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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법정에 서다’ 출간 성낙주씨

  • 인터뷰
  • 입력 2014.07.01 17:25
  • 수정 2014.07.01 17:30
  • 댓글 0

“석굴암 복원 50년, 원형논쟁 끝낼 때”
1964년 복원으로 일제 상흔 씻어

▲ 성낙주
“1964년 7월1일 준공된 문화재관리국의 석굴암 복원공사는 일제가 남긴 상흔을 씻어내는 일종의 씻김굿이었습니다. 그러나 ‘석굴암 원형논쟁’이라는 거센 논란에 혼돈과 착각에 빠졌습니다.”

6월24일 인사동에서 만난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저자 성낙주 석굴암미학연구소장은 탄식했다. 석굴암 복원공사가 원형논쟁에 가려 종교성전으로서 참모습을 알 수 없게 됐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래서 석굴암을 법정에 세웠다. 복원 50주년을 맞은 2014년, 석굴암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한 권의 책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 담았다.

그동안 그는 여러 자리에서 원형논쟁의 모순을 지적해왔다. 목조전실(전각)이 없었다거나 법당이 샘물 위에 지어졌다는 등의 쟁점이 산중사찰인 석굴암의 불리한 입지 조건을 놓친 논리라고 주장해왔다. 해서 석굴암 복원공사 후 50여년 간 계속된 ‘석굴암 원형논쟁’을 총망라했다. 본존불 이마에 동해 아침 햇살이 비춘다는 일출 신화, 전각 없는 개방구조 원형설, 주실 돔 지붕 앞에 광창설, 샘물 위 축조설 등등.

그는 “논점 대부분은 토함산 현실을 무시한 환상과 신비주의 부산물”이라며 “배경에는 일본제국주의 태양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석굴암 원형논쟁은 한국미술사학의 우울한 초상”이라고 지적했다. 석굴암에서 신화와 환상을 걷어냈다. 그랬더니 국보 제24호의 맨 얼굴이 나왔다. 단적인 예로 일출 신화를 언급했다.

그는 “토함산에 오른 일본인들은 동해가 아닌 자신들의 일본해에서 떠오르는 야마토의 태양에 환호하며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그럼에도 우리 학계는 동해 아침 햇살을 받아들이기 위해 전실전각을 들어내고 돔 지붕에 광창을 뚫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석굴암은 동서양 경계를 뛰어넘은 건축, 토목, 조각, 수리학 등 위대한 실험들이 응집된 문화유산”이라며 “환상이나 신비주의 눈으로 바라보며 소모적 논쟁에 묶여 석굴암 연구가 근대에 머문다면 석굴암은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복원공사로 석굴암은 비로소 종교성전 본연의 존엄과 역할을 되찾았다”며 복원공사를 주도했던 초우 황수영 박사 영전에 이 책을 바쳤다. 황수영 박사는 한국 미술사학계의 산증인이자 최고 미술사학자로 일컬어졌으며 2011년 2월 타계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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