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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캉 사원-1

혼돈의 땅 라싸에 우뚝 선 티베트 불교 최고 성지

▲ 이른 아침, 거대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조캉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 앞에는 오체투지로 몸을 낮추는 티베트인들이 가득하다. 조캉 사원은 문성공주가 조오 부처님을 봉안한 이래 티베트인들이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가 됐다.

새벽기운 스산하게 남아있는 거리에 마니차를 손에 쥔 티베트인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간간이 오체투지로 몸을 낮춘 사람들도 보인다.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소한 동작 하나에서도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부처님을 위한,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신심만이 느껴질 뿐이다. 순례단은 지금 조캉 사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건만 거리엔 벌써부터 꼬라(순례)를 하는 티베트인들로 가득하다. 라싸에 도착한 직후 기대와는 다른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던 터라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과연 어느 모습이 진짜 티베트일까. 하루가 다르게 화려해지는 라싸에서, 지금 거리를 메우고 있는 순례행렬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당나라에서 시집온 문성공주가
라싸의 불길한 기운 제거위해
만다라의 방사형으로 사찰건립
그 가운데 조캉 사원은 중심점

12세가량의 석가모니 형상화한
조오 불상 봉안 후 가장 신성시
현재도 순례자들 끊이지 않아
2008년 대규모 유혈사태 당시
티베트 시위대 본거지 역할도

2012년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갖가지 상점·관광객들 가득해
티베트 공안, 곳곳서 동족 감시

▲ 조캉 사원은 꼬라(순례)의 중심지다.

버스에서 내려 티베트인들을 따라 걷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전소리가 대지 위로 낮게 깔리더니 곧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져나간다. 카메라를 들어 뒷모습을 찍으려는데 가이드의 말이 떠오른다. 티베트인들을 절대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어 카메라를 들었는데 가이드가 먼발치서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사진 찍으면 안돼요.”

한껏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순식간에 내려앉는다. 지금 우리가 밟고 서 있는 티베트 땅은 뵈릭 민족이 아닌 중국의 영토이며 일제 강점기에 시름했던 우리민족의 수난사가 이 땅에 똑같이 복제되고 있다는 사실이 시퍼렇게 떠오른다. 황급히 저지하는 가이드의 손짓과 저 멀리서 마니차를 돌리는 티베트인들의 손짓 사이에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을 시리게 한다. 티베트의 냉엄한 현실은 타국의 순례자를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티베트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순례 물결에 몸을 맡긴다. 그들의 모습은 출렁거리는 파도 같기도 하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 같기도 하다. 그렇게 천년 넘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순례의 행렬을 이뤄왔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도로가 말끔하게 정비되고 현대식 상점이 우후죽순 들어섰으며 자동차들은 라싸 곳곳을 매연으로 물들이고 있다. 공안들의 날카로운 감시 속에 숨죽여 살아가고 있는 티베트인들에겐 오직 불교만이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적지 않은 티베트인들이 최근 중국정부의 통치에 순응하며 개혁개방이 제시하는 자본주의적 삶을 충실히 따르기 시작했지만. 그 대다수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은, 이른 아침 힘겨워 보이는 티베트인들의 뒷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덧 행렬은 조캉 사원에 도달했다. 바코르 광장 너머 거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가려진 사원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티베트 불교의 정점이자 송첸캄포와 문성공주의 삶이 서려있는 곳, 조캉. 토번왕국 33대 왕 송첸캄포는 히말라야 고원을 통일한 후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당나라에 왕비를 요구한다. 당나라는 사실상 볼모나 다름없는 문성공주를 송첸캄포에게 시집보낸다. 문성공주의 행렬은 황하의 발원지인 바엔카라 산맥과 당구라 산맥을 지나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라싸에 도착한다. 당시 온 나라 백성들이 머나먼 당나라에서 온 손님을 춤과 노래로 환영했다고 한다.

조캉 사원 창건설화의 주인공은 바로 문성공주다. 주역과 천문지리에 능통했던 문성공주는 라싸의 형상에서 거대한 마녀의 모습을 목격했다. 포탈라궁과 주변 산은 마녀의 유방에 해당했다. 마녀가 내뿜는 불길한 기운을 제거해야 했다. 문성공주는 남편 송첸캄포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만다라의 방사형으로 사찰들을 건립해 나갔으며 그 중심에는 사원을 배치했다. 문성공주는 양떼를 동원해 만다라의 중심이자 마녀의 심장에 해당하는 와탕호수를 메꿨다. 3년간의 난공사였다. 사원이 완공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송첸캄포가 서거하고, 당나라의 침공을 걱정한 문성공주는 시집올 때 모셔와 라모체에 봉안해오던 불상을 이운한다. 불상은 12세가량의 어린 석가모니 부처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티베트 사람들은 조오(jowo)라고 불렀다. 그 후 사원은 조오 부처님을 모신 사원(캉, khang) 즉 조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티베트인들은 현재까지도 조오 부처님과 조캉 사원을 그 무엇보다 신성시 여기고 있다. 지금, 순례자들 앞에 놓인 풍경 역시 이곳을 향한 지극한 신심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니차를 돌리며 꼬라를 하거나 오체투지하는 티베트인들이 조캉 사원 앞 바코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저마다의 입에서 나오는 ‘옴마니반메훔’ 진언은 거대한 합주곡 되어 이 공간을 환희롭게 장엄하고 있다. 히말라야 고원에 서린 신심을 모두 모아 응축시킨 듯, 순례자로 하여금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드는 광경이다. 티베트 불교 최고의 성지라는 호칭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순례단이 가사를 수하고 걸어가자 티베트인들이 꼬라를 잠시 멈추고 신기한 듯 쳐다본다. 동방에서 온 스님이 합장한 채 포행하는 모습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꽤나 낯선 풍경일 것이다. 조캉 사원을 마주보고 예불을 드리려는데 갑자기 공안이 나타나 제지한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캉 사원방향으로 조금 더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황한 순례단을 지켜보고 있는 티베트인의 눈망울에 두려움이 번진다. 언제부턴가 티베트인들의 삶이 바로 이와 같았으리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저항의 몸짓은 미세한 파동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채 사그라지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차례에 걸친 유혈사태가 그들에게 남긴 교훈은 명백했다. 지금 돈과 중화사상의 유입으로 휘황찬란하게 변화하고 있는 라싸의 모습은 티베트인들이 강압적으로 터득한 교훈의 결과가 아닐는지.

2008년 3월14일. 티베트 민중봉기 4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4일 만에 유혈사태로 번졌다.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서장자치구는 물론 쓰촨, 칭하이, 간쑤성 등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1940년대까지 티베트의 영토는 현재의 두 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행정구역을 재편해 서장자치구로 지정하면서 나머지 영토가 쓰촨, 칭하이, 간쑤성으로 편입돼버렸다. 현재도 이들 지역엔 약 300만명의 티베트인들이 뵈릭 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분연히 일어나 티베트의 독립을 외치며 자신들에게 총을 겨눈 군인들에 맞섰다.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쓰러져갔다. 당시 시위대는 조캉 사원을 최후의 결전지로 여겼고 가장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그 후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캉 사원과 바코르 광장 어디에서도 그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부처님 앞에 몸을 낮춘 티베트인들 위로 관광객들을 위한 갖가지 상점이 군림하듯 들어섰다. 중국정부가 2012년부터 조캉 사원을 포함한 유적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점상이 철거되고 티베트인들은 도시 외곽으로 강제 이주됐다. 한때 ‘관광은 포탈라궁, 순례는 조캉 사원’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현재는 관광객이 기념품을 구입하기 위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장소가 됐다.

▲ 순례단은 공안의 지시로 자리를 옮겨 예불을 드려야 했다. 놀랍게도, 공안은 티베트인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씁쓸한 마음 달래며 공안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옮긴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총을 든 공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티베트인이었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광장 곳곳을 감시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동족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됐는지 궁금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연 그가 잘 알고 있을지 묻고 싶었다. 혹시, 2008년 조캉 사원에 몰려든 시위대를 진압했던 공안과 군인 가운데에도 티베트인이 섞여있진 않았을까. 그들의 내면은 현재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까. 라싸의 변화는 그 겉모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 조캉 사원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티베트인들.

공안이 지정한 장소에 도착한 순례단은 조캉 사원을 향해 합장하며 예불을 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몸을 돌려 순례단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뒤로 관광객들이 순례단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가이드는 공안이 다시 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조캉 사원 안으로 이동할 것을 독촉하고 있다. 때마침 솟아오른 햇살이 사원 옥상 황금빛 지붕에 반사돼 바코르 광장을 밝게 비춘다. 혼돈의 땅. 조캉 사원은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라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50호 / 2014년 6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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