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4월5일 원로회의
18. 4월5일 원로회의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4.06.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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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조계종 개혁 성패 가른 중요한 분수령
▲ 조계종 원로회의는 의장직무대행 혜암 스님의 소집으로 1994년 4월5일 대각사에서 회의를 열고 의현 총무원장의 즉각 사퇴와 전국승려대회 개최를 결정했다.  종단개혁기념사업추진위 제공

1994년 4월5일 열린 원로회의는 조계종 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원로회의가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를 지지한다면 개혁세력들은 뚜렷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의현 총무원장을 돕는다면 종단개혁은 한낱 구호에 그칠 수 있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승가풍토에서 원로들의 입김은 종단 여론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였다. 범종추가 3월23일 출범과 동시에 원로들에게 공을 들였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4월2일 중앙승가대에서 종단개혁 의지를 재차 결집한 범종추는 원로 설득 작업에 나섰다.

전국승가대학학인연합회(전승련)는 4월2일 해인사 방장 혜암 스님에게 승려대회 개최를 호소했다. 범종추 소속 스님들은 해당 문중별로 역할을 나눴다. 원로들을 찾아 종단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마침내 종단 원로들도 속속 범종추를 지지하고 나섰다. 전 원로 경월·벽암 스님은 4월2일 종단개혁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경주 불국사 조실 월산 스님도 이날 범종추 지지 성명을 냈다. 4월3일 현직 원로로는 처음으로 영암 불갑사 조실 수산 스님이 성명을 발표했다. 스님은 “종도들의 여망을 저버리고 강행된 임시중앙종회는 무효”라며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자신감을 얻은 범종추는 4월5일 서울 대각사에서 원로회의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시 원로회의의 소집권한은 종정 서암 스님에게 있었다. 종헌종법에 원로회의는 의장이 소집하도록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암 스님은 원로회의 의장이던 1993년 11월15일 원로회의에서 성철 스님에 이어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원로회의는 이날 후임 원로의장을 선출하지 않았다. 서암 스님이 종정과 원로의장을 겸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이 무렵 서암 스님은 범종추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의현 총무원장이 물러나고 종단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 그러나 승려대회 등 급진적 개혁방식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스님은 기존 종단 틀 내에서 제도 개혁을 통한 변화를 모색했다. 특히 서암 스님은 1993년 11월30일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종단개혁위원회가 만든 ‘종단개혁안’을 발표한 상태였다. 개혁안은 승가 갈마법을 시행하고 율장에 의해 종단이 운영되는 것을 기본 토대로 삼았다. 교육과 재정, 의례, 포교, 총무원, 중앙종회, 원로회의 등에 대한 제도개선도 포함했다. 종단 비상시에는 스님 350명과 재가자 150명이 포함된 ‘종단대표자 회의’를 구성해 화합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그동안 종단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최된 승려대회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승려대회는 종권탈취를 위한 수단일 뿐, 불교적 문제해결 방식이 아니라는 게 스님의 생각이었다. 4월9일 ‘승려대회 금지 교시’도 이런 배경에서 발표됐다.

이 시각 범종추는 이미 4월10일 승려대회 개최를 위한 수순을 밟았다. 승려대회 기획팀을 가동하고, 승려대회에 따른 기구 조직표와 봉행위원회를 구성했다. 각 사찰마다 인원동원도 준비했다. 4월5일 원로회의는 이를 추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4월5일 원로회의 소집은 확정되지 않았다. 서암 스님이 원로회의 소집을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암 스님은 4월3일 ‘원두 스님 납치사건’으로 급히 거처를 금산 태고사로 옮긴 상태였다. 4월5일 대각사에서 원로회의를 열기로 했던 범종추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4월4일 오후 6시경 대각사에 있던 원로회의 부의장 혜암 스님은 원로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이는 권한 밖의 결정이었다. 대신 혜암 스님은 원로의장 직무대행이라는 직책을 사용했다. 이 역시 종헌종법에는 없는 것이었다. 혜암 스님과 범종추가 궁여지책 끝에 만들어낸 새로운 직함이었다.

범종추, 승려대회 앞두고
원로회의 소집 거듭 요청
서암 스님, 원로의장 겸직
회의 소집에 회의적 반응

혜암스님 의장대행 직함으로
4일 밤 원로회의 소집 통보
종헌에는 규정 안 된 직책
승려대회개최 위한 궁여지책

원로, 의현 원장 즉각 사퇴
전국승려대회 개최 등 결의
총무원장 사퇴 여론 급확산
종회의장도 원로 결정 지지

조선일보(1994년 4월6일자)는 “종정 서암 스님의 원로회의 참석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혜암 스님은 차분한 어조가 갑자기 격앙되면서 ‘종정이 없어도 원로회의를 소집하겠다’며 종정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노출했다”고 보도했다. 종정 스님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범종추 역시 이를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였다.

당시 범종추 기획실장 현응 스님은 “서암 스님은 종정이었기 때문에 원로회의 의장직은 자연 소멸한 것으로 봤다. 물론 종헌종법에는 의장 궐위시 부의장이 대행한다는 규정이 없었다. 이는 입법미비였다. 의장 궐위 시 부의장이 대행하는 것은 사회통념이다. 절차상 큰 하자가 없는 것으로 봤다”고 회고했다.

4일 밤 혜암 의장직무대행의 명을 받은 범종추 스님들은 전국의 원로들에게 소집 통보문을 전달했다. 다음날 오후 4시 대각사에서 열린 원로회의에는 혜암 스님을 비롯해 비룡·도천·응담·도견·원담·수산·고송 스님이 참석했다.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은 부방장 청하 스님을 대리 참석시켰다. 송광사 방장 승찬 스님과 봉선사 조실 운경 스님은 위임장을 통해 원로회의 결의를 따르겠다고 밝혔다.

4월5일 원로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첫 안건으로 ‘의현 총무원장 3선에 관한 인준의 건’이 상정됐다. 의장 직무대행 혜암 스님은 “거두절미하고 의현 총무원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앞장서 주장했다. 원담 스님은 “원로회의에서 총무원장을 불신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무처장 원두 스님은 “불신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혜암 스님은 “의현 총무원장을 불신임 결의를 하는데 이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의가 없자 혜암 스님은 “의현 총무원장은 법난사태를 책임지고 즉각 사퇴할 것과 3월30일 총무원장 3선은 무효임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곧이어 ‘전국승려대회개최의 건’이 상정됐다. 이번에도 혜암 스님이 나섰다. 스님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담 스님은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비상종단 체제에 들어가야 한다”고 두둔했다. 원두 스님이 이의를 제기했다. 스님은 “원장 사퇴 후 비상종단을 구성해 개혁을 하면 된다. 종단 개혁위원회가 있으니 그곳에서 비상종단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로회의에 참관한 범종추 상임대표 도법 스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도법 스님은 “전 종도가 원하는 승려대회를 열어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원담 스님이 “종도들이 전국승려대회를 원한다면 곧 승려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재차 거들었다. 원두 스님은 승려대회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범종추 스님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원두 스님과 범종추 스님들간의 설전이 오갔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원로회의는 한동안 지연됐다.

원두 스님은 “종권찬탈을 염두에 둔 범종추의 승려대회는 종단의 혼란만 가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 이상 승려대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종정 스님의 뜻이기도 했다. 사무처장으로서 이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술회했다.

논란이 길어지자 혜암 스님은 “승려대회를 개최하는데 이의가 없느냐”고 의결을 시작했다. 비룡·응담 스님이 동의했다. 승려대회는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두 안건을 처리한 원로회의는 1시간 30여 만에 폐회를 선언했다.

혜암 스님은 곧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로회의에서 채택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에서 “지난 3월29일 공권력에 의한 교권유린에 유감을 표한다”며 “종도와 국민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준 것에 사죄한다”고 밝혔다. 스님은 “△3월30일 중앙종회 무효 △법난사태를 유발한 총무원장의 즉각 사퇴 △전국승려대회를 소집해 시대에 맞는 개혁에 동참할 것” 등 결의사항도 발표했다.

대각사 주변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00여명의 범종추 스님들은 회의를 마치고 떠나는 원로 스님들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범종추는 승리를 자축했다. “이제 다 끝났다. 수고했다”는 말들이 오갔다. 범종추는 이날 오후 7시 서울 중앙승가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로회의 결정을 지지한다”며 “의현 총무원장은 원로 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원로회의의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결의했던 중앙종회도 급변했다. 종회의장 종하 스님은 이날 오후 6시30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스님은 “총무원장을 선출한 3월30일 중앙종회는 강압적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자신도 피해자임을 호소했다. “의현 원장이 원로회의 결의조차 무시하고 사퇴하지 않을 경우 종헌종법에 따라 불신임안을 의결하겠다”고 으름장도 놨다.

4월5일 원로회의의 결의로 의현 총무원장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다만 사퇴의 시기만을 남겨 뒀을 뿐이다. 그러나 범종추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4월6일 범불교도대회, 10일 전국승려대회 개최를 예고했다. 종단 안팎에서 ‘범종추 지지선언’이 잇따랐다. 교수, 변호사, 작가 등으로 구성된 419명의 불교지식인들이 ‘의현 총무원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사부대중에 의한 종단운영체제 확립도 요구했다. 이날 ‘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재가불자연합’은 조계사에서 법회를 열어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 여론에 힘을 실었다.

이 시각 종정 서암 스님은 다시 상경했다. 이미 원로회의가 승려대회를 결의한 직후였다. 스님은 종정이자 의장인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로회의가 승려대회를 결의한 것에 착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4월7일 읍소문과 9일 교시를 발표하고 종단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종단개혁은 화합을 바탕에 두고 추진해야 함을 거듭 역설했다. 그러나 서암 스님의 마지막 호소도 종권 재창출을 최선으로 판단한 원로들과 범종추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오히려 서암 스님의 화합 당부 교시는 원로들과 범종추의 ‘종정 불신임 결의’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50호 / 2014년 6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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