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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화하는 라싸

주인 잃은 히말라야 고원을 부유하는 티베트의 영혼

▲ 드레풍 사원에서 바라본 라싸 서쪽 신시가지. 한족의 주거지로 중국정부 주도 하에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개발의 광풍에서 밀려난 티베트인들은 동쪽으로 쫓기듯 이주했다.

당혹스럽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겨지지 않는다. 꽉 막혀있는 도로. 라싸에서 순례단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교통체증이었다. 순례단 버스를 에워싼 차들에게서 나오는 경적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차 안의 사람들은 양 손을 운전대에 힘없이 올려놓은 채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도로주변에는 갖가지 공장은 물론이고 포크레인 등을 판매하는 건설장비 업체가 즐비하다. 이제 막 외형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형 건물의 공사현장에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고개를 들어 시야를 넓혀보니 공사 중인 건물은 한두 개가 아니다. 강렬한 직사광선과 고산증세의 고통만이 지금 우리가 티베트에 있음을 간신히 상기시켜주고 있을 뿐, 여느 도시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은 잿빛 돌무더기산을 배경으로 우울하게 이어지고 있다.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라싸는 현재 히말라야 고원의 역사와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거대한 변화를 집약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2006년 7월1일 중국 칭짱(靑藏)열차가 종착역인 라싸를 향해 첫 출발을 한 날 ‘은둔의 샹그릴라’ 티베트는 벌거벗은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사실 티베트는 중국인들에게도 낯선 땅이었다. 1986년 대외에 개방됐으나 관광객은 하루 평균 500명에 불과했고 자본주의의 침투는 더뎠다. 하지만 칭짱열차가 완전 개통되자 관광객과 중국인들이 돈과 중화사상을 들고 물밀 듯 들이닥쳤다. 호텔·백화점·레스토랑이 세워지고 아스팔트가 깔렸다. 육중한 중장비가 흙담 대신 콘크리트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라싸의 지도를 바꿔버렸다. 포탈라 궁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한족들만의 신도시가 조성됐고 티베트인들은 동쪽으로 쫓기듯 이주했다.

송첸캄포가 633년 천도 이래
정치·문화 중심지였지만
1950년 인민해방군이 점령

2006년 칭짱열차 개통 이후
관광객·중국인 물밀 듯 들어와
자본주의와 중화사상에 잠식

▲ 중심가에는 외국 브랜드 매장이 가득 들어차 있다.

변한 것은 외관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몰리자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부동산 시장은 요동쳤다. 빈부격차 심화로 노숙자들이 라싸 거리를 활보하는 생소한 광경도 생겼다. 티베트인들은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가보를 들고 나와 관광객에게 팔았으며 일부는 돈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티베트는 중국인에게도, 순례자에게도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칭짱열차 개통과 급속한 경제개발 이면에는 티베트 정신을 압살하고 중화사상을 주입하려는 중국정부의 의도가 짙게 배어있다. 지난해 5월 티베트 유명 시인인 체링 위세르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 라싸를 여행하던 중 큰 충격을 받았다.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이자 뵈릭 민족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조캉 사원을 둘러싼 순례길인 바코르 지역에 1000대 이상의 주차공간을 갖춘 대형 쇼핑몰 공사가 한창이었던 것이다. 티베트 자치정부는 2012년 조캉 사원을 포함한 유적지를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총 공사비 12억 위안(우리 돈 2000억원) 규모의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600여 개의 노점이 철거되고 티베트인들은 도시 외곽으로 강제 이주됐다.

바코르 지역은 조캉 사원을 참배한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전통인 꼬라(순례)를 하는 지역이다. 꼬라는 법당 등 사원내부만을 도는 낭꼬라와 중간 원으로 바깥담을 끼고 도는 파꼬라, 가장 큰 원으로 포탈라와 조캉, 라모체를 포함한 라싸 전체를 크게 도는 링꼬라로 나뉜다. 라싸의 주요 유적지는 꼬라를 돌기 위해 만다라 형식으로 배열돼 있으며 그 가운데 조캉과 바코르는 역사적 상징성과 위치적 조건으로 꼬라에 있어 가장 신성시되는 지역이었다. 때문에 바코르에는 불교경전이 적힌 종이가 들어있는 마니차를 돌리거나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티베트인들의 행렬이 하루 종일 이어지고 있었다.

▲ 마니차를 돌리며 꼬라(순례)를 하는 티베트인.

바코르 개발계획이 알려지자 티베트 학자 200여명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개발중단을 촉구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역시 바코르 지역이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서한을 보냈다. 개발반대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중국정부는 지난해 10월 부랴부랴 구시가지 보호법을 제정하고 종교적 전통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은 거대하고 일시적인 정책변화로 그 속도를 늦추기에는 너무나 거칠기만 하다. 현재 티베트인들은 칭짱열차 개통과 중국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이 열어놓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티베트인들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순례단 앞에 놓인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어느덧 버스는 라싸 외곽을 지나 시내 중심지를 통과하고 있었다. 디자인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관공서 건물과 휘황찬란한 장식의 상점, 오만가지 색의 상업 간판, 그리고 흙먼지 자욱한 공사현장이 이곳저곳 어지럽게 널려있다. 그것들 사이로 말끔한 현대식 복장을 갖춰 입은 채 양산을 손에 든 티베트 여인들이 수다를 떨며 지나간다. 곁에서 ‘安全(안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란 모자를 눌러쓰고 중국식 붉은 교복을 입은 티베트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있다. 금발의 관광객을 태운 인력거가 교통체증에 멈춰있는 버스를 느릿느릿 추월하는 것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라싸가 그려낸 풍경 속에서 오직 어리둥절한 표정의 이방인만이 이질적 존재라는 사실을. 티베트인의 삶은 이미 냉엄한 현실로 깊게 침잠해버린 것은 아닐까. 잠잠해진 줄 알았던 고산증세가 또 한 번 가슴을 조이기 시작한다. 아니, 고산증세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지금 느껴지는 답답함은 비단 산소부족 때문만은 아니리라. 쓸데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온갖 의미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건 아닌지, 내리쬐는 햇살에 온갖 상념 지워내며 차창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둬낸다.

▲ 시내의 교통체증은 중국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그때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후미진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다. 짙은 빛깔 전통복장을 입고 마니차를 돌리며 꼬라를 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이다. 입으로는 경전구절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다. 티베트에 도착해 처음으로 마주한 모습이다. 순례를 출발하기 전, 늘 기대해오던 순간이건만 새삼스럽게 나타나 순례자의 마음을 어지럽힌 뒤 골목의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히말라야에 세워진 찬란한 불교왕국의 유산은,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신들의 땅 라싸를 부유하고 있었다.

라싸. 이곳은 토번왕국이 배출한 불세출의 영웅 송첸캄포가 633년 천도한 이래 티베트 고원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지였다. 9세기 토번왕국이 멸망한 후에도 티베트 불교 중심으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유지했다. 1416년 달라이라마의 겔룩파가 교외에 드레풍, 세라, 간덴 등 3대 사원을 세우고 1645년에는 제5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포탈라 궁이 현재의 형태를 드러냈다. 이로써 라싸의 종교적 권위에 비견할 수 있는 도시는 판첸라마의 시가체 정도를 제외하고는 티베트 고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팽창을 거듭하던 1903년 영국군이 라싸를 점령한 후 제13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피신하는 등 국가존폐 위협을 겪게 된다. 결국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로 진군하고 1959년 달라이라마는 라싸를 탈출한다. 그리고 1960년 중국정부는 라싸를 자국의 일개 도시로 지정한다.

▲ 라싸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도시 라싸는 뵈릭 민족과 부흥을 함께하며 티베트 고원을 호령했지만, 현재는 주인을 잃고 자본주의의 화려함에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흐릿하게 다가온 라싸와 티베트인들이 먹먹함 되어 마음을 짓누르는데 순례자를 감싼 히말라야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기만 하다. 아주 오래 전, 생명들이 이 땅에 자리를 잡기 전에도 하늘은 오늘과 같이 눈부시게 빛났을 것이다. 다만, 변하는 건 인간이요 그를 안타까워하는 이 역시 무명에 사로잡힌 인간일 뿐. 티베트 순례 첫날, 숙소로 향하는 버스의 차창 밖 풍경이 처연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이 기사는 조계종 교육원 승려연수교육의 후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249호 / 2014년 6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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