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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캉 사원-2

문성공주의 굴곡진 삶 서린 사원에서 희망을 목격하다

▲ 옥상에 오르자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 당태종의 총애를 받다 이토록 척박한 환경의 토번왕국으로 시집와야 했던 문성공주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천왕상이 서 있는 정문을 지나자 중정이 나온다. 느닷없는 적막이 당황스럽다. 외부의 번잡함은 이곳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우성 들끓는 사바세계에서 순식간에 극락으로 들어온 것 같다. 순례단과 함께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황금빛 옥상에서 반사된 햇살이 바닥 위로 소복하게 쌓여있다. 히말라야 고원의 자극적인 햇살을 지극한 신심으로 여과해 담아놓은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터램프의 독특한 향내음이 코끝을 간질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티베트인들은 저마다 공양용 야크버터를 손에 들고 법당으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다. 드디어 티베트 불교 최고 성지의 한복판에 발을 내딛었음을 실감한다. 자본주의에 물든 라싸의 모습과 순례단을 제지하는 공안에 지쳐있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순례단은 조캉 사원 법당의 입구를 향해 예불을 올리기 시작했다. 줄을 서있던 티베트인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남루한 옷에서 최신식 스마트폰을 주섬주섬 꺼내는 모습이 라싸의 현재 상황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쩌랴. 지금 이곳은 뵈릭 민족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조캉 사원 아니던가. 이른 새벽부터 발길을 재촉하고도 긴 시간 동안 줄을 서야 할 그들이, 그깟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잠시 스치는 나그네의 상념 정도로 여기며 마음을 달래본다.
 
문성공주, 토번왕국에 시집오며
불경·의학서적·기술서 가져와
조오 부처님 조캉사원에 봉안도
송첸캄포왕에게 사랑 받았지만
남편 죽음 후 쓸쓸한 말년 보내
 
조오부처님 참배하는 티베트인
하루 종일 조캉 사원에 가득해
주변으로 거대한 순례행렬 이뤄

예불을 마치고 법당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인부들이 임시난간에 올라 단청을 수리하고 있었다. 1984년 개혁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2011년까지 조캉 사원 복원공사를 실시했던 중국정부는 2012년 6월 2000만 위안(약 32억6000만원)을 들여 벽화를 전면 보수하기로 결정했다. 얼핏 생각하면 중국정부가 티베트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과거 중국 전역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조캉 사원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다. 홍위병들은 이곳을 돼지도살장으로 만들고 법당 안에 피를 뿌렸다. 중국정부가 뒤늦게 복원사업을 실시하는 것은 자신이 저질렀던 반인류적 행위들을 반성해서가 아니다. 티베트 불교 중심지인 조캉 사원의 복원에 힘 쏟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티베트가 중국에 귀속됐다는 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뵈릭 민족을 정신적으로 복속시키고 티베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목적도 있음은 물론이다. 라싸 공가공항에 내린 후 지금까지, 티베트가 중국영토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중국정부가 곳곳에 심어놓은 장치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 현재 벽화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뵈릭 민족 앞에 놓인 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법당으로 들어선다. 중앙에 거대한 미륵불상과 관세음보살상,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상이 보인다. 주변으로는 여러 부처님을 봉안한 불당들이 이어져있다. 법당 내부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낭꼬라(사원내부를 도는 티베트식 순례)를 하는데 티베트 스님이 카메라를 가리키며 손을 휘젓는다. 이곳은 특히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티베트 스님을 뒤로하고 낭꼬라 행렬을 이어가다 왼쪽 벽 구석에서 긴 줄의 끝을 만난다. 조캉 사원의 주실, 조오 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티베트인들은 조오 부처님 무릎에 자신들이 들고 온 가타(흰 스카프)를 올리고 상체를 기대 소원을 빈다.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돌아 반대편 무릎에 한 번 더 기댄 뒤 돌아 나온다. 티베트인들이 이마가 찢어지고 무릎이 까지면서도 수개월 동안 오체투지로 라싸에 당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12세 모습을 형상화한 조오 부처님은, 그만큼 티베트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티베트인들은 문성공주가 모셔온 조오 부처님을 그 무엇보다 신성하게 여긴다.

이 불상은 당나라 문성공주가 송첸캄포왕에게 시집오며 가져온 것이다. 7세기, 뵈릭 민족이 세운 토번왕국은 그때까지 축적해온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 있었다. 당나라 속국들을 잇달아 점령한 후 당구라 산맥을 넘어 중원으로 진출했다. 송첸캄포는 당태종에게 황금 5000냥과 보물을 보내 결혼을 요구한다. 당태종은 토번왕국과의 화친을 위해 16세 어린 소녀인 문성공주를 송첸캄포에게 보낸다. 문성공주에 대해서는 당태종의 조카딸, 충신의 딸, 황실의 궁녀 등 소문이 무성한데, 다만 신심 깊은 불교신자이며 미모가 출중했음은 정설로 전해지고 있다. 또 타고난 총기와 출중한 문학적 재능, 천문·지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당태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당나라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던 문성공주가 볼모되어 척박한 히말라야 고원으로 떠나야 하는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실제로 문성공주는 티베트로 시집가야 한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청혼을 위한 사신으로 당나라에 와 머물던 토번왕국의 재상 가르똥첸에게 티베트의 풍토와 환경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본다. 가혹한 고원의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곡물종자를 준비하고 기술이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장인도 섭외했다. 뿐만 아니다. 의학서적과 유교경전, 기술서는 물론이고 불교경전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겼다. 그리고 12세의 어린 석가모니 부처님 불상을 함께 가져가기로 결정한다. 모진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척박한 운명에 덩그러니 남겨진 문성공주는 비슷한 나이의 부처님을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부모로 여기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막상 떠나는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문성공주의 이러한 심정과는 상관없이 대규모로 구성된 호위대는 추운 겨울, 살을 에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얼어붙은 강을 건너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했다. 문성공주는 당시 심경을 담아 이렇게 노래했다.
 
“강물은 동으로 흘러가건만, 나는 왜 강물을 거슬러 서쪽으로 가야 하는가?”
 
고생 끝에 도착한 문성공주 앞에 당나라에서 선물 받은 한족의 옷을 갖춰 입은 송첸캄포가 마중 나온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총명함으로 송첸캄포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그녀를 비운의 왕비로 만들어버린다. 9년만에 송첸캄포가 서른넷 젊은 나이로 서거한 것이다. 문성공주 위로는 정실과 네팔왕국의 부리쿠티, 티베트 명문귀족 출신의 두 명의 왕비 등 총 네 명의 왕비가 있었다. 문성공주는 궁중에서 ‘가’ 즉 ‘중국공주’라는 차별적 호칭으로 불리며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게다가 남편의 죽음 이후 친정인 당나라의 침공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곤 했다. 문성공주의 말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추측하건데, 자신이 가져온 조오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진 않았을까.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조오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앳된 모습으로 시집와 궁궐에서 핍박 받으면서도 뵈릭 민족에게 중원의 기술과 불교를 선물한 문성공주의 삶이 떠오른다. 한때 당나라와의 화친을 상징했던 조캉 사원이 중국공안들의 삼엄한 감시가 펼쳐지는 위험지역으로, 기념품을 사기 위한 관광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문성공주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곳을 향한 티베트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많은 순례인파와 그들이 공양 올린 야크버터 향 연기에 둘러싸인 조오 부처님을 보며 조심스럽게 헤아려본다.
 
▲ 바코르 광장과 미로처럼 연결된 순례길에서 티베트인들의 불심을 엿볼 수 있었다.

순례단은 조캉 사원을 나와 바코르 광장에서 미로처럼 연결된 꼬라길을 걷는다. 한 명, 한 명의 신심 모인 순례행렬이 거대한 물결처럼 출렁이고 옴마니반메홈 진언은 마니차 돌리는 소리와 섞여 하늘로 피어오른다. 높게 솟은 상점건물은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순례길 위로 담는다. 조캉 사원 중정에 고인 빛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오는 듯 눈부시다. 출렁이는 순례행렬 사이로 소녀가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이 보인다. 이제 막 토번왕국에 도착했을 무렵 문성공주와 비슷한 나이일 듯하다. 한동안 몸을 낮추고 있던 소녀는 다시 일어나 합장한 손을 하늘로 치켜세운 뒤 머리에 갖다 대며 간절하게 기도한다. 함께 오체투지하던 아버지가 속도를 내라며 흘끔거리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동방에서 온 순례자 역시 소녀의 기도에 동참한다. 그 간절함, 무엇을 위함인지 오직 그녀만 알겠지만 길에 고인 빛처럼 마침내는 소녀의 앞날을 눈부시게 밝혀주길 기원해본다.
 
▲ 순례단을 촬영하는 티베트인들.

순례단은 다시 조캉 사원 앞에 섰다. 먼 길 돌아왔지만 결국 이 자리다. 티베트인 공안들이 감시의 시선을 순례단에게 모은다. 초조해진 가이드가 다음 일정을 설명하며 앞장선다. 이제 막 바코르 광장에 도착한 티베트인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조캉 사원을 향해 합장한다. 그들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가니 조캉 사원도, 조오 부처님도, 바코르 광장도, 뵈릭 민족의 불심도 시야에서 사져버린다. 대신 중국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라싸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목격한 순간들은, 어쩌면 티베트의 희망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라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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