하단에 넓게 펼쳐진 강물이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물의 풍부함을 암시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붓으로 쓴 ‘산숭해심(山崇海深):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의 경지가 바로 이러할 것이다.

서문보의 ‘산수도’에서 눈에 띄는 구성요소가 하나 더 있다. 구름(雲)이다. 구름은 ‘산수화’를 그릴 때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산과 바위와 나무는 모두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 없는 경물에 항상 움직이는 구름이 내려앉았다. 구름은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며 산 사이를 돌아다닌다. 비로소 자연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산수도’에서 구름을 제거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림이 얼마나 건조하고 팍팍하게 느껴지는가를. 구름은 단 한 순간도 고정된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온도에 따라 모습이 바뀐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흔적을 숨긴다. 더위가 들이닥치면 재빠르게 몸을 피해 하늘로 날아간다. 몸이 무거워 더 이상 하늘을 돌아다닐 수 없으면 빗방울이 되어 대지에 스며든다. 한때는 물이었고 한때는 수증기였고 한때는 빗방울이었던 구름은 단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다. 모양을 달리했을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머무는 바 없이 머물러 있었다.

서문보는 성종(成宗) 때 활동한 화가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1483) 1월21일 기록에 의하면 ‘강희맹(姜希孟)이 서문보를 추천하여 9품 체아직(遞兒職)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어 그의 활동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로 최숙창(崔叔昌)과 이장손(李長孫)을 들 수 있다. 세 사람은 모두 비슷비슷한 소재에 구도와 필법도 유사한 작품을 남겨서 화제다. 그들이 남긴 작품은 모두 한 사람의 것으로 오해될 만큼 화풍이 비슷하다. 현존하는 그들의 작품이 모두 일본의 야마토문화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들은 서로 함께 모여 구름 덮인 산과 강을 자주 찾아 갔던 것일까.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산수지향적인 삶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금강경’에는 구름 같이 사는 수행자의 모습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보리심을 낸 사람은 어떤 것에도 걸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에 걸려서도 안 되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에 걸려 마음을 내서도 안 된다. 오직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구름처럼 말이다.

불시에 노파의 공격을 받은 덕산 스님은 아찔했다. 20여년 동안 자신이 공들여 풀이한 ‘금강경소’에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어야 하는지 해답이 적혀 있지 않았다. 문자를 넘어선 불립문자의 세계에서만 찾을 수 있는 답이었다. 불립문자는 덕산 스님이 교화시키겠다고 큰소리치던 남쪽 오랑캐 무리들이 수행하는 선(禪)의 세계가 아닌가.

넋을 잃고 서 있는 덕산 스님에게 노파가 길을 일러줬다.

“이 길로 곧장 올라가시면 용담원(龍潭院)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숭신(崇信)대사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덕산 스님은 용담원의 숭신대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서야 비로소 문자에 얽매이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오만방자했던 덕산 스님이 숭신대사를 만나 곧바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 해에 연재하게 될 ‘3부-승(僧)’에서 살펴보겠다.

경전 공부를 조금 했다는 이유로 목에 힘이 들어간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덕산 스님처럼 깊이 있게 공부한 것도 아닌데 시건방졌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올 해 뜬금없이 ‘금강경’ 독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뜻도 어렵고 용어도 익숙하지 않아 한 번 읽는데 40분이 걸렸다. 계속 읽다 보니 나중에는 10분으로 단축되면서 뜻도 거의 이해됐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계속 비슷비슷한 내용이 되풀이되어 나오는 대목이었다. ‘금강경’은 모든 현상이 공(空)함을 알아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결론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이다. 그 가르침을 표현을 달리하여 거듭 되풀이하여 당부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수보리존자의 대답이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형상에 얽매이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신 후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물으셨다. 수보리존자가 단호하게 32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대답한다. 1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체 32장 중 13장이면 앞부분에 속한다. 이때 이미 수보리존자는 겉모습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6장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존자에게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고 다시 물으신다. 이번에는 수보리존자가 정반대로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32가지 신체적 특징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보리존자가 어리석어서 그런 대답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수보리가 누구인가.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공(空)에 대한 도리를 가장 잘 파악한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존자가 아닌가. 그런 분이 부처님의 뜻을 모를 리 없다. 더구나 장로 수보리가 아닌가. 장로(長老)는 여러 수행자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어른을 일컫는다. 나이 많은 수보리는 지혜나 수행자로써의 자세가 부처님 제자들을 지도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한 데는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야 알았다. 하루에 열 번씩 거의 50일을 독송하고 나서야 수보리존자의 깊은 뜻을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수보리 존자는 자신이 몰라서 거듭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틀리게 대답했다. 그래야 그곳에 있는 다른 비구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더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 속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이해하지 못한 비구가 있었으리라. 어리석은 나처럼. 또한 후세에 이 경전을 읽는 사람이 복습하듯 거듭되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했으리라. 어리석은 나처럼. 이것이 보살심이었다. 베풀었다는 생각도 없이 베푸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이었다. ‘금강경’에는 부처님의 보살심 뿐만 아니라 수보리의 보살심도 들어 있다. 알면 알수록 더 거대한 뿌리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49호 / 2014년 6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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