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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도민 스님의 궁리

기자명 성재헌

풀 한 포기와 ‘할’로 부처와 가섭 뜻 알리다

▲ 일러스트=이승윤

온갖 풀끝마다 명명백백히 드러나 있는 것이 부처님과 조사의 뜻이라 했다. 이 말씀에는 불교가 말하고자 하는 진리와 깨달음의 성격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담겨있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진리를 지금 보고 있는 것 또는 지금 알고 있는 것들과는 무관한 것이라 여긴다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떠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 여긴다면, 그런 진리와 깨달음은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밝히신 진리와 깨달음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밥 먹고 똥 누고 잠자는 일상을 떠나 달리 진리는 없다”는 친절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진리를 찾아 사방을 떠돌고, “머리 위에다 다시 머리를 얹으려 들지 말라”는 간절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깨달음을 찾아 밤을 새워가며 궁리한다.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그런 이들은 나름 진리를 깨달아보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참된 진리와 참된 깨달음에서 아득히 멀어지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옛 선사들이 이렇게 탄식했나 보다

“그렇게 궁리하면 당나귀해가 된다 해도 깨닫지 못한다!”

궁리(窮理), 이치를 끝까지 파헤쳐보겠다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는데 왜 허물이라 탓했을까?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데 왜 잠시 기다려주지 못하고서 곧바로 혀를 차고 몽둥이를 휘둘렀을까? 몇몇 스승들의 급하고 경박한 성정 탓일까? 그래서가 아니다.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밝히신 이치는 당장 눈앞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는 잉어와 같은 것이지, 언어와 문자로 엮여진 생각의 그물에 걸린 죽은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된 스승들은 제자들이 생각의 늪으로 빠져드는 짓을 결코 용납지 않았던 것이다. 무릇 사랑이 짙은 부모일수록 자식의 못난 버릇을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아끼는 마음이 지극하지 않다면 몽둥이를 휘두르고 고함을 칠 일도 없을 것이다.

송나라 때 도민(道旻)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젊은 시절 유학을 공부하고 경덕사(景德寺) 덕상(德祥) 스님을 의지하여 출가한 그는 구족계를 받은 후 경학을 공부하고 천하를 주유하였다. 그렇게 여러 훌륭한 스승들의 회하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았고, 특히 위산 철(溈山喆)선사 회하에서 오래 머물렀다. 도민 스님은 오랜 수행과 연륜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신중하였다. 그런 도민을 다들 존경하여 주위에서 여러 차례 주지로 천거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저 자신을 속일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이치를 확연히 밝히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행각을 멈추지 않던 도민은 만년에 늑담 응건(泐潭應乾)선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도민은 자신이 그간 깨달은 바를 한 치의 꾸밈도 없이 낱낱이 말씀드렸다. 하지만 응건선사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색한 침묵이 한참 맴돈 후에 응건선사가 입을 열었다.

“영산회상의 백만 대중 앞에서 세존께서 꽃을 드시자 가섭 홀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가섭이 왜 웃었을까요?”

도민이 기량을 발휘해 이리저리 대답하였지만 응건선사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세존께서 가섭에게 ‘나의 바른 법안의 창고와 열반의 오묘한 마음을 그대에게 맡긴다’고 하셨는데, 세존께서 가섭에게 전하신 법안과 마음이 무엇입니까?”

다시 모든 기량을 발휘해 보았지만 또 응건선사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생사대사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 여긴 도민은 그 절에서 바랑을 풀었다. 응건선사 역시 도민을 법기라 여겨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곁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틈만 나면 불쑥불쑥 물었다.

“세존께서 꽃을 들자 가섭이 웃었던 까닭이 뭔가?”

이렇게 대답해도 저렇게 대답해도 응건선사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니야!”

도민의 의심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응건선사를 모시고 산문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도민은 한발 뒤에서 따라 걸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응건선사가 대로변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자네, 뭘 그리 생각하는가?”

“가섭이 웃은 까닭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섭이 웃은 까닭이 뭔가?”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응건선사가 길가 시렁에다 주장자를 걸고는 소매와 바지의 먼지를 털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도민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도민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스님의 이 행동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도민이 생각에 잠기자 응건선사는 주장자를 짚어들고 곧장 그를 때렸다.

“둔한 놈!”

피하지도 않고 매를 맞는 도민을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응건선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채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다시 발길이 멈췄다. 도민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응건선사는 그런 도민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다가 길가의 풀 한포기를 뽑아 도민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뭔가?”

도민은 또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대답해야 스님의 뜻에 맞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대로 한가운데서 응건 스님이 청천벽력처럼 크게 고함을 쳤다. 그 순간 도민은 부처님과 가섭의 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도민은 응건선사에게 연꽃을 바치는 시늉을 하며 말씀드렸다.

“이번에는 저를 속이실 수 없습니다.”

구경꾼들의 웅성거림도 아랑곳하지 않고 응건선사가 도민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뭐라. 다시 말해봐라. 다시 말해봐.”

“남산에서 일어난 구름이 북산에 비를 뿌리는군요.”

멱살을 쥔 손을 가만히 밀친 도민은 조용히 일어나 한길바닥에서 응건선사에게 절을 올렸다. 환하게 빛나는 도민의 얼굴을 보고 응건선사 역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관계(灌溪)에서 법문을 펼치기 시작한 도민선사는 원통사(圓通寺)에 머물면서 그 명성이 천하에 자자하게 되었다. 도민선사는 스승 응건선사가 자신에게 그리하였듯 찾아오는 학인들의 머리와 가슴팍에 꽂힌 못과 쐐기를 뽑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생각에 잠기는 이들을 만나면 이 말을 잊지 않았다.

“보려면 당장 보아야지 이리저리 궁리하면 어긋납니다.”

승속을 가리지 않은 간절한 가르침에 감복하여 세상 사람들은 도민선사를 ‘옛 부처님[古佛]’이라 칭송하였고, 그의 육신은 죽은 뒤에도 썩지 않아 등신불로 모셔졌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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